의료 현장의 대전환, 무과실 의료배상제도 도입으로 환자와 의사 상생의 길 열어야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은 2026년 5월 7일 오후 2시 대한의사협회 회관 대회의실에서 ‘무과실 의료배상제도의 필요성과 함의’를 주제로 제12차 의료정책포럼을 개최했다.
이번 포럼은 의료사고 발생 시 환자의 신속한 구제와 의료진의 안정적인 진료 환경 구축을 위한 대안으로 무과실 배상제도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발제자와 토론자들은 현행 과실책임 중심의 분쟁 해결 방식이 가진 한계를 지적하며, 사회적 합의를 통한 제도 도입의 시급성을 강조했다.

김경수 변호사, ‘입증의 벽’과 ‘사법 리스크’가 초래한 필수의료 위기 진단
첫 번째 주제 발표를 맡은 법무법인(유한) 바른의 김경수 변호사는 한국 의료분쟁의 현주소를 객관적 통계로 짚어보며 제도 도입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김 변호사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의료분쟁 조정 신청은 1만 672건에 달하지만, 조정 불성립이나 각하율이 32.8%에 이르고 평균 보상금은 1,005만 원 수준에 머물러 중대 사고를 보상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특히 민사소송으로 갈 경우 환자의 완전 승소율은 0.64%에 불과하고, 1심 처리 기간도 평균 24.6개월로 일반 사건보다 3배 이상 길어 환자에게 가혹한 현실임을 지적했다.
의료진 역시 과도한 사법 리스크에 노출되어 있다. 연간 업무상과실치사상 형사재판 피고인이 되는 의사가 적지 않으며, 이러한 부담은 결국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응급의학과 등 이른바 ‘필수의료’ 기피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김 변호사는 무과실 의료배상제도가 도입되면 환자는 입증 부담 없이 신속하게 보상을 받을 수 있고, 의사는 소신 진료가 가능해져 방어 진료를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인 설계안으로 ‘고위험 필수의료’부터 단계적으로 적용 범위를 확대하고, 의료중재원을 통한 2단계 심사 구조를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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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영 교수, 해외 선진국 사례를 통한 무과실 보상의 이론적 토대와 유형 분석
두 번째 발표자인 경희대 김기영 교수는 비교법적 분석을 통해 무과실 보상제도의 이론적 기초와 세계적 흐름을 소개했다. 김 교수는 요제프 에서(Josef Esser)의 ‘책임법 이원성’ 이론을 인용하며, 가해자의 잘못을 묻는 ‘과실책임’과 위험을 창출한 주체가 책임을 지는 ‘위험책임’이 공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무과실 보상은 바로 이 위험책임과 사회적 위험 분산의 실현이라는 측면에서 정당성을 갖는다.
해외 사례로는 세계 최초로 환자보험제도를 도입한 스웨덴, 민사소송 자체를 국가 보상으로 대체한 뉴질랜드의 ACC 모델, 그리고 중증 의료사고에 대해 국가가 직접 보상하는 프랑스의 ONIAM 제도가 언급됐다. 특히 일본과 대만은 한국과 유사한 법체계와 환경 속에서 분만 사고부터 무과실 보상을 도입해 점진적으로 확대해 나가는 방식을 취하고 있어 시사점이 크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한국의 현행 제도가 분만 사고에만 한정되어 있어 보상의 공백이 크다고 지적하며, 중증도 기준 도입과 독립 보상기금 설립을 포함한 전면적인 재설계를 제언했다.

지정토론, 실효성 확보를 위한 구체적 입법례와 정책적 과제 논의
이어진 패널 토론에서는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의견이 개진됐다. 토론자로 참여한 김형중 환자를 위한 의료정책을 생각하는 사람들 대표는 무과실 배상 책임의 의의를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의 정신에서 찾았다. 자동차 운전처럼 의료 행위도 국민 생활의 필수 요소인 만큼, 사고 시 피해의 신속한 회복을 촉진하고 운전자에 해당하는 의료진의 사법적 부담을 덜어주는 특례가 필요하다는 논리다.
김 대표는 실효성 확보 방안으로 학교안전사고 예방 및 보상에 관한 법률을 예로 들며, 요양, 장해, 간병, 유족 배상금은 물론 원인을 알 수 없는 사망에 대한 위로금까지 포괄하는 광범위한 보상 체계를 주장했다. 또한, 공제 급여를 받은 경우 다른 법령에 따른 배상 책임을 면하게 하는 ‘배상 책임의 전이’ 구조가 확립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이 외에도 대한의사협회 한진 법제이사, 법무법인 해창 이민규 변호사, 한국중증질환환자연합회 김성주 대표,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곽영태 상임감정위원이 토론에 참여해 제도 설계의 쟁점을 심도 있게 다뤘다. 토론자들은 공통적으로 재원 조달의 사회적 분담 구조 마련과 심사 기구의 독립성 확보가 제도의 성패를 결정할 것이라는 점에 의견을 모았다. 이번 포럼은 무과실 의료배상제도가 환자 보호와 의료 현장 안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공동 해법’임을 확인하는 자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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