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의 부지는 용서받지 못한다. 의료법 부지(不知)의 덫: 면책 없는 전문가 책임의 시대

고대 로마 법학 이래, 법률의 대원칙 중 하나는 ‘법률의 부지는 용서받지 못한다(Ignorantia juris non excusat)’는 것이다. 법을 몰랐다고 해서 그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이 엄중한 원칙은, 일반 시민에게도 적용되지만, 생명과 건강을 다루는 전문직인 의료인에게는 그 무게가 더욱 가혹하게 다가온다. 최근 의료 현장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법적 분쟁과 행정 처분 사례를 보면, 많은 의료인이 여전히 이 원칙의 실질적인 의미를 간과하고 있다는 판단이 든다.
의료법은 단순한 진료 행위 규정을 넘어, 환자 안전, 개인 정보 보호, 의료 광고, 시설 기준, 기록 관리 등 방대하고 복잡한 영역을 포괄한다. 법적 책임의 범위가 걷잡을 수 없이 확장되는 상황에서, ‘나는 의사일 뿐, 법률가는 아니다’라는 안일한 태도는 더 이상 용납되지 않는다. 전문가 책임의 시대, 의료법 부지(不知)는 곧 면책 없는 처벌로 직결되는 치명적인 덫이 됐다.
특히 최근 동향을 살펴보면, 행정 처분의 강도가 급격히 높아졌고, 과거에는 단순 과태료로 끝났을 사안들이 이제는 면허 취소나 형사 처벌로 이어지는 경우가 빈번해졌다. 이는 사회가 의료인에게 요구하는 윤리적, 법적 기준이 그만큼 높아졌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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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의 망(網)은 어떻게 의료 현장을 옥죄는가
의료법의 복잡성은 단순히 조문의 숫자가 많다는 데 있지 않다. 의료법은 보건복지부령, 시행규칙, 고시, 유권해석 등 수많은 하위 규정들과 유기적으로 얽혀 있으며, 이들은 거의 매년, 때로는 분기별로 개정된다. 예를 들어, 환자 진료 기록의 보존 의무나 개인 정보 보호 규정(특히 민감 정보 처리)은 일반적인 상식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전문적인 법률 지식을 요구한다. 최근에만 해도 의료기관의 CCTV 설치 및 관리 기준, 비급여 진료비 공개 의무 등 사소해 보이지만 법적 책임이 막중한 규정들이 대거 신설되거나 강화됐다.
그런데 사실 많은 의료인이 법률 위반 사실을 행정 처분을 받고 나서야 인지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대표적인 사례가 의료 광고법 위반이다. 병원 블로그나 SNS에 ‘최고’ 같은 표현을 사용하거나, 사전 심의를 받지 않은 내용을 게시하는 행위는 문제의 소지가 존재한다. 의료인은 이를 단순 마케팅으로 치부하지만, 법은 이를 환자를 현혹하는 행위로 간주하며 엄격히 제재한다. 선한 의도로 환자에게 도움이 되고자 했던 행위가 법률의 무지로 인해 면허 정지라는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되는 것이다. 의료법의 망은 이미 현장의 구석구석까지 촘촘하게 드리워져 있다.

‘선한 의도’가 ‘면죄부’가 될 수 없는 이유
의료 현장에서는 종종 ‘환자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주장이 법적 방어 논리로 사용된다. 그러나 법률의 세계에서 선한 의도는 절차적 정당성을 대체할 수 없다. 특히 의료법은 절차와 기록의 준수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예를 들어, 수술 전 동의서 징수 과정에서 설명 의무를 충실히 이행했는지, 마약류 의약품 관리대장을 규정된 기간 동안 정확히 기록하고 보존했는지 등은 행위의 결과와 별개로 법적 준수 여부를 판단하는 핵심 기준이 된다.
만약 의료인이 법적으로 요구되는 기록을 누락하거나, 필수적인 보고 의무를 지연했다면, 이는 환자에게 실질적인 피해가 없었더라도 행정 처분의 대상이 된다. 법은 의료 행위의 공익성을 보호하기 위해 의료인에게 높은 수준의 주의 의무와 준법 의식을 요구하고 있으며, 이를 위반했을 때의 책임은 명확하다. 특히 최근 강화된 면허 취소 규정은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의료인의 면허를 취소할 수 있도록 하여, 의료인의 법적 책임 범위를 대폭 확대했다. 이는 의료인이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그 죄가 의료 행위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더라도 면허를 잃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법률의 부지는 이제 단순한 과태료 수준이 아닌 생업 자체를 박탈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전문가 책임 시대, 법률 교육은 선택이 아닌 필수
의료법 준수 문제는 개인의 도덕성이나 윤리관의 영역을 넘어선다. 이는 의료기관의 존립과 직결되는 리스크 관리의 핵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의료기관이 법률 자문이나 정기적인 컴플라이언스 교육에 투자하는 것을 비용으로만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가장 위험한 판단이다. 단 한 번의 법률 위반으로 발생하는 행정 처분, 소송 비용, 그리고 무엇보다 회복하기 어려운 신뢰 손실은 교육 투자 비용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막대하다.
때문에 의료인들은 면허를 취득하는 순간부터 법률 전문가로서의 역할을 겸해야 한다. 또한, 의료기관 내부적으로는 일상적인 진료 행위가 법적 기준을 충족하는지 상시 점검하는 내부 감사 시스템이 필요하다. 법률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곧 환자 안전을 지키는 길이며, 의료인의 권익을 보호하는 유일한 방패다.
법률의 부지는 용서받지 못한다는 원칙은 유지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의료법이 너무나 자주, 그리고 복잡하게 변모하는 현실을 고려할 때, 의료인들에게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정부와 관련 기관은 법률 준수를 위한 환경을 조성하는 데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법률 해석의 모호성을 줄이고, 주요 개정 사항에 대해 의료 현장이 쉽게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도록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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