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의무와 지도설명의무, 개원의가 숙지해야 할 의료법 철저 대비 필요
의료 현장에서 의사들은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숭고한 소명만큼이나 엄중한 법적 책임에 직면한다. 특히 진료 과정에서 발생하는 설명의무와 지도설명의무는 단순히 환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차원을 넘어, 의사 자신의 면허와 직결되는 핵심적인 법적 생명선으로 부상하고 있다.
22일 대한재활의학과의사회가 창립 30주년을 기념해 개최한 2026 춘계 학술대회에서는 단국의대 인문사회의학교실 박형욱 교수가 ‘개원의가 숙지해야 할 의료법’ 세션을 통해 이 두 가지 의무의 법적 차이와 리스크 관리 방안을 심층적으로 분석했다. 박 교수는 의사들이 법의 테두리 안에서 자신을 보호하고, 법적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관리하는 ‘합리적 의사’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력히 주문했다.

위자료냐 전 손해 배상이냐: 두 설명의무의 결정적 차이
의료 분쟁의 소용돌이에서 의사를 가장 먼저 압박하는 쟁점은 설명의무 이행 여부다. 박형욱 교수는 민사법상 설명의무가 크게 ‘일반적 설명의무’와 ‘지도설명의무’로 나뉜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일반적 설명의무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질병의 진단명, 치료의 필요성, 예상되는 결과 및 부작용, 다른 치료 방법 등을 환자에게 충분히 알리고 동의를 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위반했을 때의 법적 책임은 통상 위자료 지급에 국한된다. 그러나 입증책임은 환자가 아닌 의사에게 있다. 즉, 의사가 ‘나는 충분히 설명했다’는 사실을 직접 증명해야 하기에 평소 꼼꼼한 진료 기록과 동의서 작성이 필수적이다.
반면 지도설명의무는 그 무게감이 전혀 다르다. 이는 요양 방법이나 퇴원 후 주의사항, 약물 복용 지침 등 환자의 건강 유지를 위해 반드시 전달해야 하는 지침을 의미한다. 만약 의사가 이 의무를 소홀히 하여 환자의 상태가 악화됐다면, 법원은 이를 단순한 절차 위반이 아닌 ‘의료과실’ 그 자체로 간주한다. 이 경우 의사는 위자료를 넘어 환자가 입은 전 손해에 대해 배상 책임을 지게 된다. 박 교수는 민사상 책임을 넘어 의료법상으로도 설명의무 위반은 행정 제재의 대상이 된다는 점을 강조하며, 의사들이 지도설명의무의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일상의 범죄가 면허 취소로: 개정 의료법의 엄중한 잣대
박 교수는 강연 중 개정 의료법에 따른 면허 취소 리스크에 대해 상당한 시간을 할애했다. 이제는 의료행위와 무관한 일상의 형사 범죄로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아도 의사 면허가 취소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특히 교통 범죄에 대한 경고가 뼈아프다. 음주운전이나 어린이 보호구역 내 사고(어린이 상해)는 기본적으로 금고 이상의 형이 선고될 가능성이 크며, 이는 곧 면허 박탈로 직결된다. 실제로 어린이 상해 사고의 경우 10개월에서 2년 6개월 사이의 형량이 내려질 수 있어 의사들에게는 치명적인 위협이 된다.
또한, 수습 과정에서의 패착도 경계해야 한다. 수술 중 과다 출혈로 인한 업무상과실치사 그 자체는 면허 취소 사유가 아니지만, 이를 은폐하기 위해 진료기록부를 허위로 작성하거나 간호기록부를 위조하는 행위가 가중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러한 의료법 위반 행위가 경합되어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면허는 취소된다. 박 교수는 최근 전자의무기록(EMR)에 대한 포렌식 조사가 활발해짐에 따라 추가 기재나 수정 전의 원본 데이터까지 모두 확인된다는 점을 상기시키며 기록의 투명성을 강조했다.

무면허 의료행위 교사와 조정·중재의 함정
현장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간호조무사 등에 대한 업무 위임도 면허 관리의 사각지대다. 의료법상 의료인은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간호사, 조산사로 한정되며 간호조무사는 이에 포함되지 않는다. 따라서 수술 부위 소독이나 드레싱, 수술 마무리 업무를 간호조무사에게 전적으로 맡겼다가 상해가 발생할 경우, 이는 ‘무면허 의료행위 교사’에 해당하여 의료법 위반으로 처벌받게 된다. 영리를 목적으로 비의료인에게 의료행위를 시켰을 때는 보건범죄단속법 위반으로 더욱 엄중한 처벌을 받을 수 있다.
분쟁 발생 시 이용하는 ‘의료분쟁조정법’상의 조정과 중재의 차이도 개원의가 반드시 숙지해야 할 대목이다. ‘조정’은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을 때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있지만, ‘중재’는 한 번 합의하면 그 결과가 법원의 확정 판결과 동일한 효력을 갖는다. 박 교수는 의료분쟁조정법상 중재는 당사자가 중재인을 직접 선택할 수 없는 구조적 특징이 있으므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사과는 과실의 인정인가, 소통의 시작인가: 보라매병원 사건의 교훈
의료사고 직후 의사의 태도는 법적 운명을 가르는 첫 단추가 된다. 박 교수는 “미안하다”는 사과가 곧 유죄의 증거가 되는지에 대한 오랜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정상적인 판사나 검사는 환자 가족에게 유감을 표명했다는 사실만으로 유죄 판결을 내리지 않는다. 하지만 법리적 판단과 별개로 의사의 침묵이나 도피는 환자 측의 의구심을 키워 공격의 빌미를 제공한다. 이는 마치 1997년 보라매병원 사건에서 의사의 진술이 살인의 미필적 고의로 해석되어 논란이 됐던 것처럼, 의사의 말 한마디가 법적 해석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강조한다.
박 교수는 사고 발생 시 신속하게 사태를 파악하고 변호사와 상담한 후, 환자 보호자에게 좋지 않은 결과에 대한 유감을 표명하며 신뢰를 주는 방식을 권장했다. 과실이 없다면 그 점을 분명히 설명하고 관련 차트 복사 등 요구에 적극적으로 응하여 의구심을 풀어주는 것이 분쟁을 조기에 종식하는 길이다. 이는 의사가 환자 및 보호자와의 소통을 통해 오해를 줄이고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 법적 분쟁 예방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나타낸다.
합리적 의사의 소명: 법적 리스크 관리의 중요성
의료 환경은 갈수록 복잡해지고 법적 책임의 범위 또한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의사들은 단순히 진료 기술을 연마하는 것을 넘어, 법률적 지식을 숙지하고 선제적으로 리스크를 관리하는 ‘합리적 의사’로의 변화가 요구된다.
박형욱 교수는 의사들이 법과 판례를 스스로 읽어보고 전문가의 조언을 종합하는 태도만이 척박한 의료 환경에서 의사의 소명을 지속하게 하는 방패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의사 개개인이 법적 방어력을 갖추는 것이 곧 환자에게 더 안전하고 신뢰성 높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반이 된다는 점을 역설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