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청소년 비만 급증, 환경 호르몬이 지방 세포 분화와 대사 장애를 유발하는 핵심 원인으로 지목
세계보건기구(WHO)가 2024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비만 인구는 10억 명을 넘어섰다. 이 중 소아청소년 비만 인구는 약 1억 6,000만 명에 달한다. 대한민국 역시 예외는 아니다. 질병관리청이 실시한 2022년 국민건강영양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12~18세 청소년의 비만 유병률은 18.2%를 기록했다. 이는 2012년 10.2%와 비교했을 때 10년 만에 약 1.8배 증가한 수치다. 과거에는 소아 비만의 주된 원인을 고열량 음식 섭취와 신체 활동 부족으로 규정했다.
하지만 최근 학계는 ‘오베소젠(Obesogens)’이라 불리는 환경 호르몬의 영향에 주목하고 있다. 환경 호르몬은 체내 호르몬 분비 시스템을 교란해 적은 음식 섭취량에도 체중을 급격히 늘리는 기제로 작용한다.

일상 곳곳에 침투한 환경 호르몬 ‘오베소젠’의 실체
오베소젠은 비만을 뜻하는 ‘Obesity’와 원인을 뜻하는 ‘Gen’의 합성어다. 2006년 미국 어바인 캘리포니아 대학의 브루스 블룸버그 교수가 처음 주창한 개념이다. 오베소젠은 인체의 내분비계를 교란하여 지방 세포의 수를 늘리고 크기를 키우며 에너지 소모를 방해한다.
대표적인 물질로는 비스페놀A(BPA), 프탈레이트, 과불화화합물(PFAS) 등이 있다. 비스페놀A는 주로 통조림 내부 코팅제나 영수증 감열지에서 발견된다. 프탈레이트는 플라스틱 제품을 부드럽게 만드는 가소제로 쓰이며 장난감, 화장품, 향수 등에 포함된다. 과불화화합물은 프라이팬의 코팅이나 방수 의류 등에 널리 사용된다. 이러한 화학 물질들은 호르몬과 유사한 구조를 지녀 체내 수용체와 결합함으로써 대사 체계를 비정상적으로 가동시킨다.
환경 호르몬 노출은 특히 태아기나 영유아기에 치명적이다. 이 시기의 노출은 세포의 후성유전학적 변화를 일으킨다. 이는 성장 후에도 신진대사 효율을 떨어뜨려 비만이 되기 쉬운 체질을 형성한다. 2021년 국제 학술지 ‘환경 건강 관점(Environmental Health Perspectives)’에 게재된 연구에 따르면 임신 중 프탈레이트에 높게 노출된 산모에게서 태어난 아이는 7세 시점에서 비만이 될 확률이 노출도가 낮은 집단보다 약 20% 높았다. 이는 단순한 식습관 교정만으로 소아 비만을 해결하기 어려운 이유를 뒷받침한다. 오베소젠은 포만감을 느끼게 하는 호르몬인 렙틴의 작용을 방해하고 기초 대사량을 감소시켜 체중 조절 기능을 무력화한다.
지방 세포의 수적 팽창과 대사 시스템의 변형
성인 비만은 주로 지방 세포의 크기가 커지는 ‘비대형 비만’인 경우가 많다. 반면 소아청소년기에 발생하는 비만은 지방 세포의 개수 자체가 늘어나는 ‘증식형 비만’의 특성을 띤다. 환경 호르몬은 미분화 상태의 줄기세포를 자극해 지방 세포로 전환되도록 유도한다. 한 번 늘어난 지방 세포의 수는 성인이 돼도 줄어들지 않는다. 이는 소아 비만의 80% 이상이 성인 비만으로 이어지는 핵심 원인이다. 특히 복부 주변에 집중되는 내장 지방은 만성 염증 물질을 분비해 인슐린 저항성을 높인다. 이 과정에서 제2형 당뇨병, 고혈압, 비알코올성 지방간 등 성인병이 이른 나이에 발병하게 된다.
박양동 창원패밀리병원 병원장(소아청소년과 전문의)은 “소아청소년기 비만은 단순한 체중 증가가 아니라 지방 세포 수 자체가 늘어나는 특성을 보이며, 특히 체내 유입된 환경 호르몬이 대사 조절 시스템을 교란해 에너지 소모를 방해하고 지방 축적을 가속화하는 기제로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이는 임상적으로도 소아 비만 환자들이 식단 조절에 어려움을 겪거나 요요 현상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배경이 된다. 환경 호르몬은 지방 세포 분화에 관여하는 유전자인 PPAR-gamma(피파 감마)를 비정상적으로 활성화한다. 이 유전자가 활성화되면 체내는 섭취한 영양소를 에너지로 쓰기보다 지방으로 저장하려는 성향이 강해진다.
또한 오베소젠은 간의 대사 기능을 저하시킨다. 간은 체내 독소를 해독하고 에너지 대사를 관장하는 기관이다. 과도한 환경 호르몬 노출은 간 내 지방 축적을 유도해 비알코올성 지방간 질환을 일으킨다. 2023년 소아과학 저널에 보고된 통계에 따르면 비만 아동의 약 25~50%에서 비알코올성 지방간이 관찰됐다. 이는 단순히 살이 찐 상태를 넘어 내부 장기 기능의 퇴행이 이미 시작됐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신체적 변화는 호르몬 불균형과 맞물려 성조숙증을 유발하기도 한다. 체지방에서 분비되는 렙틴 호르몬이 성호르몬 분비를 앞당기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환경 호르몬은 비만과 조기 성장을 동시에 촉진하는 이중의 건강 위협 요소로 작용한다.

환경 호르몬 노출 최소화를 위한 생활 수칙과 대응
소아청소년 비만을 예방하고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별적인 식단 관리뿐 아니라 환경적 노출을 줄이는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 첫째, 플라스틱 용기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 특히 뜨거운 음식이나 액체를 담을 때는 유리, 스테인리스, 도자기 재질의 용기를 사용하는 것이 권장된다. 전자레인지 사용 시에는 플라스틱 용기가 ‘전자레인지 전용’인지 반드시 확인해야 하며, 가급적 전용 용기일지라도 사용 시간을 최소화하는 것이 안전하다. 배달 음식 이용 시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뜨거운 국물 요리는 즉시 다른 그릇으로 옮겨 담는 습관이 필요하다.
둘째, 가공식품 섭취를 줄이고 신선 식품 위주의 식단을 구성해야 한다. 통조림 식품은 내부 코팅제에서 비스페놀A가 용출될 가능성이 크므로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다. 과일과 채소는 껍질을 벗겨 먹거나 잔류 농약과 환경 호르몬 성분을 제거하기 위해 세정제로 충분히 씻어야 한다. 셋째, 실내 환기를 자주 시행해야 한다. 집안 내 먼지에는 가전제품이나 가구에서 방출된 환경 호르몬 성분이 흡착돼 있을 수 있다. 하루 3회 이상 주기적인 환기와 물걸레 청소는 실내 미세먼지와 함께 환경 호르몬 농도를 낮추는 데 효과적이다.
마지막으로 개인위생 관리도 중요하다. 영수증 표면의 감열지에는 비스페놀A가 다량 함유돼 있으므로 가급적 손으로 직접 만지지 않아야 한다. 만졌을 경우 즉시 손을 씻어 성분이 흡수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향수나 매니큐어 등 프탈레이트가 포함된 제품의 사용도 소아청소년기에는 제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부 차원에서의 규제도 강화되는 추세다. 환경부는 어린이용 제품에 대한 프탈레이트계 가소제 사용 제한 기준을 엄격히 적용하고 모니터링을 확대할 계획이다. 소아 비만은 더 이상 개인의 의지력 문제가 아닌 사회 환경적인 질환으로 접근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