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1년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사망한 나폴레옹의 사인을 둘러싼 논쟁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1821년 5월 5일 오후 5시 49분, 대서양의 고도 세인트헬레나 섬의 롱우드 하우스에서 51세를 일기로 숨을 거뒀다. 사망 다음 날 영국 정부가 임명한 의사 7명과 나폴레옹의 주치의 프란체스코 안토마르키가 참석한 가운데 부검이 실시됐다. 당시 부검 보고서는 나폴레옹의 위장 유문부에서 거대한 궤양과 천공이 발견됐으며, 이것이 직접적인 사인인 위암이라고 결론지었다.
이는 나폴레옹의 부친 카를로 보나파르트가 39세의 나이에 위암으로 사망했다는 가족력과도 일치해 오랫동안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나폴레옹의 시신이 1840년 프랑스로 이송될 당시 놀라울 정도로 부패하지 않은 상태였다는 증언이 나오면서 의구심이 머개를 들기 시작했다. 비소는 방부 효과가 있어 중독사의 경우 시신 부패가 늦어지는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1960년대 제기된 비소 중독설과 음모론의 확산
침묵하던 사인 논쟁은 1961년 스웨덴의 치과의사이자 독물학자인 스텐 포슈훕부드가 새로운 가설을 제기하며 다시 불붙었다. 그는 나폴레옹의 사후 머리카락 샘플을 입수해 중성자 활성화 분석법으로 검사했다. 분석 결과 나폴레옹의 머리카락에서는 일반인의 기준치를 수십 배 초과하는 고농도의 비소가 검출됐다. 포슈훕부드는 나폴레옹이 유배 생활 동안 영국 측이나 측근에 의해 서서히 독살당했을 가능성을 강력히 주장했다. 비소는 당시 무색무취하여 음식이나 음료에 섞기 쉬웠으며, 소량씩 장기간 투여할 경우 위장 장애와 쇠약 등 자연사와 구분이 어려운 증상을 유발한다는 점이 논거로 쓰였다.
이 가설은 1980년대 들어 ‘벽지 색소설’로 구체화됐다. 당시 롱우드 하우스의 벽지에는 ‘셸레 그린’으로 불리는 구리 아세토비소나이트 색소가 사용됐다. 세인트헬레나의 습한 기후로 인해 벽지에 곰팡이가 번식하면서 고농도의 비소 기체가 배출됐고, 이를 나폴레옹이 장기간 흡입해 체내에 축적됐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1980년 뉴캐슬 대학교 연구팀이 보관 중이던 롱우드 하우스의 벽지 조각을 분석한 결과 상당량의 비소 성분이 확인되며 이 가설은 힘을 얻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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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과학이 입증한 비소 농도의 진실
2000년대에 접어들며 분석 기술은 더욱 정교해졌고, 이탈리아 국립핵물리연구소(INFN) 연구팀은 2005년과 2007년 두 차례에 걸쳐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했다. 연구팀은 나폴레옹이 유년 시절, 군 사령관 시절, 황제 시절, 그리고 세인트헬레나 유배 시절에 채취된 머리카락 샘플을 모두 분석했다. 놀랍게도 나폴레옹의 머리카락 속 비소 수치는 유배 전부터 이미 현대인보다 100배가량 높았으며, 평생 일정 수준을 유지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는 비소가 특정 세력에 의한 독살의 도구가 아니라, 당시 의약품, 포도주 보존제, 벽지, 심지어 대기 오염 등 19세기 환경에서 보편적으로 노출됐던 결과임을 의미한다.
연구팀은 나폴레옹과 동시대를 살았던 아들 나폴레옹 2세와 부인 조제핀의 머리카락에서도 비슷한 수준의 고농도 비소를 발견했다. 이는 당시 유럽인들이 현대 기준으로는 치명적인 수준의 비소 환경 속에서 일상적으로 생활했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단순히 머리카락에서 비소가 검출됐다는 사실만으로 독살을 단정 짓기는 어렵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과학계는 비소 중독이 나폴레옹의 건강을 악화시키는 부차적인 요인은 될 수 있었으나, 생명을 앗아간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위암설을 뒷받침하는 임상적 증거와 병리학적 분석
2007년 미국 텍사스 대학교와 스위스 바젤 대학교 공동 연구진은 나폴레옹의 사망 전 증상과 부검 보고서를 현대 의학적 관점에서 재검토했다. 연구진은 나폴레옹이 사망하기 전 6개월 동안 약 10kg 이상의 체중 감소를 겪었다는 기록에 주목했다. 비소 중독의 전형적인 증상인 신경 마비나 피부 각화증보다는 극심한 복통, 구토, 흑색변(혈변) 등 위장관 질환의 징후가 훨씬 뚜렷했다. 이는 말기 위암 환자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임상적 소견이다.
안토마르키가 기록한 부검 내용 중 “위 내부에 가득 찬 타르와 같은 물질”은 위 종양에서 발생한 심각한 출혈을 의미한다. 또한 위벽에 형성된 10cm 이상의 거대한 궤양과 천공은 암세포가 위벽 전체를 침식했음을 보여준다. 연구진은 이를 토대로 나폴레옹의 병기를 ‘T3N1M0’ 단계, 즉 인접 장기로 전이되기 직전의 진행성 위암으로 판정했다. 특히 간 하부까지 종양이 침범해 있었던 점은 그가 사망 당시 회복 불가능한 상태였음을 방증한다.
당대 의료 처치와 복합적 사망 요인
위암이라는 직접적 사인 외에도 당시의 미개한 의료 처치가 사망을 앞당겼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세인트헬레나의 의료진은 위통을 호소하는 나폴레옹에게 거의 매일 칼로멜(염화수은)을 완하제로 투여했다. 칼로멜은 장을 자극해 배설을 유도하지만, 과다 복용 시 심각한 탈수와 전해질 불균형을 초래한다. 특히 나폴레옹은 사망 전날 10그레인(약 0.6g)의 대량 칼로멜을 처방받았는데, 이는 현대 의학 기준으로 치사량에 가까운 수준이다.
암으로 인해 극도로 쇠약해진 신체에 투여된 다량의 수은 성분은 전해질 중 하나인 칼륨의 농도를 급격히 낮췄을 가능성이 높다. 칼륨 부족은 심장 부정맥을 유발하며 이는 급성 심정지로 이어질 수 있다. 결국 나폴레옹은 유전적 요인에 의한 위암이라는 근본적인 질병을 앓고 있었으며, 여기에 열악한 유배지 환경과 독성 강한 약물 처방이 겹치면서 최종적으로 사망에 이르게 된 것으로 분석된다.
200여 년을 끌어온 이 논쟁은 현대 법의학과 분석 화학의 힘을 빌려 ‘위암에 의한 자연사’라는 결론으로 수렴되고 있다. 비소 중독설은 19세기라는 특수한 환경과 당시의 낮은 과학적 이해도가 만들어낸 매혹적인 음모론이었으나, 데이터와 팩트는 나폴레옹의 마지막 순간이 암과의 처절한 사투였음을 말해주고 있다.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영웅의 죽음은 정치적 타살이 아닌, 인간으로서 피할 수 없었던 병마에 의한 퇴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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