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환자 273만 명 시대: 생존율 73.7%의 희망과 고령암 급증의 과제
대한민국이 바야흐로 ‘암환자 273만 명 시대’에 접어들었다. 국민 19명 중 1명이 암 유병자라는 통계는 암이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닌, 우리 일상의 영역으로 깊숙이 들어왔음을 시사한다.
보건복지부와 중앙암등록본부가 21일 발표한 ‘2023년 국가암등록통계’는 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한국의 의료 지형도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지표다. 보건복지부 이중규 공공보건정책관은 “이번 통계는 조기검진과 치료성과로 암 생존율이 꾸준히 향상되고 있음을 객관적 수치로 보여준 사례”라고 밝히며, “고령사회에 따른 암 부담 증가에 대응해 암 예방 및 조기진단 중심의 암관리 정책 마련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남성 암 지형도의 지각변동, 전립선암의 1위 등극
특히 이번 통계에서 가장 눈에 띄는 지각변동은 남성 암 발생 1위가 전립선암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이는 인구 구조의 변화와 서구화된 생활 습관이 맞물린 결과로 풀이된다. 1999년 전국 단위 암 발생 통계가 산출된 이래 처음으로 남성 암 발생 1위 자리가 바뀌었다. 그동안 부동의 상위권을 지키던 위암과 폐암을 제치고 전립선암이 남성 암 발생 1위(15.0%)를 차지한 것이다. 강남 골드만비뇨의학과의원 조정호 대표원장(대한의사협회 보험이사)는 “전립선암이 남성 암 발생 1위에 올라선 것은 초고령 사회 진입과 서구화된 식습관의 결합이 낳은 결과”라며 “전립선암은 초기 증상이 거의 없으므로, 국가암검진 항목 포함 전이라도 50대 이상 남성이라면 PSA(전립선 특이항원) 검사를 자발적으로 시행해 조기에 발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력히 조언했다.
1999년 당시 남성 암 순위 9위에 불과했던 전립선암은 20여 년 만에 1위로 올라섰으며, 발생자 수는 1999년 대비 무려 15.6배나 증가했다. 이러한 현상은 급격한 인구 고령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전립선암은 대표적인 고령 친화적 암종으로 분류되는데, 한국 사회가 초고령 사회로 진입함에 따라 환자 수가 가파르게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2024년 10월 학술지 ‘대한비뇨의학회지(ICUrology)’에 발표된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하유신 교수팀의 연구(‘Trends in Prostate Cancer Incidence in Korea’) 결과, 한국 남성의 전립선암 발생률 증가 속도는 OECD 국가 중 최상위권이며, 특히 70대 이상 연령층에서 연평균 증가율이 가장 가파르게 나타나 고령화와의 상관관계를 입증했다.
2023년 신규 발생한 암환자 28만 8,613명 중 65세 이상 고령층이 50.4%를 차지했다는 사실은 ‘암=고령 질환’이라는 공식을 더욱 공고히 한다. 남성의 경우 65세 이상에서 전립선암이 가장 많이 발생했으며, 이는 식습관의 서구화와 비만 인구 증가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해석된다. 반면 여성의 경우 유방암이 여전히 발생 1위를 유지하고 있어 성별에 따른 암 발생 패턴의 차이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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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명 중 7명은 산다, 만성질환이 된 암
암이 주는 공포감은 여전하지만, 통계가 보여주는 생존 지표는 희망적이다. 최근 5년간(2019~2023년) 진단받은 암환자의 5년 상대생존율은 73.7%로 집계됐다. 이는 암환자 10명 중 7명 이상이 5년 넘게 생존한다는 의미다. 약 20년 전인 2001~2005년의 생존율 54.2%와 비교하면 무려 19.5%포인트나 상승한 수치다.
이러한 생존율 향상은 국가 차원의 암 검진 사업 활성화와 치료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 덕분이다. 특히 폐암의 경우 2001~2005년 대비 생존율이 25.9%포인트 증가해 가장 큰 폭의 개선을 보였고, 위암(20.6%포인트 증가)과 간암(19.8%포인트 증가) 역시 생존율이 크게 높아졌다. 갑상선암(100.2%), 전립선암(96.9%), 유방암(94.7%) 등은 사실상 일반인과 생존율 차이가 거의 없을 정도로 높은 수치를 기록해, 조기 발견과 적절한 치료가 이루어질 경우 완치가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했다. 다만 췌장암(17.0%)과 담낭 및 기타담도암(29.3%) 등은 여전히 낮은 생존율을 보여, 이들 암종에 대한 연구와 조기 진단 기술 개발이 시급한 과제로 남았다.

조기 진단의 중요성과 ‘요약병기’의 명암
암 생존율을 가르는 가장 결정적인 열쇠는 역시 ‘조기 진단’이었다. 암이 발생한 장기를 벗어나지 않은 ‘국한(Localized)’ 단계에서 발견될 경우, 5년 상대생존율은 92.7%에 달했다. 그러나 암이 원격 전이(Distant metastasis)된 상태에서 발견되면 생존율은 27.8%로 곤두박질쳤다.
특히 암종별로 발견 시기에 따른 명암이 뚜렷했다. 위암, 대장암, 유방암 등 국가암검진 대상 암종들은 국한 단계 발견 비율이 높아지면서 생존율 상승을 견인했다. 반면 췌장암은 신규 환자의 48.5%가 이미 다른 장기로 전이된 원격 전이 상태에서 발견됐으며, 이 경우 생존율은 2.4%에 불과했다. 폐암 역시 43.7%가 원격 전이 상태로 진단되어 초기 발견의 어려움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는 증상이 거의 없는 초기 단계에서 암을 찾아내기 위한 정기 검진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2012년 6월 학술지 ‘미국국립암연구소 저널(Journal of the National Cancer Institute)’에 발표된 메모리얼 슬로언 케터링 암센터 피터 바흐(Peter B. Bach) 교수팀의 연구(‘Benefits and Harms of CT Screening for Lung Cancer: A Systematic Review’) 결과, 저선량 CT를 활용한 폐암 조기 진단 시 대조군 대비 사망률이 약 20% 감소했음이 실증적으로 증명되었으며, 이는 2026년 현재 한국의 국가암검진 대상 암종들의 생존율 상승을 견인하는 가장 핵심적인 기제로 작용하고 있다.
세계적 수준의 암 관리 역량, 낮은 사망률로 입증
한국의 암 발생률은 인구 10만 명당 288.6명(세계표준인구 보정)으로 미국, 유럽 등 주요 선진국과 유사한 수준을 보였다. 그러나 사망률 지표를 살펴보면 한국 의료 시스템의 우수성이 드러난다. 한국의 암 사망률은 인구 10만 명당 64.3명으로, 일본(78.6명), 미국(82.3명), 영국(94.0명) 등 주요 비교국 중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특히 위암, 대장암, 유방암의 경우 발생률은 높지만 사망률은 세계 최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국가 주도의 체계적인 검진 시스템을 통해 암을 조기에 발견하고, 세계적 수준의 치료를 제공한 결과로 풀이된다. 정부는 이번 통계 결과를 바탕으로 고령화에 따른 암 부담 증가에 대응하여 예방 및 조기 진단 중심의 정책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보건복지부는 1996년부터 시행해 온 ‘암 정복 계획’의 연장선상에서, 2026년부터는 고령자 특화 암 관리 인프라를 전면 확대하여 암 유병자의 사회 복귀를 돕는 통합 지원 모델을 구축할 예정이다.
암환자 273만 명 시대, 암은 이제 극복 불가능한 재앙이 아니라 관리 가능한 만성질환으로 패러다임이 전환되고 있다. 앞으로의 과제는 단순한 생존을 넘어, 암 생존자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고령화된 암 환자들을 위한 맞춤형 돌봄 체계를 구축하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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