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사고 이력 공개 제도 도입에 대한 대한의사협회의 공식 반대 입장
의료사고는 의료 행위 과정에서 발생하는 예기치 못한 결과로, 환자와 의료진 모두에게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다. 최근 정치권과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의사 개인의 의료사고 이력을 대중에게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그러나 대한의사협회는 30일 이러한 제도 도입이 의료 현장의 본질적인 특성을 왜곡하고 필수의료 체계를 붕괴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하며 강력한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의협은 환자의 아픔에 공감하면서도, 이력 공개가 가져올 부작용이 환자 안전에 더 큰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의료 행위의 특수성과 불가피한 결과의 구분 필요
의료는 본질적으로 질병이나 손상을 입은 환자를 대상으로 하며, 모든 치료 과정에는 일정 수준의 위험이 수반된다. 중증 외상, 응급 수술, 고위험 분만, 장기 이식 등 난도가 높은 진료 분야에서는 의료진이 최선을 다하더라도 합병증이나 사망과 같은 부정적인 결과가 발생할 가능성이 상존한다.
의협은 이러한 예기치 못한 결과를 모두 의료사고라는 틀에 가두고 의사의 과실이나 실력 부족으로 단정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실제 임상 현장에서는 환자의 기저질환, 중증도, 예측하기 어려운 치료 반응 등 외부 요인에 의해 결과가 좌우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사고라는 용어로 통칭되는 사건들 중에는 의학적으로 불가피한 합병증이 포함돼 있어 이를 일방적으로 공개하는 것은 사실 관계를 왜곡할 소지가 크다는 것이다.
통계적 수치가 초래하는 숙련의와 신규 의사의 역전 현상
의료사고 건수를 단순 수치화하여 공개할 경우 발생하는 가장 큰 모순은 고위험 환자를 전담하는 숙련된 의사가 오히려 위험한 의사로 낙인찍힐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 다른 병원에서 수술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된 중증 환자를 받아 집도하는 의사는 상대적으로 사고 발생 확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
반면 위험도가 낮은 환자 위주로 진료하거나 수술 경험이 적은 의사는 무사고 의사로 분류되는 왜곡이 발생한다. 이는 수천 건의 고난도 수술을 시행하며 생명을 살려온 외과의사가 오늘 처음 메스를 잡은 의사보다 부적격한 인물로 비춰지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러한 지표는 환자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여 의료 선택권을 오히려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방어진료 확산과 필수의료 붕괴에 대한 경고
의협은 의료사고 이력이 공개될 경우 의사들은 자신의 기록을 관리하기 위해 위험 부담이 큰 환자를 기피하는 방어진료를 선택하게 된다고 우려했다. 고령 환자나 합병증 위험이 높은 응급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전원시키거나, 수술 대신 보수적인 치료만을 고집하는 경향이 뚜렷해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는 결국 치료가 시급한 환자들이 적기에 수술을 받지 못하는 상황으로 이어지며, 이미 인력 부족과 사법 리스크로 위기를 겪고 있는 흉부외과, 산부인과, 응급의학과 등 필수의료 분야의 이탈을 가속화한다. 의협은 이러한 제도가 의료 사고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위험한 환자를 맡으려는 의사 자체를 사라지게 만드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문가 단체의 자율규제를 통한 환자 안전 확보 방안
의협은 정보 공개라는 징벌적 방식 대신 전문가 단체의 자율규제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 실질적인 해결책이라고 제안했다. 특정 의료 행위에 대한 수련과 교육 과정을 인증하고 평가하는 것은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영역이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해당 의사가 진료를 계속할 역량이 있는지를 전문가 집단이 엄격히 조사하고 심사하는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환자 안전을 실질적으로 보호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의협은 의료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낙인식 공개 제도는 공론화의 대상조차 될 수 없음을 분명히 했으며, 향후 관련 토론회 참석을 거부하는 등 강경한 태도를 유지할 방침이다. 의료진이 위축되지 않고 소신껏 진료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국민의 생명권이 온전히 보장될 수 있다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