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철이 200만년? 200만년간 이어진 장마, 공룡 시대의 서막을 열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습기와 끝없이 이어지는 빗소리. 현대인들에게 장마는 잠시 스쳐 지나가는 불편함일지 모르지만, 지구 역사의 한 페이지에는 인류의 상상을 초월하는 거대한 비의 기록이 새겨져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2억 3,400만 년 전, 트라이아스기 후기의 지구는 문자 그대로 ‘물에 잠긴 행성’이었다. 며칠 혹은 몇 달이 아니라, 무려 200만 년이라는 영겁의 시간 동안 비가 멈추지 않고 쏟아졌다면 믿어지겠는가. ‘카르니안 절 우기 사건(Carnian Pluvial Episode)’이라 불리는 이 경이로운 현상은 단순히 기후의 변화를 넘어, 지구 생태계의 주인을 완전히 뒤바꾼 거대한 전환점이 됐다.
당시 지구는 모든 대륙이 하나로 뭉친 초대륙 ‘판게아’의 시대였다. 대륙의 중심부는 바다와 멀리 떨어져 있어 극도로 건조했고, 붉은 사암층이 끝없이 펼쳐진 황량한 사막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 시작된 빗줄기는 멈출 줄 몰랐고, 이 끈질긴 장마는 공룡이라는 위대한 생명체의 서막을 여는 축복이자 다른 생명체들에게는 가혹한 재앙이 됐다.

35%의 해양 생물을 삼킨 죽음의 빗줄기와 생태계 붕괴
200만 년간 이어진 장마는 육상 식물들에게는 성장의 기회였을지 모르나, 바다 속 생명체들에게는 종말의 전주곡이었다. 갑작스럽게 증가한 강수량은 육지의 흙과 무기 염류를 맹렬한 기세로 바다로 씻어 내렸다. 이 과정에서 바다의 영양분이 과잉 공급되는 부영양화 현상이 발생했고, 이는 해양 플랑크톤의 폭발적인 증식으로 이어졌다. 플랑크톤이 죽어 부패하면서 바다 속 산소를 모두 소모해버리자, 거대한 ‘데드 존(Dead Zone)’이 형성됐다.
2020년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이 시기 해양 생물종의 약 35%가 멸종했다. 특히 산호초 생태계는 직격탄을 맞았다. 바다의 산성화와 산소 부족으로 인해 당시 바다를 지배하던 암모나이트와 코노돈트, 그리고 초기 경골어류들이 떼죽음을 당했다. 지층 속에 남겨진 해양 생물의 화석들은 이 시기에 급격한 종의 교체가 일어났음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바다는 고요해졌고, 생태계의 사슬은 끊어졌다. 하지만 이러한 파괴의 현장 너머에서, 육상의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던 미미한 존재들이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공룡이라는 새로운 지배자를 탄생시킨 환경적 적자생존
장마가 시작되기 전, 공룡은 전체 육상 동물 중 불과 5% 미만을 차지하는 소수 세력에 불과했다. 당시의 주역은 악어의 조상 격인 파충류들이나 거대한 양서류들이었다. 그러나 200만 년간 이어진 장마는 식물상의 대대적인 변화를 불러왔다. 건조한 기후에 강했던 식물들이 사라지고, 습한 기후에서 빠르게 자라는 거대한 침엽수와 소철류가 밀림을 이뤘다. 공룡은 이 변화를 기회로 삼았다. 공룡은 다른 파충류와 달리 다리가 몸 아래로 곧게 뻗어 있어 기동성이 뛰어났고, 이는 울창해진 밀림 사이를 누비며 먹이를 찾는 데 유리했다.
또한 공룡 특유의 효율적인 호흡 시스템인 ‘기낭’ 구조는 화산 활동으로 산소 농도가 낮아진 환경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특히 질긴 식물을 소화하기 위해 돌을 삼켜 위 속에서 음식물을 으깨는 ‘위석’을 활용하는 능력은 공룡이 새로운 식물 자원을 독점하게 만들었다. 장마가 끝날 무렵, 공룡은 육상 생태계의 90% 이상을 점유하며 명실상부한 지구의 지배자로 우뚝 섰다. 200만 년의 비가 공룡에게는 왕좌로 향하는 레드카펫이 된 셈이다.

랭겔리아 화산 폭발이 불러온 거대한 기후 변화의 방아쇠
그렇다면 대체 무엇이 200만 년이라는 믿기 힘든 시간 동안 비를 뿌리게 만든 것일까. 가장 유력한 가설은 오늘날 캐나다 서부와 알래스카 지역에 해당하는 ‘랭겔리아(Wrangellia)’ 지층의 거대한 화산 폭발이다. 약 500만 입방킬로미터에 달하는 엄청난 양의 용암이 분출되면서 대기 중으로 막대한 양의 이산화탄소와 온실가스가 배출됐다. 이로 인해 지구의 평균 기온은 섭씨 3도에서 10도 가까이 급상승했다. 뜨거워진 바다는 더 많은 수증기를 증발시켰고, 이는 강력한 대기 순환을 유도하여 초대륙 판게아 깊숙한 곳까지 비구름을 실어 날랐다.
또 다른 가설로는 지각 변동으로 인해 새로운 바다인 ‘신 테티스 해’가 열리면서 습한 공기가 산맥에 부딪혀 비를 뿌렸다는 조산 운동설도 존재한다. 원인이 무엇이든, 이 사건은 지구가 스스로의 온도를 조절하는 메커니즘이 붕괴됐을 때 어떤 극단적인 결과가 나타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다. 화산이 뿜어낸 연기와 열기가 구름이 되고, 그 구름이 다시 대지를 적시는 순환 구조가 200만 년 동안 고착화되면서 지구는 유례없는 습윤기를 겪게 됐다.

지질학적 대격변이 빚어낸 새로운 생태계의 질서
200만 년간 이어진 장마가 잦아들었을 때, 지구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탈바꿈해 있었다. 가혹했던 우기는 수많은 생명을 앗아갔지만, 동시에 새로운 생명의 가능성을 열어젖혔다. 오늘날 우리가 박물관에서 마주하는 거대한 공룡들의 골격은 사실 2억 년 전 쏟아졌던 그 빗줄기가 빚어낸 결과물이다. 카르니안 절 우기 사건은 자연의 변화가 때로는 파괴적이지만, 그 파괴의 끝에는 언제나 새로운 질서가 탄생한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만약 그때 비가 내리지 않았다면, 혹은 200만 년이 아니라 단 몇 년 만에 그쳤다면 지구의 역사는 우리가 아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지도 모른다.
장마가 남긴 지층 속의 흔적들은 오늘날 우리에게 기후 변화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얼마나 절대적인지를 묵묵히 웅변하고 있다. 자연의 거대한 시계 속에서 200만 년의 비는 찰나의 순간일지 모르나, 그 찰나가 만든 변화는 1억 6천만 년이라는 공룡의 시대를 지탱하는 단단한 기초가 됐다. 지구는 지금도 끊임없이 변화하며 또 다른 시대를 준비하고 있으며, 우리는 그 거대한 흐름 속에서 과거가 남긴 기록을 통해 미래를 엿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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