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법상 경영책임자등, 하급심 판결로 책임 범위 재정립됐다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중대재해처벌법’)상 ‘경영책임자등’의 정의와 책임 범위에 대한 법원의 해석 기준이 최근 하급심 판결을 통해 구체화되고 있다. 특히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과 ‘이에 준하여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 사이의 관계, 그리고 최고안전책임자(CSO) 선임 시 대표이사의 면책 여부에 대한 법원의 입장이 엇갈리면서 기업들의 혼란이 가중됐다.
수원지방법원 여주지원과 의정부지방법원은 각각 2025년 12월 19일과 2026년 2월 10일 선고된 판결에서 경영책임자등의 판단 기준을 설시하며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의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됐다고 법조계는 전했다.

중대재해처벌법상 ‘경영책임자등’ 정의와 해석상 쟁점
중대재해처벌법 제2조 제9호는 ‘경영책임자등’을 ‘가.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 또는 이에 준하여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과 ‘나. 중앙행정기관의 장, 지방자치단체의 장, 지방공기업의 장, 공공기관의 장’으로 정의한다. 이 중 가목의 해석을 두고 크게 세 가지 쟁점이 제기된다.
첫째, 가목 전단의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의 범위, 둘째, 가목 후단의 ‘이에 준하여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의 범위, 셋째, 가목 전단과 후단을 잇는 접속사 ‘또는’의 해석이다. 이러한 쟁점들은 법률 제정 당시부터 명확성의 원칙 위반 논란을 낳았으며, 다양한 해석이 제시돼왔다.
최청희 법무법인 CNE 대표변호사는 “중대재해처벌법상 경영책임자등의 정의와 책임 범위가 최근 하급심 판결을 통해 구체화되고 있다”며, “특히 최고안전책임자(CSO) 선임 시 대표이사의 면책 가능성을 인정한 수원지방법원 여주지원의 판결은 기업의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에 중요한 기준점을 제시한다”고 설명했다.
입법 과정에서 본 ‘경영책임자등’ 범위 논의
가목 전단에 대한 해석은 법률상 대표권한을 가진 대표이사 등으로 한정해야 한다는 견해와, 실질적으로 사업을 대표하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견해가 대립했다. 입법 당시 상정된 법률안들을 보면 ‘법인의 대표이사, 이사’ 등 법률상 대표권한을 가진 자를 공통적으로 규정하면서도, ‘법률상 대표이사나 이사가 아닌 자로서, 해당 법인의 의사결정에 실질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를 포함할지 여부에서 차이를 보였다.
법제사법위원회 심의 과정에서는 실질적인 대표자는 법률상 대표권자의 공범으로 처벌할 수 있으므로 제외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으나,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에게 책임을 지우는 것이 입법 취지라는 점과 비영리법인 등까지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이 반영돼 현행과 같은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이라는 문구로 수정됐다.
가목 후단인 ‘이에 준하여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은 주로 CSO의 포함 여부가 쟁점이다. 입법 과정에서 정부가 제시한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이사’라는 표현이 반영됐는데, 이는 안전보건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자가 있다면 대표자라는 이유만으로 처벌하는 것은 책임주의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의견에 따른 것이다. 실질적인 결정권이 없는 경우까지 처벌하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이에 준하는’이라는 문구가 추가됐다.
전단과 후단을 연결하는 ‘또는’의 해석 역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이는 전단이 없는 경우 잔여적으로 후단을 경영책임자등으로 볼지, 양자를 중첩적 또는 병렬적 관계로 볼지, 아니면 선택적 또는 택일적 관계로 볼지, 나아가 후단이 있는 경우 전단이 면책되는 것으로 볼지(면책설) 등으로 나뉜다.
입법 논의 결과, 법률상 대표자와 실질적 대표자를 단순 나열하거나 ‘및’으로 연결할 경우 실질적인 책임 여부와 관계없이 모두 처벌하게 되는 문제를 피하기 위해 ‘또는’으로 연결하는 방식이 채택됐다. 이는 실질적 관점에서 안전보건 업무를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을 처벌 대상으로 삼고, 사업 대표자와 안전보건 총괄자의 분리 가능성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수원지방법원 여주지원 2025. 12. 19. 선고 2024고단1264 판결: CSO 선임 시 대표이사 면책 인정
경기 이천시 창고시설 신축 공사 중 발생한 근로자 사망 사고와 관련하여, 수원지방법원 여주지원은 도급업체 대표이사의 경영책임자등 해당 여부와 CSO 선임 시 대표이사의 면책 여부를 판단했다. 과거 창원지방법원 통영지원은 CSO를 선임하더라도 대표이사의 경영책임자 지위가 부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또는’을 병렬적 관계로 해석한 바 있다.
그러나 수원지방법원 여주지원은 2025년 9월 23일 수원지방법원 판결과 동일하게 면책설의 입장을 취했다. 재판부는 CSO가 ‘사업의 안전 및 보건 확보의무’를 수행할 수 있는 권한과 책임이 있다면 경영책임자등에 해당하며, 그에 따라 대표이사인 CEO의 경영책임자성은 부정된다고 봤다.
재판부는 이러한 입장의 논거로 CSO 선임에도 CEO를 항상 함께 처벌하는 것은 기업 운영 현실에 반할 수 있다는 점, 대기업의 경우 사업 부문별 안전·보건 총괄책임자 선임이 종사자 보호에 더 충실할 수 있다는 점, 안전보건최고책임자를 안전보건 업무에 한하여 사업총괄책임자와 다름없는 권한을 행사하는 자로 해석하면 실무자만 처벌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 시행령상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및 이행 조치 내용이 반드시 대표이사가 결정권을 행사해야만 하는 조치가 아니며 상당 부분 위임될 수 있는 성격의 업무라는 점을 들었다.
다만, 재판부는 CSO가 상당한 결정 권한을 가지고 있더라도 최종적인 의사결정 권한은 결국 대표이사와 같은 사업총괄책임자가 행사해야 하는 개별적 사안에서는 사업총괄책임자가 최종 의사결정권을 행사했고 중대재해가 그 의사결정 사안과 관련됐다고 인정되는 경우, CSO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사업총괄책임자를 경영책임자등으로 보아 처벌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여주지원은 이러한 기준에 따라 사고 기업이 안전보건전담조직을 구축하고 CSO에게 안전·보건 업무 전결권을 부여한 점, CEO가 건설 업무에 익숙하지 않은 반면 CSO가 30년 건설업무 경험을 가진 사내이사인 점 등을 고려하여 CSO의 경영책임자성을 인정하고 CEO의 경영책임자성을 부정했다.
의정부지방법원 2026. 2. 10. 선고 2023고단834 판결: 회장 책임 인정에 엄격한 기준
2022년 1월 양주시 채석장에서 발생한 토사 붕괴 사망 사고와 관련하여, 의정부지방법원은 회사가 소속된 그룹의 회장을 중대재해처벌법상 경영책임자등으로 특정하여 기소된 사건을 심리했다. 해당 회사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 대비하여 안전보건 조직을 개편하고 안전업무에 관한 전결권을 가진 ‘안전보건 경영책임자'(CSO) 직책을 신설했다.
의정부지방법원은 중대재해처벌법상 수범자인 경영책임자등은 기본적으로 대표이사에 해당하며, 대표이사가 아닌 자를 경영책임자등으로 인정하기 위해서는 ‘대표이사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대표이사 아닌 자에게 실질적·구체적으로 법인의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다는 점 및 그로 인해 대표이사가 중대재해처벌법에 규정된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하였다는 점 등이 입증되어야 한다’고 판시했다.
법원은 그룹 회장이 그룹 차원의 정례보고 및 각종 회의에 참석한 사실은 있으나, 그러한 보고 및 회의가 그룹 회장이 경영책임자로서 경영상 주요 현안을 보고받고 안전보건업무를 포함한 사업을 총괄하여 경영상 결정을 내리는 절차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또한 그룹 회장으로부터 각 부문별 대표자 또는 담당 임원 등에게 일부 지시가 이루어진 사정만으로는 대표이사가 중대재해처벌법에 규정된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했다는 점이 입증됐다고 보기에는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이는 대표이사가 아닌 사람을 중대재해처벌법상 수범자로 판단하기 위한 예외적 기준을 엄격하게 해석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급심 판결의 의의 및 기업의 시사점
이번 두 건의 하급심 판결은 회장, 대표이사, CSO가 존재하는 경우 중대재해처벌법의 수범자인 경영책임자등을 누구로 보아야 할지에 대한 중요한 판단 기준을 제시했다. 원칙적으로는 대표이사를 경영책임자로 평가하되,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 및 이행에 관한 전결 권한을 실질적으로 위임받은 CSO가 있는 경우 또는 대표이사의 안전보건확보의무 이행을 불가능하게 할 정도로 권한을 가진 회장이 있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대표이사가 경영책임자로 인정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특히 수원지방법원 여주지원의 판결은 CSO의 실질적 권한과 책임을 인정하여 대표이사의 면책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반면 의정부지방법원은 대표이사 외의 인물을 경영책임자로 인정하는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했다.
이러한 판결들은 기업들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CSO를 선임하는 기업의 경우, 사업의 규모나 사업 부문 간 관계, 의사결정구조의 특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CSO에게 안전보건 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충분한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 또한 CSO가 실제 최종적인 의사결정 권한을 행사하도록 조직 체계를 명확히 하고, 관련 증거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궁극적으로 중대재해처벌법의 입법 취지인 종사자의 안전 확보를 위해서는 형식적인 직책 부여를 넘어 실질적인 안전보건 관리 체계 구축과 책임 이행이 필수적이다.
김진환 법무법인 지금 변호사는 “중대재해처벌법상 ‘경영책임자등’ 정의에서 ‘또는’의 해석을 둘러싼 논란이 여전하다”며, “실질적인 안전보건 업무의 최종 결정권이 누구에게 있었는지에 따라 경영책임자등의 범위가 달라질 수 있으므로 기업들은 이를 명확히 인지하고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