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0원대 덫에 걸린 원화, 한은 총재와 美 재무장관이 우려하는 ‘구조적 환율 오버슈팅’의 딜레마
2025년 4분기부터 2026년 현재까지 원-달러 환율은 1달러당 1,400원 후반에 고착됐다. 이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최고 수준의 원화 약세다. 환율은 통상 국가 경제의 체력을 반영하는 지표로 불리지만, 현재 한국 경제는 사상 최대 수출 성적을 기록하고 있고 물가 수준 역시 안정돼 있다. 실제로 2026년 1월 1일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2025년 연간 수출입 동향 및 2026년 전망’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수출은 전년 대비 4.6% 증가하며 6,600억 달러를 돌파, 역대 최대 실적을 경신하며 견고한 펀더멘털을 입증했다.
국가 부도 위험을 나타내는 CDS 프리미엄마저 긍정적인 상황이다. 2026년 1월 16일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한국의 CDS 프리미엄은 대외 불확실성 속에서도 30bp 중반대의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하며 국가 신용도에 대한 국제 사회의 신뢰를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거시 경제의 펀더멘털이 견고함에도 불구하고 환율이 이례적으로 높은 수준에 머무르는 현상은 단순한 시장 변동성을 넘어 구조적인 문제임을 시사한다.
이 같은 환율 흐름은 결국 해외 자산을 보유하지 못한 개인들의 자산 가치를 급속도로 낮추는 결과를 낳고 있으며, 시장 참여자들의 달러 과매수 심리를 부추기며 악순환을 형성하고 있다. 현재의 고환율 현상은 경제 기초체력과 괴리된 ‘구조적 환율 오버슈팅’으로 분석된다.

외환위기 이후 최고 수준, 펀더멘털과의 괴리 심화
원-달러 환율이 1,400원 후반대에서 장기간 머무르는 것은 원화 가치가 과도하게 저평가됐음을 의미한다. 이는 우리나라 돈값이 너무 저렴해져 미국 달러를 포함한 다른 나라 화폐와 교환할 때 더 많은 원화를 지불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신년사에서 현재 환율 수준이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과 “상당히 괴리돼 있다”고 공식적으로 진단했다. 2026년 1월 2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관에서 열린 시무식 신년사에서 이창용 총재는 “최근 1,400원대 후반의 환율은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과 괴리가 큰 수준”이라며, “거주자의 해외증권투자가 외환시장의 수급 불균형을 초래해 환율 상승 압력을 가하고 있다”고 구체적인 원인을 적시했다. 일반적으로 국가의 경제 체력이 강하면 환율은 하락 안정화되는 것이 정상이지만, 2026년 현재 한국의 수출 성적표와 안정된 물가 수준은 이러한 경제 논리를 따르지 않고 있다. 시장이 거시 경제 지표보다 더 큰 외부 충격과 구조적 불안정성을 반영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美 재무장관의 이례적 개입, 환율 조작 의혹 차단 포석
원-달러 환율이 이례적으로 높아지자 미국의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이 직접 나서는 상황이다. 베선트 장관은 ‘최근 원화 가치 하락은 한국의 강한 경제 기초체력과 부합하지 않는다’며 원화 약세 수준이 과도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2026년 1월 14일(현지시간) 미국 재무부가 발표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스콧 베선트 장관은 구윤철 경제부총리와의 면담에서 “최근의 원화 가치 하락은 한국의 강력한 경제 성과와 부합하지 않는다”고 언급하며, 한국을 미국의 핵심적인 경제 파트너로 재확인하는 이례적인 구두 개입성 발언을 내놓았다.
미국이 이처럼 공개적으로 한국의 환율 문제에 대해 언급한 배경에는 한국이 수출 시장에서의 가격경쟁력 확보를 위해 환율을 조작하고 있지 않느냐는 의혹을 선제적으로 차단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수출경쟁력만을 놓고 보면 원화 가치가 낮은 편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국은 위안화를 저평가하기 위해 상시적으로 환율을 조작하는지 여부에 대해 국제사회의 의심을 받고 있다.
베선트 장관의 발언 이후 원-달러 환율은 1,470원대에서 1,460원대로 일시적으로 떨어졌지만, 국내 은행과 개인투자자들의 달러 매수세가 끊임없이 이어지며 금세 1,470~1,480원대로 다시 올라섰다. 이는 시장의 구조적인 달러 선호 심리가 단기적인 당국 개입으로는 해결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다.

구조적 환율 오버슈팅, 대외 환경 변화가 원인
최근 증권사와 언론사들이 현재의 환율 상황을 분석하며 ‘오버슈팅’이라는 개념을 자주 사용한다. 오버슈팅은 거시경제에 충격이 발생했을 때 환율이 순간적으로 적정 수준을 크게 벗어났다가 점진적으로 복귀하는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이다.
2026년 1월 15일 한국경제신문 ‘워싱턴 나우’ 보도에 인용된 학계의 분석에 따르면, 통화 가치가 실질 가치와 크게 괴리될 경우 3년 내에 그 괴리 폭의 절반가량이 회복된다는 실증적 연구 결과가 존재한다. 이러한 과거의 학술적 데이터는 현재 2026년 1월의 극심한 원화 저평가 국면이 결국 시장의 ‘오버슈팅’이며, 장기적으로는 펀더멘털에 수렴할 수밖에 없음을 시사하는 강력한 논리적 근거가 된다. 그러나 2025년과 2026년의 원-달러 환율 흐름은 일시적 충격이 아닌 ‘구조적 오버슈팅’의 성격을 강하게 띤다.
글로벌 증시 호황, 보호무역주의 강화에 따른 관세 문제, 그리고 미국이 동맹국들에게 요구하는 대미 투자 강요 등 복합적인 대외 환경이 기업과 개인 모두에게 달러 자산의 안전성과 수익성을 동시에 인식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합리적인 시장 참여자들은 위험 회피 및 자산 증식 목적으로 달러를 과매수할 수밖에 없다. 구조적 변화에 대한 시장의 믿음이 형성되지 않는 한, 환율이 펀더멘털에 맞는 적정 수준으로 조정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가계부채 딜레마, 금리 인상 카드를 쓸 수 없는 이유
환율 오버슈팅 이론에 따르면, 중앙은행이 즉시 금리를 인상하여 자국 통화의 매력을 높이면 환율을 빠르게 안정시킬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은행은 이 카드를 쉽게 사용할 수 없는 심각한 딜레마에 빠져 있다. 현재는 주요국들이 금리 인하를 논의하는 글로벌 추세에 놓여 있는 데다, 한국은 세계적으로도 높은 수준의 가계부채를 안고 있다. 2026년 1월 15일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환율이 매우 중요한 요인임은 확실하지만, 국내 경기와 가계부채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언급하며 기준금리를 연 2.5%로 5회 연속 동결한 배경을 설명했다. 만약 한국은행이 환율 안정을 위해 금리를 잘못 올릴 경우, 가계의 원리금 상환 부담이 급증하여 소비가 위축되고 경기가 급속도로 얼어붙는 최악의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미국의 재무부장관과 한국은행 총재가 동시에 나서서 환율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 것은 금리 변화나 직접적인 외환시장 개입(환율 조작) 없이, 시장 참여자들의 심리적 불안정을 해소하고 오버슈팅을 진정시키려는 고육지책으로 풀이된다.
구조적 불안정 해소 없이는 고환율 장기화 불가피
현재와 같은 구조적 환율 오버슈팅 상황은 해외 자산을 사들이지 못한 대다수 개인의 자산 가치를 급속도로 낮추는 사회적 문제를 야기한다. 자산 방어 심리가 확산될수록 너도나도 달러나 달러로 표시된 자산을 보유하려는 경향이 강화되며, 이는 다시 구조적인 환율 상승 압력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는 일본이 과거 겪었던 어려움과 유사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단기적인 외환시장 개입이나 구두 개입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한국 경제를 둘러싼 대외 환경의 구조적 불안정성이 해소되고 시장 참여자들에게 환율이 적정 수준으로 복귀할 것이라는 확신을 줄 수 있는 근본적인 구조 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한미 당국의 공동 대응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구조적 불안 심리가 해소되지 않는다면, 한국 경제는 1,400원대 고환율 장기화라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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