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없는 암살자 심근경색, 전조증상 없는 비전형적 심장마비 신호 파악
심혈관 질환 중에서도 가장 치명적인 질환으로 꼽히는 급성 심근경색은 심장 근육에 혈액을 공급하는 관상동맥이 갑작스럽게 막히면서 심장 근육이 괴사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흔히 심근경색이라고 하면 가슴을 쥐어짜는 듯한 강렬한 통증을 떠올리지만, 실제 환자 중 상당수는 이러한 전형적인 증상을 겪지 않는다.
특히 현재 의료계의 통계에 따르면 심근경색 환자의 약 20~30%는 가슴 통증 대신 소화불량, 치통, 어깨 결림 등 엉뚱한 부위의 불편함을 호소하며 골든타임을 놓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소리 없는 암살자라는 별칭이 붙은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40대부터 70대에 이르는 중장년층은 기저질환이나 노화로 인해 통증 감각이 둔해질 수 있으므로, 비전형적인 신호를 사전에 숙지하는 것이 생존율을 높이는 핵심적인 요소가 된다.

가슴 통증 없는 침묵의 신호 비전형적 증상의 기전
심장에서 시작된 통증이 다른 부위에서 느껴지는 현상을 ‘방사통’이라고 한다. 이는 심장 신경과 연결된 척수 신경이 어깨, 목, 턱 등의 감각을 담당하는 신경과 같은 경로를 공유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뇌가 심장의 통증 신호를 주변 부위의 통증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2019년 12월 3일 학술지 European Heart Journal: Quality of Care and Clinical Outcomes에 게재된 스웨덴 웁살라 대학교(Uppsala University) Johan Herlitz 교수팀의 [Atypical symptoms in patients with acute coronary syndrome: prevalence, characteristics, and outcomes] 연구 결과, 급성 심근경색 환자 중 가슴 통증을 호소하지 않은 비전형적 증상군이 전형적 증상군에 비해 병원 도착 시간이 늦어지고 사망 위험이 유의미하게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턱 끝이 찌릿하거나 왼쪽 어깨와 팔 안쪽이 뻐근한 느낌이 지속된다면 이는 단순한 근육통이 아닌 심장의 절규일 가능성이 크다. 김경래 민병원 내과 대표원장은 “급성 심근경색 환자의 상당수가 가슴 통증이 아닌 소화불량이나 어깨 통증으로 병원을 찾는다”며 “이러한 비전형적 증상은 진단을 늦추어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상복부의 불쾌감이나 심한 소화불량 역시 심근경색의 주요 신호 중 하나다. 심장의 아래쪽 벽을 담당하는 하벽 심근경색이 발생하면 위장 인접 부위에 자극이 가해져 구토, 메스꺼움, 속 쓰림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평소 위장 질환이 없던 사람이 갑자기 식은땀을 흘리며 명치 부위의 압박감을 느낀다면 소화제보다는 즉시 응급 의료기관을 방문해 심전도 검사를 받아야 한다. 이러한 증상은 활동 시에 심해졌다가 휴식을 취하면 일시적으로 완화되는 경향이 있어 단순 피로로 오인하기 쉽지만, 혈관 폐쇄가 진행될수록 증상의 빈도와 강도는 점차 강해지게 된다.
고령층 및 당뇨 환자에게 빈번한 무통증 심근경색 위험성
당뇨병을 오래 앓았거나 나이가 많은 고령층일수록 심근경색의 전형적인 가슴 통증을 느끼지 못할 확률이 비약적으로 높아진다. 당뇨병으로 인한 말초신경병증은 통증을 전달하는 신경계를 손상시켜, 심장에 심각한 허혈 상태가 발생해도 이를 뇌로 전달하지 못하게 방해한다. 2021년 3월 23일 학술지 Circulation에 게재된 미국 하버드 의과대학(Harvard Medical School) 연구팀의 [Sex Differences in Symptom Presentation in Ischemic Heart Disease] 논문에 따르면, 고령 환자와 여성 환자에서 호흡곤란, 극심한 피로감, 어지러움과 같은 비전형적 증상이 나타날 확률이 남성보다 유의미하게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환자가 스스로 상태의 위중함을 인지하지 못하게 하여 골든타임인 2시간 이내의 관상동맥 중재술(PCI) 기회를 상실하게 만드는 주원인이 된다.
홍성수 비에비스나무병원 병원장은 “당뇨병 환자나 고령층은 신경 손상으로 인해 통증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무통성 심근경색’이 흔하다”며 “가슴이 답답하거나 갑작스러운 호흡곤란이 오면 즉시 혈관 상태를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통증이 없더라도 평소보다 숨이 차서 걷기 힘들거나, 갑자기 전신에 힘이 빠지면서 식은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면 지체 없이 응급실을 찾아야 한다. 특히 현재 의료 환경에서 이러한 무통성 심근경색은 고위험군 환자들에게 예상치 못한 돌연사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어, 정기적인 심혈관 검진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사진=AI 생성 이미지)
응급실 방문 타이밍 결정하는 신체 부위별 뻐근함 식별법
심근경색의 신호와 단순 근육통을 구분하는 가장 큰 기준은 통증의 양상과 동반 증상이다. 일반적인 근육통은 특정 부위를 눌렀을 때 통증이 심해지거나 움직임에 따라 통증이 변하지만, 심근경색으로 인한 방사통은 위치가 불분명하고 내부에서 쥐어짜거나 압박하는 듯한 둔탁한 통증이 특징이다. 예를 들어 목이나 턱이 뻐근할 때 고개를 돌리거나 입을 벌리는 동작과 상관없이 통증이 지속된다면 심장 이상을 의심해야 한다. 특히 등에 담이 걸린 듯한 통증이 왼쪽 날갯죽지 부위에서 시작되어 팔로 뻗쳐나가는 경우, 이는 관상동맥 협착이 진행되고 있다는 강력한 경고일 수 있다.
응급 상황 발생 시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은 자가 진단으로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 것이다. 청심환을 먹거나 손가락을 따는 등의 민간요법은 치료 시기를 늦출 뿐만 아니라 환자의 상태를 악화시킬 수 있다. 현재 응급 의료 시스템에서는 환자가 가슴 통증 외의 증상을 보이더라도 심근경색 가능성을 열어두고 효소 검사와 심전도를 병행한다. 2020년 8월 25일 학술지 Journal of the American College of Cardiology (JACC)에 게재된 [The Impact of Atypical Symptoms on the In-Hospital Mortality of Patients with Acute Myocardial Infarction] 연구에 따르면, 비전형적 증상을 보이는 환자들에 대한 의료진의 빠른 의구심과 검사가 예후 개선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본인이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 등 위험 인자를 보유하고 있다면, 몸에서 느껴지는 작은 변화라도 가볍게 넘기지 않는 민감한 대처가 현재로서는 최선의 예방법이다.
심근경색은 예방과 빠른 대응이 생사를 가르는 질환이다. 가슴 통증이라는 전형적인 공식에 매몰되지 않고, 목, 턱, 어깨, 상복부 등에서 느껴지는 기이한 뻐근함과 불쾌감을 심장의 신호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하다. 갑작스러운 식은땀과 호흡곤란이 동반된다면 망설임 없이 119를 호출하거나 가장 가까운 권역심뇌혈관질환센터로 이동해야 한다. 이러한 사실을 인지하고 실천하는 것만이 소리 없는 암살자로부터 자신의 생명을 지키는 확실한 방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