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트레스를 받으면 살이 더 찌는 이유는? ‘투쟁-도피(Fight-or-Flight)’ 반응 활성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이 과도한 스트레스를 겪으며 일상을 보낸다. 스트레스는 단순히 정신적인 문제를 넘어 신체적인 변화, 특히 체중 증가라는 예상치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많은 이들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식욕이 떨어지고 자연스럽게 살이 빠질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실제로는 이와 반대의 경우가 흔하게 관찰된다. 이는 스트레스 상황에 대한 우리 몸의 복잡한 생리학적 반응과 다양한 호르몬의 상호작용 때문이다. 단순히 의지만으로 통제하기 어려운, 깊이 뿌리내린 생체 메커니즘이 작용하는 것이다.
우리 몸은 위협적인 상황이나 스트레스에 직면했을 때, 생존을 위한 본능적인 ‘투쟁-도피(Fight-or-Flight)’ 반응을 활성화한다. 이 반응은 인류가 원시 시대부터 생존을 위해 발전시켜 온 중요한 생체 방어 시스템이다. 급박한 상황에서 빠르게 에너지를 동원하고, 감각을 예민하게 하며, 고통을 일시적으로 잊게 하는 등 생존 확률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이 과정에서 부신 피질에서 분비되는 ‘코르티솔’이라는 스트레스 호르몬의 분비가 급격히 증가한다. 코르티솔은 에너지를 저장하고, 특정 영양소 대사를 변화시키며, 심지어 식욕을 자극하는 등 체중 증가에 직접적이고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더 나아가, 만성적인 스트레스는 우리의 식습관, 수면 패턴, 신체 활동량 등 전반적인 생활 방식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 체중 증가의 악순환을 심화시키는 촉매제가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스트레스를 받으면 살이 빠지기보다 오히려 더 찌는, 이처럼 복잡하고 역설적인 생체 반응을 겪게 되는 걸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통해 스트레스가 체중에 미치는 지대한 영향을 깊이 이해하고, 나아가 건강한 체중 관리를 위한 보다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스트레스 관리 없이 건강한 체중을 유지하려는 노력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다름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코르티솔 호르몬의 작용과 체중 증가
스트레스 상황이 발생하면 우리 몸의 부신에서는 코르티솔이라는 호르몬이 평소보다 훨씬 다량으로 분비된다. 코르티솔은 원래 비상 상황에서 우리 몸이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포도당 생산을 늘리고 혈압을 높이는 등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 하지만 만성적인 스트레스로 인해 코르티솔이 지속적으로 높은 수치를 유지하게 되면, 이는 단순한 에너지 동원 호르몬을 넘어 체중 증가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다.
코르티솔은 간에서 포도당 생성을 촉진하여 혈당 수치를 높이고, 이로 인해 췌장에서는 혈당을 낮추기 위해 인슐린이 과도하게 분비된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세포가 인슐린에 둔감해지는 ‘인슐린 저항성’이 유발되며, 결국 남는 포도당이 지방으로 쉽게 전환되어 체내에 축적된다.
특히 코르티솔은 복부 주변에 내장 지방이 집중적으로 쌓이는 데 크게 기여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졌다. 내장 지방은 단순한 지방 축적을 넘어 다양한 염증성 물질을 분비하여 대사 질환의 위험을 높이므로 더욱 심각한 문제로 여겨진다. 또한, 코르티솔은 근육 단백질을 분해하여 포도당으로 전환시키기도 하는데, 이는 기초대사량을 낮춰 장기적인 체중 관리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도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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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와 식욕 변화의 연관성
스트레스는 우리의 식욕 조절 시스템에 심각한 혼란을 야기한다. 순간적인 급성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교감신경계의 활성화로 인해 일시적으로 식욕이 감소할 수 있다. 하지만 스트레스가 만성화되면 오히려 식욕을 증가시키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특히 단맛, 짠맛, 그리고 지방이 많은 고칼로리 음식에 대한 강렬한 갈망을 유발하는 경우가 매우 흔하다. 이는 스트레스를 받을 때 뇌의 보상 시스템이 과도하게 활성화되면서, 음식을 통해 즉각적인 만족감과 위안을 찾으려는 심리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행동은 흔히 ‘감정적 식사’ 또는 ‘스트레스성 폭식’으로 이어진다.
뇌는 이러한 고칼로리 음식을 섭취할 때 도파민과 같은 쾌락 호르몬을 분비하여 일시적인 행복감과 안정감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만족감은 오래가지 못하며, 결국 불필요한 열량 섭취로 이어져 체중 증가를 부추기고, 죄책감과 더 큰 스트레스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형성하게 된다.
민병원 김경래 내과 대표원장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살이 빠지기보다 더 찌는 이유는 단순히 식욕 증가 때문이 아니다. 코르티솔 호르몬의 영향으로 지방이 효율적으로 저장되고, 보상 심리로 고칼로리 음식을 찾게 되는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다”라고 강조했다.

수면 부족과 체중 증가의 악순환
스트레스로 인해 수면의 질이 극도로 저하되거나 수면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지면, 체중 관리는 더욱 힘들어지는 악순환에 빠진다. 수면 부족은 식욕을 촉진하는 주요 호르몬인 ‘그렐린’의 분비를 늘리고, 반대로 식욕을 억제하고 포만감을 느끼게 하는 호르몬인 ‘렙틴’의 분비를 감소시킨다.
이 두 호르몬의 불균형은 배고픔을 더 자주 느끼게 하고, 음식을 먹어도 포만감을 덜 느끼게 하여 과식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현저히 높인다. 단순히 배고픔을 더 자주 느끼는 것 외에도, 수면 부족은 코르티솔 수치를 계속 높게 유지시켜 앞서 언급한 인슐린 저항성과 지방 축적을 더욱 심화시킨다.
또한, 잠이 부족하면 피로감이 극대화되어 신체 활동량이 현저히 줄어들고, 이는 곧 에너지 소비 감소로 이어진다. 움직임이 줄고 에너지 소비가 적어지면, 자연스레 체중은 증가하게 되고, 이러한 체중 증가는 다시 스트레스 요인이 되어 수면의 질을 더욱 떨어뜨리는 고리를 형성한다. 만성적인 피로는 또한 건강한 음식 선택 능력을 저하시켜 인스턴트나 가공식품에 의존하게 만드는 경향도 보인다.
염증 반응 심화와 지방 축적
만성 스트레스는 체내의 전반적인 염증 반응을 심화시키는 주요 원인이 된다. 스트레스 상황에서 분비되는 코르티솔은 단기적으로는 염증을 억제하는 역할을 하지만, 만성적으로 고농도로 유지되면 오히려 염증성 사이토카인(예: TNF-알파, IL-6)의 분비를 촉진하여 전신적인 저강도 만성 염증 상태를 유발한다. 이러한 염증성 사이토카인은 인슐린 신호 전달을 방해하여 인슐린 저항성을 높이고, 이는 지방 세포의 크기를 비대하게 키우고 새로운 지방 세포의 생성을 촉진하는 데 기여한다. 즉, 염증 자체가 체내 지방 축적을 용이하게 만드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이 과정은 특히 복부 지방, 즉 내장 지방의 축적과 깊은 관련이 있다. 내장 지방은 단순히 체중 증가를 넘어 대사 증후군, 제2형 당뇨병, 심혈관 질환, 특정 암 발생 위험을 높이는 등 다양한 심각한 건강 문제의 핵심적인 원인으로 작용한다. 염증은 또한 식욕 조절 호르몬의 균형을 깨뜨리고, 에너지 대사율을 저하시켜 체중 증가를 더욱 부추기는 복합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처럼, 스트레스를 받으면 살이 빠지기보다 더 찌는 현상은 단일한 원인 때문이 아니다. 코르티솔 호르몬의 비정상적인 작용, 식욕 조절 시스템의 교란과 감정적 식사 증가, 수면 부족으로 인한 호르몬 불균형과 활동량 감소, 그리고 전신적인 염증 반응의 심화 등 복합적인 생리적 및 심리적 요인들이 유기적으로 상호 작용하며 발생하는 결과다.
이러한 복잡한 메커니즘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은 단순히 체중 관리의 문제를 넘어 전반적인 건강 증진과 질병 예방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스트레스 관리 기술을 적극적으로 배우고, 이를 실천하는 것이 스트레스성 체중 증가를 예방하고 건강한 삶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다. 명상, 규칙적인 운동, 충분한 수면, 건강하고 균형 잡힌 식습관은 물론, 필요하다면 전문의의 도움을 받는 것까지 포함하여 통합적인 접근 방식으로 스트레스를 관리하고 건강한 생활 습관을 확립해야 한다.
특히, 만성 스트레스는 현대인의 건강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이며, 체중 증가는 그 심각한 결과 중 하나일 뿐이다. 스트레스가 우리 몸에 미치는 영향을 깊이 인지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일 때 비로소 우리는 건강하고 활기찬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된다.
민병원 비만대사질환센터 김종민 병원장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살이 빠지기보다 더 찌는 이유는 인체 시스템의 복잡한 상호작용에 있다.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건강한 대처법을 찾는 것이 비만 예방은 물론 전반적인 건강 증진에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싶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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