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지도를 그린 한국 사람, 잊혀진 청년 지도 제작자, 김대건 신부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은 고산자 김정호만을 조선 지도의 상징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1845년, 한 청년이 조선의 전도를 손수 제작해 프랑스로 전달한 일이 있었다.
그는 바로 조선 최초의 천주교 신부이자 순교자인 김대건(1821~1846)이다. 그는 김정호보다 16년 앞선 1845년, 불과 24세의 나이에 이미 조선전도라는 조선의 지도를 제작, 완성해 외국 선교사들에게 전달, 서구 사회에 조선을 알린 주역이다. 그의 지도 제작의 이유는 명확했다. 조선에 들어오는 선교사들이 낯선 지형을 이해하고 선교 활동을 원활히 하기 위함이었다.
이 지도에는 단순한 지리 정보만이 아니라, 당시 김대건이 인식하고 있었던 국토에 대한 자주적 시선과 서양 선교사들을 위한 배려가 담겨 있었다.

김정호보다 16년 앞선 지도 ‘조선전도’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제작한 것은 1861년이다. 반면 김대건의 ‘조선전도’는 1845년에 만들어졌다.
대동여지도가 방대한 조사와 실측을 기반으로 제작된 위대한 작품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보다 앞서 ‘Seoul’을 알파벳으로 표기한 최초의 지도는 바로 김대건의 ‘조선전도’다. 그는 서울을 ‘Seoul’, 울릉도를 ‘Oulnengtou’, 독도를 ‘Ousan’이라 표기했다. 특히 독도 표기는 우산도(于山島)의 로마자 표기 최초 사례로서 학계에서도 의미 있게 평가된다.
이 지도는 정상기의 『동국지도』를 참고해 제작되었으며, 대부분의 지명이 한자가 아닌 로마자로 기재되어 있다. 그만큼 이 지도는 내국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외국인, 특히 프랑스 선교사를 위한 목적이 뚜렷했다.

‘조선전도’에 담긴 독도와 영토 인식
‘조선전도’는 단순한 지도가 아니라 19세기 중반 조선의 영토 인식을 드러낸 결정적인 사료다. 울릉도 옆에는 ‘Ousan(우산)’이라는 지명이 명확하게 표기되어 있으며, 이는 지금의 독도를 의미한다.
더불어 만주의 봉황성부터 한강 하구를 중심으로 한 서해안 일대, 주요 군사시설, 행정 기관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심지어 간도 지역까지도 일정 경계선 안에 포함되어 있어, 김대건의 영토 주권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보여준다. 그는 지도 제작을 통해 조선이라는 나라의 지리적 범위와 중심 공간을 명확히 서양에 소개한 것이다.
이러한 자료는 일본이 독도에 대해 영유권을 주장할 때 반박의 근거로서 활용될 수 있는 중요한 역사적 증거다.

서양에 조선을 알린 첫 지리 정보
김대건이 만든 지도는 그 당시 조선에서 서양으로 전해진 가장 정확하고 상세한 국가 지도였다.
이 지도는 조선으로 입국하려는 프랑스 선교사 마레스르 신부와 최양업 부제에게 전달된 후, 상하이의 프랑스 총영사 몽티니를 거쳐 프랑스 왕립도서관에 기증됐다. 이후 프랑스 지리학회지를 통해 유럽 전역에 소개되면서 서양이 바라보는 조선의 이미지를 바꿔 놓았다.
기존에 알려진 당빌이나 지볼트의 조선 지도는 대부분 지명 표기가 부정확하거나 서양식 음역에 치우쳐 있었다. 그러나 김대건의 지도는 지명을 한국식 발음 그대로 로마자로 표기했기 때문에, 조선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조선전도의 역사적 가치와 의미
비록 ‘조선전도’는 일부 지역의 경계나 하천이 불분명하거나 누락된 미완의 지도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의도와 시대적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이 지도는 단순한 지리 정보 이상의 것, 즉 문화적 자주성과 정체성을 보여주는 유산이다.
1978년 최석우 신부가 프랑스국립도서관에서 이 지도를 발견하면서 다시 세상에 알려졌고, 이는 김대건 신부의 위대한 업적을 재조명하는 계기가 되었다.
2021년에는 김대건이 유네스코 세계기념 인물로 선정되며 그 가치가 더욱 부각되었다. 오늘날 우리는 이 지도를 통해 당시 조선 지식인의 시선과 국제적 감각을 함께 들여다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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