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히 많이 걸어도 소용없다. 최고의 걷기 속도와 암 예방
현재 보건 의료계에서 가장 경제적이면서도 강력한 질병 예방 수단으로 ‘걷기’의 가치가 재조명받고 있다. 단순히 걷는 행위를 넘어, 암세포의 증식을 억제하고 사망률을 낮추는 구체적인 방법론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2022년 9월 12일, 시드니 대학교와 남덴마크 대학교 공동 연구진은 보행 강도와 암 발생 사이의 상관관계를 7년간 추적 조사하여 유의미한 결과값을 도출했다. 연구의 핵심은 단순히 얼마나 많이 걷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빠른 속도로 걷느냐에 달려 있다는 점이다. 보행의 질적인 측면이 면역력 강화와 암 예방의 핵심 열쇠라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입증됐다.
미국 의학계는 보행 속도를 인체의 전반적인 건강 상태를 나타내는 ‘제6의 생체 징후(Vital Sign)’로 간주한다. 보르하 델 포조 크루즈(Borja del Pozo Cruz) 박사팀의 분석에 따르면, 일정한 속도 이상으로 걷는 행위는 체내 염증 수치를 낮추고 인슐린 저항성을 개선하여 암세포가 생존하기 어려운 환경을 조성한다. 이는 특별한 장비나 비용 없이도 개인이 실천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건강 증진 전략이다. 전문가들은 보행 속도를 조금만 높여도 신진대사 효율이 급격히 상승하며, 이것이 장기적으로는 암 발생 및 사망 위험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결과로 이어진다고 분석한다.

시속 5km 이상 고속 보행의 암 발생 억제 기전
2022.09.12. 미국 의학협회지(JAMA Internal Medicine)에 발표된 보르하 델 포조 크루즈 박사팀의 연구 [Prospective Associations of Daily Step Counts and Intensity With Cancer and Cardiovascular Disease Incidence and Mortality and All-Cause Mortality] 결과, 보행 속도가 빠른 그룹(분당 약 80~100보)은 느린 그룹에 비해 암 발생 위험이 약 25%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영국 바이오뱅크(UK Biobank)에 등록된 7만 8,500명의 데이터를 분석하여, 시속 5.0km 이상의 속도를 유지하는 ‘파워 워킹’이 암 사망률을 낮추는 결정적인 기준점이라고 강조했다.
시속 5.0km는 일반적인 성인이 평소보다 약간 서두르는 느낌으로 걷는 속도에 해당한다. 이 정도의 강도로 보행할 경우 심박수가 상승하고 체온이 오르면서 면역 세포인 자연살해(NK) 세포의 활성도가 높아진다. 보르하 델 포조 크루즈 박사는 논문을 통해 활성화된 면역 세포가 체내를 순환하며 변이된 세포나 초기 암세포를 발견하여 제거하는 능력이 향상된다고 설명했다. 또한 고속 보행은 혈당 조절 능력을 강화하여 암세포의 주요 에너지원인 포도당의 과잉 공급을 차단하는 효과도 동시에 거둔다.
연구에 참여한 대상자들은 보행 속도에 따라 암 발생 빈도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단순히 천천히 걷는 습관을 가진 사람들은 같은 거리를 이동하더라도 암 예방 효과가 미미했다. 반면, 분당 80보 이상의 강도를 유지한 집단은 대장암, 유방암, 췌장암 등 주요 암종의 발병률이 공통으로 낮아지는 양상을 보였다. 이는 운동의 지속 시간보다 강도가 신체 방어 기전을 가동하는 데 더 중요한 변수임을 시사한다.
단순 걸음 수보다 중요한 보행 강도와 면역 체계 활성화
과거에는 하루 1만 보를 걷는 것이 건강의 척도로 여겨졌으나, 현대 의학은 ‘강도’에 방점을 찍는다. 단순히 걸음 수만 채우는 산책 형태의 보행은 근력 강화나 면역 체계 자극에 한계가 있다. 보행 속도가 빨라지면 우리 몸은 더 많은 산소를 소모하며, 이 과정에서 심폐 기능이 강화되고 혈액 순환이 촉진된다. 원활한 혈류는 영양분과 산소를 전신으로 빠르게 운반하는 동시에 노폐물과 염증 유발 물질을 효과적으로 배출한다.
보행 강도와 관련된 구체적인 임상적 근거는 국내 전문가의 견해에서도 확인된다. 신영태 자연주의의원 원장은 “신체 활동의 강도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체내 사이토카인 분비가 조절되어 만성 염증 상태가 개선된다”며 “빠른 걷기는 암세포의 전이와 증식을 돕는 염증 환경을 억제하는 가장 효율적인 비약물적 요법이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빠른 걷기는 호르몬 체계의 안정화를 돕는다. 과도한 인슐린과 인슐린 유사 성장 인자(IGF-1)는 암세포의 분열을 촉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버드 의과대학 이민(I-Min Lee) 교수가 2019.05.29. JAMA Internal Medicine에 발표한 [Association of Step Volume and Intensity With All-Cause Mortality in Older Women] 연구에 따르면, 고강도 보행은 근육 세포의 포도당 흡수를 촉진하여 혈중 인슐린 농도를 낮게 유지하도록 돕는다. 이러한 생화학적 변화는 특히 호르몬의 영향을 많이 받는 유방암이나 전립선암 예방에 탁월한 효과를 나타낸다. 따라서 하루 총 걸음 수에 집착하기보다는 단 30분을 걷더라도 활기차게 걷는 습관이 필요하다.

일상 속 실천 가능한 활기찬 걷기 요령과 주의사항
효과적인 암 예방 걷기를 위해서는 올바른 자세와 속도 조절이 필수적이다. 먼저 시선은 정면 10~15m 앞을 향하고, 가슴을 펴서 척추를 곧게 세워야 한다. 보폭을 무리하게 넓히기보다는 발걸음의 빈도를 높여 속도를 내는 것이 무릎 관절 보호에 유리하다. 팔은 팔꿈치를 ‘L’자 혹은 ‘V’자 형태로 굽혀 앞뒤로 힘차게 흔들어 주면 추진력을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상체 근육까지 함께 사용하는 전신 운동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속도의 기준은 세계보건기구(WHO)가 권장하는 중강도 신체활동 수준인 ‘숨이 약간 차서 옆 사람과 대화는 가능하지만 노래를 부르기는 힘든 수준’이 적당하다. 현재 보행 속도를 측정하기 어렵다면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이나 스마트워치의 GPS 기능을 활용하여 실시간 속도를 확인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백경우 나음재활의학과의원 원장은 ‘시속 5km 유지가 힘들다면 처음에는 평소 속도로 걷다가 1~2분간 빠르게 걷는 인터벌 방식을 도입하여 서서히 체력을 기르는 단계적 접근”을 권장했다.
다만 고령자나 기저 질환이 있는 경우에는 주의가 필요하다. 갑작스러운 고강도 운동은 심혈관계에 부담을 줄 수 있으므로, 반드시 충분한 준비 운동을 통해 근육과 관절을 이완시켜야 한다. 또한편안하고 쿠션감이 있는 운동화를 착용하여 발바닥과 발목에 가해지는 충격을 최소화해야 한다. 무리한 운동보다는 본인의 신체 상태에 맞춘 지속 가능한 속도를 설정하여 꾸준히 실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활기찬 걸음걸이는 현재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간편하고 강력한 면역 백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