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먹는 비타민이 암세포를 키운다. 항산화 비타민의 암세포 전이 유발 가능성에 대한 병리학적 분석 결과 발표
항산화제가 암세포의 성장을 억제할 것이라는 일반적인 상식과 상충하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특정 암 환자가 비타민 C나 E와 같은 항산화제를 과다 복용할 경우, 오히려 암세포의 전이가 촉진될 수 있다는 병리학적 기전이 확인됐다.
2023.08.31. Journal of Clinical Investigation(JCI)에 게재된 스웨덴 카롤린스카 연구소(Karolinska Institutet) 마틴 베르고(Martin Bergö) 교수팀의 ‘Antioxidants stimulate BACH1-dependent angiogenesis’ 연구에 따르면, 항산화제가 종양 내 신생 혈관 형성을 자극하여 암세포의 확산을 돕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항산화제가 체내 산화 스트레스를 줄이는 과정에서 BACH1이라는 단백질을 안정화시키고, 이것이 혈관 내피 성장 인자(VEGF)와 무관한 방식으로 새로운 혈관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이는 암 환자나 암 발생 고위험군이 항산화 영양제를 복용할 때 매우 신중해야 함을 시사하는 데이터로 평가받는다.

BACH1 단백질 활성화를 통한 신생 혈관 형성 기전
항산화제는 본래 세포 손상을 일으키는 활성산소를 제거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하지만 암세포 내부에서 항산화 농도가 높아지면 산화 스트레스에 민감한 BACH1 단백질이 분해되지 않고 축적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2019.06.27. Cell지에 발표된 카롤린스카 연구소의 이전 연구 ‘BACH1 Stabilization by Antioxidants Promotes Lung Cancer Metastasis’에 따르면, 축적된 BACH1 단백질은 암세포의 전이와 관련된 유전자들을 활성화하는 핵심 스위치 역할을 한다. 연구팀은 이번 후속 연구를 통해 BACH1이 단순히 전이 유전자만 건드리는 것이 아니라, 종양 주변에 새로운 혈관을 만드는 과정인 ‘혈관 신생(Angiogenesis)’을 직접적으로 촉진한다는 점을 추가로 밝혀냈다. 일반적으로 종양은 산소가 부족할 때 VEGF라는 인자를 통해 혈관을 만들지만, 항산화제에 의해 활성화된 BACH1은 산소가 충분한 환경에서도 혈관 형성을 유도했다. 이 과정에서 암세포는 더 많은 영양분을 공급받고 다른 장기로 이동하기 쉬운 환경을 갖추게 됐다.
폐암 및 흑색종 모델에서의 종양 성장 가속화 확인
연구팀은 폐암 세포를 이식한 생쥐 모델을 대상으로 비타민 C, 비타민 E, N-아세틸시스테인(NAC) 등 대표적인 항산화제를 투여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실험 결과, 항산화제를 투여받은 군에서 종양 내 혈관 밀도가 대조군에 비해 유의미하게 높아졌으며 암세포의 전이 속도 또한 빨라졌다.
2020.01.29. Science Translational Medicine에 게재된 연구에서도 항산화제가 흑색종(Melanoma)의 전이를 가속화한다는 결과가 도출된 바 있다. 당시 연구에서는 항산화제가 암세포의 산화 스트레스를 낮춰 암세포가 혈액을 타고 이동하는 동안 겪는 세포 사멸 과정을 억제한다는 점이 강조됐다.
이번 카롤린스카 연구소의 실험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항산화제가 암세포의 생존뿐만 아니라 적극적인 혈관 확장을 통해 전이 통로를 확보한다는 점을 병리학적으로 증명했다. 특히 폐암 환자의 경우 종양 조직 내 BACH1 수치가 높을수록 예후가 좋지 않다는 통계적 연관성도 함께 확인됐다.

영양제 과다 복용이 암 환자에게 미치는 병리학적 영향
일반적인 식단을 통해 섭취하는 비타민은 큰 문제가 되지 않으나, 고농축 영양제 형태의 과다 복용은 암 환자에게 치명적일 수 있다. 정재화 내과 진료원장은 본지와 인터뷰에서 ‘항산화제는 정상 세포를 보호하기도 하지만, 이미 발생한 암세포 역시 산화 스트레스로부터 보호하여 생존과 전이를 돕는 양날의 검과 같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많은 암 환자들이 기력 회복이나 치료 보조 목적으로 고용량 비타민 주사나 영양제를 선택하지만, 이는 병리학적으로 암세포의 방어 기제를 강화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연구 데이터에 따르면 항산화제 투여로 인해 활성화된 BACH1은 혈관 형성 유전자인 유전자뿐만 아니라 당 대사 관련 유전자까지 조절하여 암세포가 더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사용하도록 돕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항산화제가 암세포에게 일종의 ‘성장 촉진제’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객관적 지표다.
의료계의 항산화제 권고 지침 및 향후 연구 과제
현재 의료계는 암 환자의 무분별한 항산화제 섭취에 대해 엄격한 주의를 권고하고 있다. 미국 암연구소(AICR)와 세계암연구재단(WCRF)은 암 예방 및 치료 과정에서 영양제보다는 균형 잡힌 식단을 통한 영양 섭취를 우선순위로 둔다. 카롤린스카 연구소의 마틴 베르고 교수는 이번 연구가 항산화제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종양이 형성된 환자나 암 발생 위험이 높은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경고임을 명확히 했다.
향후 연구는 BACH1 단백질을 억제하여 암세포의 혈관 신생을 차단하는 새로운 항암 치료제 개발에 집중될 예정이다. 또한 특정 유전자 변이를 가진 환자군에서 항산화제가 미치는 영향에 대한 대규모 임상 데이터 수집이 병행될 계획이다. 현재까지 확인된 병리학적 사실은 항산화제가 암세포의 전이 경로를 확장한다는 점이며, 이에 따라 암 환자의 영양 관리에 대한 기존 패러다임의 변화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