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보다 싼 한국의 수술비, 대한민국 필수 의료 기피 현상의 근본 원인은 1970년대에 멈춘 비정상적 수가 체계에 있다
베트남을 여행하던 필자의 친구가 단체 카톡방에 다급한 메시지를 남겼다. 낯선 타지에서 발가락이 찢어지는 열상을 입어 현지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는 소식이었다. 친구는 ‘봉합 수술을 받았는데 여행을 계속해도 괜찮겠냐’며 걱정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필자는 이미 일주일 정도 지났다면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안심시켰지만, 직업적 호기심에 한 가지를 더 물었다. ‘수술비는 얼마나 나왔나?’ 친구가 보내온 영수증에는 230만 베트남 동이라는 숫자가 찍혀 있었다. 한화로 약 12만 원에서 13만 원 사이의 금액이다. 1인당 국민소득(GDP)이 4,000달러 수준인 베트남에서 이 금액은 결코 가볍지 않은 무게를 지닌다.
하지만 필자는 이 숫자를 한국의 현실과 대조해보는 순간,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동일한 처치를 한국에서 받았을 경우, 건강보험이 적용된 본인 부담금은 고작 12,900원이다. 국가가 지불하는 공단 부담금을 모두 합쳐도 총액은 43,190원에 불과하다. 소득 수준이 베트남보다 9배 이상 높은 나라에서 의료 서비스의 가치는 오히려 3분의 1 수준으로 후려쳐지고 있는 셈이다. 이 기묘한 역설이 바로 대한민국 필수 의료 기피 현상을 만들어낸 근본적인 원인이자, 한국 의료 시스템이 직면한 붕괴의 전초전이다.

경제 성장률을 외면한 47년 전의 유물, 의료 수가
대한민국의 건강보험 제도는 1977년, 1인당 국민소득이 1,000달러에 불과하던 시절에 닻을 올렸다. 당시에는 의료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국가가 강제로 가격을 낮게 책정하는 저수가 정책이 불가피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의 국민소득은 35,000달러를 넘어섰다. 경제 규모가 35배 넘게 팽창하는 동안 의료 수가는 그 속도를 전혀 따라잡지 못했다. 70년대 후반 수백 원에 불과했던 진료비는 현재 18,000원 수준에 머물러 있다. 물가 상승률과 인건비 폭등을 고려하면 사실상 의료의 가치는 수십 년 전보다 퇴보한 것이나 다름없다.
앞선 베트남의 사례에서 보듯, 경제력에 걸맞은 의료비 책정이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은 의사들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구조를 고착화했다. 질병의 발생 빈도나 난이도에 따른 합리적인 보상 체계가 실종된 상태에서, 의사들이 생명과 직결된 필수의료 분야를 떠나는 것은 이기심이 아닌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다. 국민소득에 비례하지 않는 낡은 수가 정책은 결국 대한민국 필수 의료 기피 현상을 가속화하는 핵심 동력이 됐다.
박리다매와 비급여라는 기형적인 생존 전략
낮은 의료 수가 체제 아래에서 한국의 의료기관들이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3분 진료’로 대변되는 박리다매다. 의사는 더 많은 환자를 짧은 시간 안에 쏟아내듯 진료해야만 병원 임대료와 직원 인건비를 충당할 수 있다. 환자와의 깊이 있는 상담이나 세심한 관찰은 사치가 된 지 오래다. 둘째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진료다. 필수 의료 영역에서 발생하는 적자를 미용이나 성형 같은 비급여 항목으로 메꾸는 기형적인 수익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문제는 정부가 이 비급여 영역마저 통제하려 들 때 발생한다. 필수 의료를 지탱하던 최후의 보루이자 교차 보조 수단이었던 비급여 시장이 위축되면, 소위 기피과라고 불리는 필수 의료 분야는 절멸의 길을 걷게 될 것이 자명하다. 이미 많은 젊은 의사들이 고난도의 수술 대신 위험 부담이 적고 보상이 확실한 미용 성형 시장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이는 의료 생태계의 균형이 완전히 무너졌음을 의미한다.

위험은 크고 보상은 적은 필수 의료의 비극
대한민국 필수 의료 기피 현상의 이면에는 경제적 박탈감뿐만 아니라 법적 리스크에 대한 공포가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생명과 직결된 위중한 환자를 다루는 외과 의사들은 늘 의료 사고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하지만 낮은 의료 수가는 사고 발생 시 환자에게 충분한 보상을 할 수 있는 재원을 마련할 기회조차 박탈한다. 보상이 충분하지 않으니 갈등은 형사 소송으로 번지고, 의사는 잠재적 범죄자로 내몰린다. 고난도의 수술을 집도해도 편의점 아르바이트보다 못한 행위료를 받는 현실에서, 누가 자신의 인생을 걸고 수술대에 서겠는가.
실제로 지난해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환자가 200만 명을 넘어섰다는 통계가 있다. 이들이 쓴 의료 관광 비용만 12조 원에 달하며, 그중 피부과와 성형외과 비중이 70%를 상회한다. 한국보다 경제력이 낮은 국가의 국민조차 한국에 와서 고비용의 미용 시술을 받는 데 주저함이 없다. 이는 한국 의료의 기술력이 세계적임을 증명하는 동시에, 정작 자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필수 의료는 1960년대 수준의 낡은 제도에 묶여 고사하고 있다는 비극적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비정상적인 의료 이용량과 본인 부담금의 재설계
한국의 의료 이용량은 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외래 진료 횟수와 입원 기간 모두 압도적이다. 이는 의료 서비스의 가격이 지나치게 낮게 책정되어 수요가 비정상적으로 폭증했기 때문이다. 가격이 싸면 수요가 늘어나는 것은 경제학의 기본 원리다.
가벼운 질환에도 대학병원을 찾고, 무분별하게 쇼핑하듯 병원을 옮겨 다니는 구조는 건강보험 재정을 고갈시키고 정작 시급한 환자가 혜택을 받지 못하게 만든다. 이제는 본인 부담금을 현실화하여 의료 이용의 문턱을 조정하고, 그렇게 확보된 재원을 필수 의료 분야의 행위료 인상에 투입하는 결단이 필요하다.
붕괴하는 의료 사다리 앞에서 던지는 질문
대한민국 필수 의료 기피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의대 정원 확대가 아닌, 의료 수가 체계의 근본적인 개혁이 선행되어야 한다. 미용 성형 의사와 필수 의료 의사 사이의 경제적 격차를 줄이고, 고난도 의료 행위에 정당한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한 어떤 정책도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1960년대의 낡은 제도에 갇혀 21세기의 의료를 강제하는 현 상황이 지속된다면, 머지않아 우리는 돈이 있어도 수술해 줄 의사를 찾지 못해 해외로 원정을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 국가가 보장하는 저렴한 의료라는 환상이 깨지는 순간, 그 고통은 고스란히 국민의 몫으로 돌아올 것이다. 우리는 과연 그 대가를 치를 준비가 되어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