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조 적자 추경 안 한다, 부동산 규제 ‘최후의 수단’ 미뤄둔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2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신년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2026년 국정 운영 방향과 주요 경제 현안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밝혔다. 이날 회견은 ‘함께 이루는 대전환, 모두 누리는 대도약’이라는 슬로건 아래 내외신 기자 160여 명이 참석하였으며, 당초 예정되었던 90분을 훌쩍 넘겨 역대 최장 시간인 170분 동안 자유 질의응답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특히 기자회견 직전 재정 확대 우려로 채권시장이 요동쳤던 만큼, 추경(추가경정예산)과 재정 기조에 대한 발언이 주목됐다. 이 대통령은 ‘몇십조 적자 국채를 발행하는 추경은 안 한다’고 명확히 밝히며 확대 재정 기조에 대한 시장의 우려를 진화하는 데 집중했다. 이 대통령은 회견에서 “문화·예술 지원을 위해 추경의 기회가 있다면 검토하라고 했더니 몇십 조씩 적자 국채를 발행하는 것 아니냐는 오해가 있다”며 “성장률이 떨어지면 갈등이 깊어지기에 대전환을 위한 투자는 필요하지만, 시장에 충격을 주는 대규모 채권 발행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올해 본예산이 지난해 대비 8.1% 증가한 만큼, 기본적인 확장 재정 기조는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2026년도 본예산 중 문화·예술 분야는 약 9조 6,000억 원 규모로 편성되었으며, 대통령은 이를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필수 투자’로 규정했다. 기자회견에서는 환율, 연금, 부동산 등 주요 경제 변수에 대한 정부의 단기 및 중장기 대책이 제시됐다.

재정 확대 우려에 선 그은 추경 정책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은 재정 확대 기조에 대한 시장의 민감한 반응 이후에 열렸다. 전날 국무회의에서 ‘앞으로 추경 기회가 있을 때 문화·예술 분야 예산을 잘 검토해 보라’는 대통령의 언급이 나오자, 채권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발언 직후 10년 만기 국고채 금리가 1년 8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시장의 우려가 표출됐다. 실제 대통령의 추경 언급 여파로 서울 채권시장에서 10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연 3.653%까지 급등하며 시장의 불안감을 반영했다.
정부의 재정 지출 확대는 자산시장 전반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채권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한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몇십조 적자 국채를 발행하는 추경은 안 한다’고 밝히며 시장의 확대 해석에 대해 분명히 선을 그었다. 이는 대규모 적자 국채 발행을 통한 재정 건전성 악화는 지양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본예산 증가율(8.1%)을 감안할 때, 정부의 기본적인 확장 재정 기조 자체는 유지될 전망이다.
환율 1,480원 돌파, ‘한두 달 내 안정’ 전망
최근 원-달러 환율이 1달러당 1,480원을 돌파하는 등 불안정한 상황에 대한 대책 질의도 이어졌다. 실제로 2026년 1월 21일 장중 원-달러 환율은 미국 연준의 고금리 유지 기조와 엔-달러 환율 연동 여파로 1,480원을 돌파하며 지난달 외환당국 개입 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대통령은 환율 문제는 대외 변수와 구조적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므로 정부 단독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관계 당국의 전망을 인용하여 현재의 고환율 상황은 일시적일 가능성이 높으며, 한두 달이 지나면 1,400원 전후로 떨어질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엔-달러 환율 연동에 비하면 우리 경제는 견고한 수준”이라며 구체적인 환율 안정화 시점을 제시했으나, 외환 시장 전문가들은 지정학적 리스크가 여전한 상황에서 1,400원대 조기 회복은 지나치게 낙관적이라는 신중론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단기적인 환율 급등세에 대한 정부의 개입보다는 시장의 자연스러운 안정화를 기대하는 기조를 내비친 것이다.

연금 기금화에 대한 신중론: 국민연금 vs 퇴직연금
코스피 5,000 달성이 목전에 다가온 상황에서, 높은 투자수익을 올린 국민연금의 고갈 시기가 늦춰질 것이라는 전망에 대해 대통령은 긍정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이 대통령은 “주가 상승으로 국민연금 수익금이 약 250조 원가량 늘어나며 고갈 걱정을 덜게 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퇴직연금을 국민연금처럼 기금화시켜 집단적으로 운용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이 대통령은 “수익률이 1%대에 머물러 있는 퇴직연금의 기금화는 대안 중 하나이나, 당사자가 원치 않으면 절대로 하지 않겠다”며 시장의 자율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할 것임을 명시했다. 이에 대해 같은날 한국노총은 “일시적인 수익 증가를 연금 고갈 대책의 근본 해결책인 양 호도하는 것은 국민 기만”이라며 국가 재정 투입을 통한 실질적 노후 보장 강화를 촉구했다. 연금 개혁 논의에 있어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함을 시사했다.
부동산 문제, 증시 전환과 수도권 공급 확대 방침
부동산 문제에 대해 대통령은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였다. 단기적인 대책과 근본적인 구조 개혁 모두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근본적으로는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고, 자산구조를 부동산 중심에서 ‘생산적 금융’, 특히 증시의 금융자산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장기적인 목표를 제시했다. 이 대통령은 “자기가 살지도 않으면서 투기용으로 집을 5채씩 가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자산이 부동산에만 묶여 있는 기형적 구조를 자본시장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단기적인 대책으로는 수도권에 상당 규모의 신규 공급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과거 공급지로 고려하지 않았던 곳까지 포함하여 공급 물량을 확보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이에 앞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지난 1월 19일 논평을 통해 “이재명 정부의 공급 계획은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를 통해 건설사에 특혜를 주는 ‘건설사 퍼주기’ 정책”이라며 “서민을 위한 저렴한 공공주택 공급 대책이 빠진 물량 공세는 결국 집값 상승의 원인이 될 것”이라고 비판한바 있다.
또한, 세금을 통한 부동산 규제는 시장에 미치는 파급 효과를 고려하여 최후의 수단으로 미뤄두고 있다고 밝혀, 공급 확대와 규제 완화를 통한 시장 안정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나타냈다. 이 대통령은 “세금은 국가 재정 확보가 본래 목적이기에 이를 규제 수단으로 전용하면 부작용이 크다”며 “가급적 자제하되 최후의 수단으로만 고려하겠다”고 덧붙였다. 앞서 참여연대는 1월 21일 논평에서 “세금 규제를 최후의 수단으로 미루겠다는 것은 다주택자들에게 투기 지속의 신호를 주는 것”이라며 정부의 규제 완화 기조를 강력히 규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