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 순국 116주년, 조마리아 여사의 편지 속 숭고한 희생과 오늘날의 가치
2026년 3월 26일 오전 10시, 서울 남산 안중근의사기념관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116년 전인 1910년 3월 26일, 안중근 의사가 중국 뤼순 감옥 형장에서 서른두 살의 짧은 생을 마감했던 바로 그 시간이다. 해마다 돌아오는 기일이지만, 올해는 특히 안 의사가 마지막으로 남긴 유묵 중 하나인 ‘빈이무첨 부이무교(가난해도 아첨하지 않고, 부유해도 교만하지 않는다)’가 일본에서 돌아와 일반에 첫 공개되면서 추모의 열기는 더욱 뜨거웠다.
기념관을 찾은 국민들은 안 의사의 영정 앞에 헌화하며 국권 회복을 위해 목숨을 바친 영웅의 넋을 기렸다. 국가보훈부는 오전 10시, 안중근의사숭모회 주관으로 ‘안중근 의사 순국 116주기 추모식’을 거행했으며,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과 유족, 시민 등이 참석했다. 116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음에도 안 의사의 정신이 오늘날까지 살아 숨 쉬는 이유는 그가 보여준 초인적인 의연함과 그 뒤를 지키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의 결단이 우리 민족의 정체성 깊숙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조마리아의 ‘편지’와 역사적 실증의 무게
안중근 의사의 순국을 이야기할 때 결코 빠지지 않는 것이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의 편지다.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딴 마음 먹지 말고 죽으라”는 서릿발 같은 당부는 오늘날까지도 모성애의 극치이자 애국심의 상징으로 회자된다. 그러나 최근 역사학계에서는 이 내용이 실제 ‘종이에 쓴 편지’였다기보다, 당시 면회를 갔던 두 동생을 통해 전달된 ‘전언’이 사후에 정형화됐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도진순 창원대학교 사학과 교수는 2023년 2월 10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 및 관련 논문을 통해 “조마리아 여사가 안 의사에게 수의를 지어 보낸 것은 사실이나, 현재 알려진 편지 문구의 상당 부분은 훗날 일본인 승려 사이토 다이켄 등의 기록과 구전 과정에서 덧입혀진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도 교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전언이 안 의사에게 전달됐을 때 그가 ‘어머님은 안심하옵소서’라고 답했다는 기록은 1910년 당시 신한민보 등 보도 자료를 통해 확인되는 실증적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즉, 문구의 자구 하나하나보다 중요한 것은 죽음을 앞둔 아들에게 대의를 강조했던 어머니의 실제적 기개와 그에 화답한 아들의 결연한 의지라는 점이다.
2026년에 다시 읽는 동양평화론의 필연성
안중근 의사는 옥중에서 ‘동양평화론’을 집필하며 한·중·일 3국이 협력하여 서구 열강에 대응하고 진정한 평화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형 집행으로 인해 미완성으로 남았으나, 그 가치는 2026년 현재의 동북아 정세 속에서 새로운 해답으로 부상하고 있다. 신용하 서울대 명예교수는 과거 2010년 안중근 의거 100주년 당시부터 지속적으로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은 단순한 이상주의가 아니라, 오늘날의 동북아 공동체 구상을 100년 앞서 제시한 선구적 통찰”이라고 평가해 왔다.
이러한 과거의 통찰은 2026년 한일 관계 및 미중 갈등이 심화되는 국제적 맥락에서 왜 여전히 유효한가.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관계자는 “의사께서 주창한 ‘동양평화’의 핵심은 주권 존중과 상호 협력이다. 이는 현재의 갈등 구조를 푸는 가장 권위 있는 도덕적 근거로 작용한다”고 밝혔다. 116년 전 뤼순 감옥의 차가운 바닥에서 쓰인 글귀들이 2026년의 외교 현장에서도 여전히 울림을 주는 이유는 그것이 힘의 논리가 아닌 정의의 논리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래 세대가 이어받는 숭고한 희생의 유산
한편 장흥 해동사에서는 추모식이 열렸다. 장흥 해동사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안중근 의사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1955년 죽산 안씨 문중의 노력으로 건립된 역사적 장소다.
서울 강북구에 사는 김성민 씨(23세)는 “안 의사님이 마지막에 입으셨던 수의가 어머니가 직접 지어주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가슴이 뭉클했다”며 “나라를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결정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고 전했다.
국가보훈부 관계자는 “정부는 2025년부터 현충시설로 재지정된 해동사 등 전국 각지의 안중근 의사 관련 사적지를 복합 역사문화 공간으로 조성하는 사업을 지속하고 있다”며 “의사의 숭고한 희생이 박제된 역사가 아니라 살아있는 교훈으로 남을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1910년 3월 26일의 안중근 의사 죽음은 끝이 아니었다. 그것은 조마리아 여사의 강인한 모성애와 안중근 의사의 평화 정신이 결합하여 우리 민족의 영혼 속에 영원히 지지 않는 불꽃으로 타오르는 시작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