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8도 한파 속 배송 업무 중 발생한 뇌출혈 사고에 대해 법원이 업무상 재해를 인정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단독은 최근 사업장에서 생산관리와 운전 및 배송 업무를 수행하던 근로자 A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요양불승인처분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서울행법 2026. 1. 16. 선고 2023구단64112 판결)
이번 판결은 기상 악화 상황에서 이루어진 무리한 업무 수행이 근로자의 혈압에 급격한 영향을 미쳐 뇌출혈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을 법리적으로 명확히 했다. 재판부는 당시 영하 8도에 달하는 한파와 폭설 예보라는 극한의 환경 속에서 업무를 수행한 점이 사고의 결정적 원인이 됐다고 판단했다. 근로복지공단은 당초 해당 질병이 업무와 인과관계가 없다고 주장하며 요양급여 신청을 거부했으나, 법원은 이를 위법한 처분으로 보고 취소 결정을 내렸다.

새벽 배송과 기상 악화가 겹친 극한의 작업 환경
사건 당일 A씨는 평소보다 약 1시간 일찍 업무를 시작해야 했다. 거래업체의 긴급한 납품 요구와 더불어 대설주의보가 발령된 상황에서 눈이 쌓이기 전에 배송을 마쳐야 한다는 압박감이 크게 작용했다. A씨는 양주시에 위치한 사업장에서 의왕시까지 왕복하는 배송 경로를 소화하던 중 차량에서 내려 쓰러졌으며, 병원 진단 결과 상세불명 대뇌반구의 뇌내출혈이 확인됐다. 당시 기온은 영하 8도였으며 폭설이 예보된 상태였다. 이러한 환경은 근로자에게 극심한 신체적, 정신적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요인이 됐다.
지규열 김포연세하나병원 원장 (신경외과 전문의)은 ‘급격한 기온 하강은 혈관을 수축시키고 심박수를 증가시켜 혈압을 순간적으로 상승시키는 주요 요인이다’며 ‘특히 영하의 기온에서 무거운 물건을 나르거나 운전 중 긴장 상태가 지속되면 뇌혈관이 견디지 못하고 파열될 위험이 급격히 높아진다’고 지적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에 따른 업무상 질병 인정 기준
현행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 제34조 제3항은 업무 수행 과정에서 발생한 돌발적 사건이나 업무 환경의 급격한 변화를 업무상 질병의 판단 근거로 명시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고시 역시 뇌혈관 질병의 경우 과도한 긴장과 스트레스가 혈압 상승의 직접적인 원인이 될 수 있음을 인정한다.
재판부는 A씨의 사례가 이러한 법령상 기준에 부합한다고 보았다. 단순히 업무 시간이 길지 않았더라도, 기상 악화라는 외부 요인과 조기 출근이라는 업무 환경 변화가 결합되어 근로자에게 예측 곤란한 신체적 부담을 주었다는 분석이다. 특히 거래업체에 공급했다가 반품된 제품을 신속히 재납품해야 했던 상황은 A씨에게 심리적 압박을 가중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업무와 관련하여 돌발적이고 예측 곤란한 상황에 해당하며, 근로자의 혈압이나 뇌혈관에 자연적인 경과를 넘어서는 급격한 변동을 가져왔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다.

법원이 주목한 돌발적 상황과 인과관계의 성립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A씨가 겪은 상황이 통상적인 업무 범위를 벗어난 돌발적인 긴장 상황이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영하 8도의 강추위 속에서 폭설 전에 배송을 완료해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은 혈압과 뇌혈관에 급격한 변동을 가져왔다. 이는 근로자가 평소 가지고 있던 건강 상태와 상관없이 업무 수행 중 발생한 환경적 요인이 질병을 촉발했음을 의미한다. 결과적으로 법원은 근로복지공단의 요양불승인 처분이 위법하며 이를 취소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최청희 법무법인 CNE 대표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업무 시간의 양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기상 조건과 같은 질적인 업무 환경 변화가 산재 인정의 핵심 요소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며 ‘근로자가 처한 구체적인 위험 상황과 그로 인한 신체적 반응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폭넓게 인정한 사례다’고 말했다. 법원은 A씨가 평소 수행하던 생산관리 및 거래업체 관리 업무 외에 추가된 배송 업무의 강도가 기상 상황과 맞물려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졌음을 인정했다.
기상 조건에 따른 근로자 보호 의무와 향후 과제
이번 판결로 인해 기상 악화 시 근로자의 안전 확보와 업무 조절의 중요성이 다시금 부각됐다. 특히 운송 및 배송 업종의 경우 외부 환경에 직접적으로 노출되는 특성상 한파나 폭설 시 발생할 수 있는 건강상의 위험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법원은 앞으로도 업무 환경의 급격한 변화가 근로자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근로복지공단은 해당 판결의 취지에 따라 A씨에 대한 요양급여 지급 절차를 진행하게 됐으며, 유사한 상황에 놓인 근로자들의 산재 신청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이번 사례는 기상 이변이 잦아지는 환경 속에서 근로자의 건강권을 보호하기 위한 법적 기준을 한 단계 강화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사업주는 기상 특보 발령 시 업무 강도를 조절하거나 안전 대책을 마련해야 할 책임이 더욱 무거워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