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혈부터 수혈까지 전 과정 혁신 담은 5개년 법정계획 확정… 인구구조 변화 대응해 안정적 공급망 구축한다
저출생과 고령화라는 거대한 인구 구조의 변화가 대한민국의 혈액 수급 체계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헌혈의 핵심 축인 10~20대 인구는 급격히 줄어드는 반면, 수혈 수요가 높은 50대 이상 고령층은 빠르게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위기 상황 속에서 정부는 향후 5년간의 국가 혈액 정책 방향을 담은 청사진을 제시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13일, 혈액관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제2차 혈액관리 기본계획(2026~2030)’을 최종 확정하고 발표했다. 이번 계획은 단순한 헌혈 독려를 넘어 채혈부터 제조, 유통, 그리고 병원에서의 최종 수혈에 이르기까지 혈액 관리 전 과정을 혁신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주목받는다.

저출생·고령화 파고 넘는 헌혈자 예우와 선별 기준의 현대화
정부가 이번 2차 기본계획에서 가장 먼저 손을 댄 부문은 헌혈자 저변 확대와 예우 강화다. 현재 우리나라의 국민 헌혈률은 약 5.6% 수준으로 선진국과 비교해 낮지 않지만, 특정 연령대인 10~20대 의존도가 55%에 달해 공급 구조가 매우 취약한 실정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헌혈 가능 연령의 상향 조성을 검토한다. 현재 전혈 헌혈 기준 만 16세에서 69세로 제한된 연령 기준을 최신 의학적 근거와 해외 사례를 바탕으로 재검토해, 건강한 고령층의 참여 길을 넓히겠다는 구상이다.
또한, 헌혈자의 건강 관리도 국가가 직접 챙긴다. 반복적으로 헌혈에 참여하는 ‘다회 헌혈자’를 위해 몸속 저장된 철분 양을 확인하는 ‘저장철(페리틴) 검사’를 도입하고 철분제 공급 기준을 마련할 계획이다. 헌혈자에 대한 사회적 예우도 격상된다. 장관 표창 위주였던 포상 체계를 대통령·국무총리 표창 등으로 확대하고, 다회 헌혈자를 야구장(KBO)이나 축구장(K리그) 등에 초대하는 전용 예우 프로그램도 활성화될 예정이다.
특히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아온 간 기능 ALT 검사는 폐지 수순을 밟게 됐다. 이미 B형 및 C형 간염에 대해 정밀한 핵산증폭검사가 도입된 만큼, 불필요한 혈액 폐기를 줄이기 위한 결정이다. 말라리아 위험 지역의 헌혈 제한 기준 역시 민감도가 높은 검사법 도입과 연계해 합리적으로 재설계될 전망이다.
당신만 몰랐던 실손보험 무사고 환급제 활용, 낸 돈 10% 돌려받는 법
환자 안전 최우선… 백혈구 제거 및 특수 혈액제제 공급 대폭 확대
혈액의 양적 확보 못지않게 질적 안전성 강화도 핵심 과제로 꼽혔다. 우리나라는 2005년 핵산증폭검사 도입 이후 수혈 전파 감염 사례가 발생하지 않았으나, 발열 등 면역 이상 반응 발생 건수는 여전히 주요국에 비해 많은 편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수혈 부작용의 주요 원인인 백혈구를 사전에 제거한 ‘백혈구 여과 제거 혈액제제’의 공급 비중을 대폭 높이기로 했다. 일본과 영국 등 주요국이 100% 보급률을 보이는 반면 우리나라는 20%대에 머물러 있는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수가 체계 개편을 추진한다.
희귀 혈액형 환자들을 위한 국가 차원의 안전망도 강화된다. 공급 혈액원이 보유한 희귀 혈액 헌혈자 정보와 의료기관의 수혈자 정보를 통합 관리하는 시스템이 구축되며, 개별 병원이 수행하기 어려운 정밀 검사를 지원할 ‘국가표준혈액검사실’ 구축 방안도 검토 대상에 올랐다. 또한, 1명의 헌혈자로부터 두 단위의 혈소판을 채혈하는 ‘두 단위 성분채혈혈소판’ 제도를 도입해 혈소판 수급의 효율성을 극대화할 계획이다. 상온 보관 특성상 오염 위험이 있는 혈소판에 대해서는 세균 배양 검사법 등 품질 관리 기준이 더욱 엄격해진다.

병원의 책임 있는 혈액 관리… ‘꼭 필요한 만큼만’ 적정 수혈 문화 정착
헌혈을 늘리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병원에서의 ‘적정 수혈’이다. 우리나라는 특정 수술 시 수혈률이 다른 나라에 비해 여전히 높아 불필요한 수혈을 줄여야 한다는 지적이 지속됐다. 정부는 이를 위해 ‘환자 혈액 관리(PBM)’ 개념을 의료 현장에 본격적으로 안착시킬 방침이다. PBM은 환자의 빈혈 상태를 미리 관리해 수혈 필요성을 낮추고, 꼭 필요한 경우에만 적정한 양을 수혈하는 환자 중심 시스템이다.
앞으로는 병원의 수혈 관리 성적이 병원 경영과 직결되도록 제도가 바뀐다. 현재 무릎 관절 치환술 등에 한정된 수혈 적정성 평가 항목을 다른 수술로 점진적으로 확대하고, 이 결과를 ‘의료질 평가’ 지표와 연계할 예정이다. 또한 혈액 사용량이 많은 상급 종합병원에는 전용 전산 지원 체계를 시범 적용해 실시간으로 혈액 사용 적정성을 모니터링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조치를 통해 병원 스스로가 혈액을 소중한 국가 자원으로 인식하고 아껴 쓰는 문화를 만들겠다는 의지다.
우체국 네트워크 활용한 운송 체계와 24시간 철통 보안 인프라 구축
공급망의 모세혈관인 물류와 정보 시스템에도 큰 변화가 찾아온다. 특히 의료 취약지의 혈액 공급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민간 운송에만 의존하던 기존 방식에서 탈피해, 우체국의 전국적인 물류 및 배달망을 활용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이를 통해 도서 산간 지역 의료기관도 필요한 혈액을 신속하고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게 됐다.
국가 핵심 기반 시설인 혈액원의 현대화 작업도 속도를 낸다. 노후화된 혈액 관리 시설은 이전 신축이나 재건축을 통해 GMP(의약품 제조 및 품질관리 기준) 시설로 거듭나게 되며, 내진 설계와 친환경 건축 기법이 적용된다. 헌혈자의 소중한 개인정보를 보호하기 위한 방어막도 한층 두터워진다. ‘혈액정보관리시스템(BIMS)’에 연중무휴 상시 관제 시스템을 도입해 실시간으로 운영 현황을 점검하고, 외부 악성코드 침투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 업무망과 인터넷망을 완전히 분리하는 작업을 추진한다.
사용률이 낮아진 헌혈 증서 제도와 수십 년간 누적되어 온 헌혈 환급 적립금도 개편 대상이다. 무상 헌혈의 취지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헌혈자가 자긍심을 느낄 수 있도록 헌혈 증서의 활용 가치를 높이고 적립금을 헌혈자 예우 프로그램에 직접 환류하는 방안이 마련됐다. 보건복지부 정은경 장관은 “헌혈자의 생명 나눔 실천이 안정적인 혈액 수급의 든든한 기반이 되고 있다”라며 “앞으로도 국민이 안심하고 수혈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강조했다.

당신이 좋아할만한 기사
한중일 바이오의약품 생산캐파 확장 경쟁 가열… 글로벌 공급망 지형도 재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