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가 된 로망의 휴양지 바이아는 어떻게 고대 로마 최고의 환락가에서 수중 무덤이 됐을까?
📢 핵심 3줄 요약
1. 고대 로마의 라스베이거스로 불리던 바이아가 지각 변동으로 인해 나폴리 인근 바닷속으로 수몰됐다.
2. 화려한 모자이크 바닥과 조각상 등 당시 귀족들의 사치스럽고 은밀한 생활상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다.
3. 수중 고고학적 발견을 통해 로마 제국 상류층의 타락과 자연의 경고를 동시에 엿볼 수 있는 역사적 장소다.
이탈리아 나폴리 만 북서쪽 연안에 위치한 바이아는 기원전 1세기부터 기원후 4세기까지 고대 로마 제국에서 가장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휴양지였다. 당대 최고의 권력자였던 율리우스 카이사르, 네로, 하드리아누스 황제 등이 이곳에 자신들의 거대한 별장을 지었다. 바이아는 단순한 휴양지를 넘어 로마 상류층의 욕망과 타락이 집결된 장소로 명성을 떨쳤다. 하지만 화려했던 이 도시는 8세기경부터 시작된 급격한 지각 변동으로 인해 서서히 바닷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오늘날 바이아의 영광은 수심 5미터에서 10미터 아래의 차가운 바닷속에 잠겨 있다. 고고학자들은 수십 년간의 수중 탐사를 통해 이곳이 로마 귀족들의 은밀한 사생활이 펼쳐지던 거대한 무대였음을 밝혀냈다. 수중 고고학 공원으로 지정된 이곳에서는 지금도 당시의 정교한 모자이크 바닥과 대리석 조각상들이 물결에 흔들리며 과거의 이야기를 전한다. 한때 로마인들이 ‘지상 낙원’이라 칭송했던 이곳이 왜 ‘죄악의 항구’라는 오명을 쓰고 사라져야 했을까?

로마의 권력자들은 왜 이 해안가 낙원에 그토록 집착했을까?
바이아는 고대 로마인들에게 오늘날의 라스베이거스나 모나코와 같은 위상을 가졌다. 이곳이 특별했던 이유는 지열 활동으로 인한 풍부한 온천수 덕분이었다. 로마인들은 바이아의 온천이 질병을 치료하고 젊음을 되찾아준다고 믿었다. 하지만 치료라는 명목은 곧 쾌락을 위한 구실로 변질됐다. 철학자 세네카는 바이아를 ‘사치의 소용돌이’이자 ‘부도덕의 항구’라고 비판하며, 이곳에서는 밤낮으로 술잔치가 벌어지고 해변은 방탕한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고 기록했다.
특히 황제들의 별장은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를 자랑했다. 네로 황제는 이곳에 거대한 수영장과 연회장을 지어 매일 밤 호화로운 파티를 열었다.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생의 마지막 순간을 이곳 바이아의 별장에서 보냈을 정도로 이 도시에 깊은 애착을 보였다. 귀족들은 자신들의 부를 과시하기 위해 바다를 매립하여 인공 대지를 만들고 그 위에 화려한 대리석 기둥을 세웠다. 이러한 무분별한 건축과 사치는 훗날 자연의 역습을 불러오는 단초가 되기도 했다.
맑고 투명한 지중해 바닷속에는 어떤 은밀한 비밀이 잠겨 있을까?
현재 바이아 수중 고고학 공원(Parco Sommerso di Baia)에서 발견되는 유물들은 당시 로마인들의 예술적 수준과 사치스러운 생활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피소니 빌라(Villa dei Pisoni)’다. 이 별장은 로마 황제 암살 음모에 가담했던 피소 가문의 소유였으나, 음모가 발각된 후 네로 황제에게 몰수됐다. 별장의 안뜰이었던 곳에는 지금도 기하학적 문양의 정교한 모자이크가 선명하게 보존되어 있어, 당시 귀족들이 밟았던 바닥의 감촉을 짐작게 한다.
또한 바닷속에서는 오디세우스와 바이오스의 조각상이 발견됐는데, 이는 원래 황제의 연회장을 장식하던 소품들이었다.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사이로 우뚝 솟은 대리석 조각상들은 기묘하면서도 서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고고학자들은 수중 카메라와 3D 스캔 기술을 동원해 도시 전체의 지도를 작성했다. 그 결과, 바이아는 단순한 주거지가 아니라 거대한 온천 단지와 상업 시설, 그리고 귀족들의 전용 항구까지 갖춘 완벽한 계획도시였음이 드러났다. 바닷물은 아이러니하게도 공기 중의 부식으로부터 이 유물들을 완벽하게 차단하여 2,000년 전의 모습을 보존하는 천연 저장고 역할을 했다.

대지의 격렬한 움직임은 어떻게 죄악의 도시 전체를 집어삼켰을까?
바이아의 몰락은 인간의 침략이 아닌 대지의 움직임에서 시작됐다. 이 지역은 ‘캄피 플레그레이(Campi Flegrei)’라 불리는 화산 지대에 위치해 있는데, 이곳에서는 ‘브라디시즘(Bradyseism)’이라는 독특한 지질 현상이 발생한다. 이는 마그마 방의 압력 변화에 따라 지면이 수 미터씩 서서히 오르내리는 현상을 말한다. 4세기경부터 바이아의 지면은 서서히 낮아지기 시작했고, 로마인들이 공들여 쌓은 해안선은 야금야금 바닷물에 잠기기 시작했다.
8세기에 이르러 도시의 절반 이상이 수몰되자 주민들은 결국 도시를 포기하고 떠나야 했다. 한때 권력과 부의 상징이었던 별장들은 물고기들의 서식처로 변했고, 화려했던 연회장은 해조류로 덮였다. 지질학자들은 바이아가 가라앉은 것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화산 활동이 활발한 위험 지대에 무리하게 도시를 건설한 인간의 오만이 불러온 결과라고 분석한다. 침몰한 도시는 수세기 동안 잊혔다가 1940년대 항공 촬영을 통해 그 실체가 다시 세상에 드러나게 됐다.
깊은 바닷속에 묻힌 과거의 메아리를 우리는 완전히 복원할 수 있을까?
바이아 수중 도시의 발견은 고대 로마사를 연구하는 데 있어 대체 불가능한 가치를 지닌다. 폼페이가 화산재에 덮여 시간이 멈췄다면, 바이아는 바닷속에 잠겨 그 화려함을 박제했다. 현재 이탈리아 정부는 이 유적을 보호하기 위해 엄격한 관리 하에 스쿠버 다이빙 투어를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는 많다. 바닷속의 염분과 미생물은 유물을 서서히 부식시키고 있으며, 기후 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은 유적의 보존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이아는 우리에게 강렬한 메시지를 던진다. 영원할 것 같았던 제국의 권력과 끝을 모르던 인간의 욕망도 거대한 자연의 섭리 앞에서는 한낱 물거품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수중 고고학자들은 지금도 모래 속에 파묻힌 또 다른 별장과 조각상을 찾기 위해 차가운 바다로 뛰어든다. 바닷속으로 사라진 바이아의 비밀이 하나둘 밝혀질 때마다, 우리는 고대 로마인들이 누렸던 찬란한 영광과 그들이 마주했던 비극적인 최후를 동시에 목격하게 된다. 침묵하는 수중 도시는 오늘도 물결 아래에서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길 기다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