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포괄임금 오남용 방지 지침 발표와 근로기준법 개정안 상임위 통과로 노동 시장 대변화 예고
정부가 포괄임금제라는 명목 아래 자행되던 이른바 ‘공짜 노동’의 관행을 뿌리 뽑기 위해 강력한 칼을 빼 들었다. 2026년 4월 8일 고용노동부는 ‘공짜노동 근절을 위한 포괄임금 오남용 방지 지도 지침’을 공식 발표하며 노동 현장의 오랜 악습에 종지부를 찍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이번 지침의 핵심은 출장, 외근, 재택근무 등 업무 경계가 모호한 환경을 핑계로 실제 근로시간과 상관없이 임금을 고정하던 방식에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다. 특히 2026년 최저임금이 시간당 10,320원으로 확정된 상황에서, 고정 연장근로 수당(Fixed OT)을 약정했더라도 실제 근무 시간이 이를 초과할 경우 반드시 차액을 정산해 지급해야 한다.

공짜 노동 근절을 위한 포괄임금 오남용 방지 지침의 핵심
포괄임금제는 그동안 산업계에서 근로시간 산정의 편의성을 이유로 폭넓게 활용됐다. 하지만 이는 노동자가 실제로 일한 시간만큼 보상받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하며 노동권 침해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다. 고용노동부 김영훈 장관은 지난 8일 브리핑을 통해 “이번 지침은 입법 전이라도 현장에서 공짜 노동이라는 불공정한 관행을 시정하기 위한 것”이라며 “차액 미지급 시 이를 임금 체불로 간주해 엄격히 처벌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번 지침에 따라 모든 사업주는 근로자의 연장, 야간, 휴일 근로시간을 객관적으로 기록해야 한다. 또한 이를 임금명세서에 상세히 기재해 서면으로 교부하는 것이 의무화됐다. 이에 개발자나 영상 제작 등 근로시간 산정이 어려운 업종에서도 실제 근로시간 기록 장치 도입이 확산될 것으로 전망된다. 기본급과 수당을 명확히 구분하지 않고 총액으로 묶어 지급하던 관행은 이제 법적 제재의 대상이다.
시간 단위 연차 도입, 유연한 근로 문화의 서막
노동 시장의 또 다른 축인 휴가 제도에도 획기적인 변화가 시작됐다. 지난 7일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기후노동위)는 연차 유급휴가를 1시간 단위로 쪼개어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전체회의에서 통과시켰다. 이는 기존의 일 단위 또는 반차(4시간) 단위의 경직된 휴가 사용 방식에서 벗어나 노동자의 자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조치다.
해당 개정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체계·자구 심사를 거쳐 본회의에 상정될 예정이다. 법안이 본회의를 통과하고 대통령이 공포하면, 근로자들은 병원 진료나 자녀 등하교 등 짧은 시간의 개인 용무를 위해 소중한 하루 연차를 통째로 쓰지 않아도 된다. 다만 구체적인 운영 방식은 향후 대통령령으로 정해질 예정이어서 노사 간의 세부적인 조율 과정이 남았다.

전문가 및 이해관계자의 엇갈린 반응과 사회적 생산성
제도의 변화를 바라보는 시각은 입장에 따라 갈린다.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유니온법률사무소 이재권 대표변호사는 “포괄임금제 오남용 방지는 단순히 임금 체불 문제를 넘어 노동 시간의 투명성을 확보함으로써 실질적인 근로 시간 단축을 이끌어낼 것”이라며 “이는 노동 시장의 현대화를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라고 분석했다.
반면 경영계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서울 영등포구에서 IT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이정수(45) 대표는 “근로시간을 분 단위로 기록하고 관리하는 데 따르는 행정적 부담이 적지 않다”며 “특히 영세 사업장의 경우 시스템 구축 비용 등에 대한 정부의 지원책이 병행돼야 한다”고 토로했다. 실제 산업 현장에서는 인력 공백을 최소화하면서도 근로자의 휴식권을 보장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노동권 보호와 임금 투명성 강화라는 시대적 과제
이번 조치들은 단순히 임금을 더 받거나 덜 주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노동의 가치를 정확히 측정하고 그에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투명한 보상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핵심이다. 지난 2024년 1월 18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3년 하반기 포괄임금 오남용 의심 사업장 기획감독 결과’에 따르면, 조사 대상 기업 87개소 전체(100%)가 총 284건의 연장근로수당 미지급 등 기초 노동질서를 위반한 것으로 나타난 바 있다. 당시 발표에 따르면 38개 사업장에서 총 3억 8,300만 원 규모의 임금체불이 적발됐다.
또한 2023.06.30. 노동법연구(한글)에 게재된 고려대학교 박지순 교수 연구팀이 발표한 “포괄임금제 유효성 판단 기준에 관한 고찰([A Study on the Standards for Determining the Validity of the Comprehensive Wage System])” 연구 결과는 명시적 합의나 근로시간 산정의 곤란함이 없는 경우의 포괄임금 계약은 법적 효력이 없음을 명확히 하고 있다.
경기도 판교의 한 게임사에서 근무하는 김민수(34) 씨는 “그동안 프로젝트 마감 기한이 다가오면 당연하게 밤을 새우면서도 포괄임금제라는 이유로 보상을 요구하기 힘들었다”며 “이제는 내가 일한 시간이 숫자로 기록되고 그만큼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