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맑게 하려고 먹은 이 채소, 와파린 등 혈액응고저지제와 비타민 K 풍부한 채소의 위험한 상호작용
심혈관 질환이나 고혈압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 있어 혈전 예방은 생명과 직결되는 중요한 과제이다. 혈액이 끈적해지거나 덩어리지는 것을 막기 위해 처방되는 혈액응고저지제는 혈관 내 사고를 방지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일반적으로 대중은 피를 맑게 하기 위해 녹색 채소를 충분히 섭취해야 한다고 알고 있으나, 특정 약물을 복용하는 환자들에게는 이러한 건강 상식이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혈액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려는 노력이 오히려 약효를 무력화시키고 건강을 위협하는 모순적인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현재 의료 현장에서 널리 사용되는 와파린(Warfarin)과 같은 항응고제는 혈액 내 응고 인자의 생성을 억제하여 혈전이 생기지 않도록 돕는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건강식으로 꼽는 시금치, 케일, 브로콜리 등에는 비타민 K가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다. 비타민 K는 우리 몸에서 혈액을 응고시키는 단백질 합성에 필수적인 영양소이다. 즉, 약은 혈액 응고를 막으려 하는데 음식은 혈액 응고를 도우려 하는 충돌이 발생하게 된다. 이러한 상호작용은 약물의 농도 조절을 어렵게 만들고, 결국 혈전 발생 위험을 높이는 원인이 된다.

혈관 건강을 위한 노력이 오히려 독이 되는 모순적 상황
심장 판막 수술을 받았거나 심방세동과 같은 부정맥이 있는 환자들은 혈액 응고 능력을 일정 수준 이하로 낮게 유지해야 한다. 이를 위해 복용하는 와파린은 비타민 K의 작용을 방해함으로써 혈액 응고 인자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차단한다. 하지만 식사를 통해 비타민K를 과도하게 섭취할 경우, 차단되었던 혈액 응고 인자들이 다시 활발하게 생성되기 시작한다. 이는 복용 중인 약물의 효능이 급격히 떨어지는 결과를 낳는다. 약을 충분히 먹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혈관 내에 혈전이 생겨 뇌졸중이나 심근경색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천만한 상황이 전개되는 것이다.
현재 많은 환자가 채소는 무조건 많이 먹을수록 좋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어 이러한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특히 즙이나 주스 형태로 농축된 채소를 섭취할 경우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일반적인 식사보다 훨씬 많은 양의 비타민 K가 한꺼번에 체내로 유입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건강을 위해 선택한 식습관이 특정 약물 복용자에게는 오히려 독약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을 반드시 인지해야 한다. 따라서 항응고제를 복용 중이라면 평소 섭취하는 식품의 영양 성분을 꼼꼼히 살피는 습관이 필요하다.
와파린의 항응고 작용을 방해하는 비타민 K의 기전
비타민 K는 간에서 혈액 응고 인자가 합성될 때 꼭 필요한 보조 인자이다. 와파린은 이 비타민 K가 활성화되는 효소 과정을 억제함으로써 응고 인자 생산을 줄인다. 서울 민병원 신정 내과 원장은 “와파린을 복용하는 환자가 시금치나 케일처럼 비타민K가 풍부한 음식을 갑자기 많이 섭취하면 약물이 효소 작용을 억제하는 힘보다 음식을 통해 공급되는 비타민 K의 힘이 더 세져 혈액이 다시 응고되기 쉬운 상태로 변한다”고 설명했다. 신 원장은 또한 “환자들이 건강을 위해 챙겨 먹는 각종 녹즙이나 한약, 비타민 보충제 등이 약물 농도 조절의 가장 큰 변수가 된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비타민K가 단순히 녹색 채소에만 들어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청국장이나 낫토와 같은 발효 식품은 비타민 K2를 대량으로 함유하고 있어 와파린 복용자에게는 금기 식품 중 하나로 꼽힌다. 또한 콩기름, 카놀라유와 같은 일부 식물성 기름에도 상당량의 비타민 K가 포함되어 있다. 환자들은 자신이 먹는 모든 음식을 통제하기 어렵기 때문에, 병원에서는 정기적인 피검사(PT/INR)를 통해 혈액 응고 수치를 모니터링한다. 만약 식단이 불규칙하다면 이 수치가 널뛰게 되어 적정 약물 용량을 결정하는 데 큰 혼란을 겪게 된다.

일관된 식단 유지가 핵심인 혈액응고저지제 복용 관리법
그렇다면 와파린을 복용하는 환자는 채소를 아예 먹지 말아야 하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전문가들은 ‘금지’가 아닌 ‘일관성’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매일 비슷한 양의 채소를 규칙적으로 섭취한다면 의료진은 그 상태에 맞춰 와파린의 용량을 조절할 수 있다. 문제는 평소에 채소를 전혀 먹지 않다가 갑자기 건강을 생각해서 며칠간 시금치 나물을 과식하거나, 주말에만 집중적으로 쌈 채소를 먹는 식의 불규칙한 식습관이다. 이러한 변동성은 약물 농도를 불안정하게 만들어 위험을 초래한다.
최근에는 비타민 K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 새로운 방식의 항응고제인 NOAC(New Oral Anti-Coagulant) 혹은 DOAC이 개발되어 널리 처방되고 있다. 이러한 약물들은 식단 조절로부터 비교적 자유롭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심장 판막 치환술을 받은 환자 등 특정 경우에는 여전히 와파린만이 유일한 대안인 경우가 많다. 따라서 본인이 복용하는 약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와파린을 복용 중이라면 식단 내 비타민 K 함유량을 일정하게 유지하려는 노력이 현재로서 가장 현명한 대처법이다. 건강을 위한 채소 섭취가 약이 될지 독이 될지는 환자의 세심한 관리와 정보 습득에 달려 있다.
힘내라내과의원 이혁 원장에게 듣는 항응고제 복용 시 식단 관리 궁금증
Q. 비타민 K가 많은 채소를 조금이라도 먹으면 바로 위험해지는 것인가?
절대적인 금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핵심은 ‘갑작스러운 변화’를 피하는 데 있다. 평소 시금치 반찬 한두 젓가락을 매일 일정하게 먹어왔다면 몸은 이미 그 상태에 맞춰 약물 농도가 조절되어 있다. 하지만 평소 먹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대량의 녹즙을 마시거나 채소 위주의 과한 식단을 하루아침에 시작하면 약효가 떨어져 위험할 수 있다. 적당량을 매일 비슷하게 유지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Q. 청국장이나 낫토는 왜 특히 더 조심해야 한다고 하는가?
발효된 콩 식품에는 비타민 K2가 매우 농축되어 있다. 특히 이들은 장내 미생물에 의해 비타민 K를 생성하기도 하여 혈액 응고 억제 효과를 강력하게 방해한다. 일반적인 채소보다 훨씬 적은 양으로도 와파린의 효과를 상쇄시킬 수 있기 때문에, 와파린 복용자에게는 가급적 섭취를 피하거나 극히 소량만 섭취하도록 권고하는 것이다.
Q. 모든 혈전약이 식단에 이토록 예민하게 반응하는가?
그렇지 않다. 아스피린 같은 혈소판 응집 억제제나 최근 많이 쓰이는 NOAC 계열의 항응고제들은 비타민 K 섭취량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와파린은 비타민 K를 직접적으로 이용하는 응고 인자 합성 과정을 건드리기 때문에 유독 식단에 민감한 것이다. 본인이 복용하는 약이 와파린인지, 아니면 다른 계열의 약물인지 반드시 확인하고 그에 맞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