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2026년 지원 강화방안 확정… 산정특례 본인부담 낮추고 등재 기간 단축해 희귀난치질환 의료비 부담 완화하고 치료제 접근성 개선 등 국가 책임 대폭 강화
“약이 있어도 돈이 없어 쓰지 못하고, 돈이 있어도 국내에 약이 들어오지 않아 발을 동동 구르던 시절이 저물 수 있을까.” 희귀·중증난치질환 환자와 가족들이 오랫동안 염원해온 의료비 지원 확대와 신약의 신속한 건강보험 등재가 현실화된다. 정부는 고액 의료비로 인한 가계 파탄을 막고, 생명과 직결된 필수의약품을 적기에 공급하기 위해 국가의 책임을 대폭 강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종합 대책을 내놨다.
보건복지부와 관계부처는 5일 합동 브리핑을 통해 「희귀·중증난치질환 지원 강화방안」을 발표했다. 이번 대책은 그동안 ‘메디컬 푸어(Medical Poor)’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있던 환자들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고, 평균 1년 가까이 소요되던 신약 등재 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는 데 방점이 찍혔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날 “희귀·중증난치질환자가 희망을 품고 치료를 포기하지 않도록, 정부가 든든한 버팀목이 되겠다”고 강조했다.

산정특례 본인부담 추가 인하… ‘메디컬 푸어’ 방지턱 높인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환자들의 피부에 직접 와닿는 의료비 부담 경감 조치다. 현재 희귀·중증난치질환자는 ‘산정특례’ 제도를 통해 요양급여 비용의 10%만 부담하고 있다. 암이나 심장질환 등 다른 중증질환의 본인부담률이 5%인 것과 비교하면 여전히 두 배가량 높은 수준이다. 실제로 2024년 기준 1인당 연평균 본인부담금을 살펴보면 암 환자는 73만 원인 데 비해, 중증난치질환자는 86만 원을 부담하는 등 역전 현상이 발생하기도 했다. 특히 혈우병(연 1,044만 원)이나 부신생식기장애(연 573만 원) 환자들의 경제적 고통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정부는 이러한 형평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희귀·중증난치질환의 본인부담률을 현행 10%에서 단계적으로 인하하기로 했다. 일정 금액을 초과하는 본인부담금에 대해서는 5%를 적용하고 차액을 사후 환급해 주는 방식 등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이는 지속적인 치료가 필수적인 환자 가계의 숨통을 틔워줄 것으로 기대된다.
아울러 산정특례 적용 대상 질환도 대폭 확대됐다. 선천성 기능성 단장증후군 등 70개 질환이 신규로 산정특례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선천성 장 기능 이상으로 평생 영양 공급에 어려움을 겪는 환자들도 이제 제도권 안에서 보호받게 됐다. 이로써 2026년부터 산정특례 혜택을 받는 희귀질환은 총 1,387개로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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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것도 서러운데 입증까지?”… 재등록 ‘고문’ 없앤다
환자들을 괴롭혀온 불필요한 행정 절차도 대거 사라진다. 그동안 희귀·중증난치질환자들은 산정특례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 5년마다 재등록을 해야 했는데, 이 과정에서 312개 질환은 고통스럽고 비용이 많이 드는 검사 결과를 의무적으로 다시 제출해야 했다. 유전자 이상으로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환자들에게 “아직도 아프다는 것을 증명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행정 편의주의라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에 따라 정부는 완치가 어려운 질환의 특성을 고려해 재등록 시 불필요한 검사 절차를 전면 폐지하기로 했다. 앞으로는 의사의 임상 진단과 치료 이력만 있으면 별도의 검사 없이 특례 기간을 연장할 수 있게 됐다. 현장의 요구가 가장 높았던 샤르코-마리투스병(유전성 운동 및 감각 신경병증), 구리 대사 장애 등 9개 질환이 우선 적용 대상이며, 향후 전체 질환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이는 환자들의 신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불필요한 의료비 지출을 막는 효과도 가져올 전망이다.
또한, 저소득층 희귀질환자를 지원하는 의료비 지원사업에서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부양의무자 기준’도 2027년부터 단계적으로 폐지된다. 그동안 환자 본인의 소득이 적어도 따로 사는 부모나 자녀의 소득이 기준을 넘으면 지원을 받지 못했던 복지 사각지대가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신약 등재 ‘240일 → 100일’ 단축… 치료제 ‘직구’ 고통 끝내나
이에 “약은 개발됐는데 보험 등재를 기다리다 환자가 사망했다”는 안타까운 뉴스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희귀질환 치료제의 건강보험 등재 소요 기간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신속 등재 제도’를 본격화한다.
기존에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 이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급여 적정성 평가, 건강보험공단의 약가 협상까지 거치며 약 1년(330일) 가까운 시간이 소요됐다. 정부는 이를 개선하기 위해 허가-평가-협상 절차를 병행하는 시범사업을 통해 기간을 단축해 왔으며, 2026년부터는 평가 및 협상 기간을 현행 240일에서 100일 이내로 대폭 줄이기로 했다. 이른바 ‘초고속 등재 트랙’이 제도화되는 셈이다.
수익성이 낮아 민간 제약사가 공급을 꺼리는 필수의약품에 대한 공적 공급망도 강화된다. 환자들이 해외에서 직접 ‘자가 치료용’으로 힘겹게 구하던 의약품을 정부가 직접 구매해 공급하는 ‘긴급 도입’ 품목으로 전환한다. 2030년까지 긴급 도입 품목을 41개 이상으로 늘리고, 이 중 건강보험 급여 적용이 가능한 약제는 우선적으로 급여화를 추진해 환자의 비용 부담을 낮춘다. 또한, 국내 공급 중단 우려가 있는 필수의약품은 정부가 제약사에 주문 제조를 맡겨 공공 생산 체계를 구축, 2030년까지 17개 품목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계획이다.
의료와 복지의 칸막이 제거… ‘지역 완결형’ 관리 체계 구축
이번 대책은 단순히 의료비 지원에만 그치지 않고, 환자의 삶 전반을 아우르는 ‘의료-복지 연계’ 강화에도 힘을 실었다. 희귀질환은 장기간의 투병 생활로 인해 간병, 돌봄, 재활, 심리 상담 등 다양한 복지 서비스가 절실하지만, 그동안은 의료적 지원에만 정책이 집중돼 있었다.
정부는 올해 상반기 중 희귀질환 실태조사를 통해 환자들의 구체적인 복지 수요를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맞춤형 연계 지원 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또한, 환자들이 거주지 인근에서 전문적인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희귀질환 전문기관을 확대 지정한다. 전문기관이 부재했던 광주, 울산, 경북, 충남 권역에 전문기관을 신설하여 ‘지역 완결형’ 진료 체계를 완성한다는 구상이다.
더불어 질환 의심 환자와 가족을 위한 유전자 진단 지원 건수도 지난해 810건에서 2026년 1,150건으로 늘려, 조기 진단과 치료의 기회를 넓힌다. 등록 사업 참여 의료기관도 상급종합병원에서 종합병원급 이상으로 확대해 환자 데이터의 정확성을 높이고, 이를 신약 개발과 정책 수립에 활용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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