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1월 미공군 B52 폭격기 추락사고 현장에서 발견된 단 하나의 스위치가 인류를 구했다
칠흑 같은 어둠이 짙게 깔린 한겨울의 밤하늘 아래, 평온하게 잠든 수백만 명의 사람들 위로 인류의 종말을 불러올 수도 있었던 거대한 그림자가 소리 없이 추락하고 있었다. 역사상 가장 아찔했고 또 가장 등골이 서늘해지는 순간으로 기록된 이 사건은 1961년 1월 24일 새벽,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골즈버로 상공에서 발생했다.
군사 암호명 ‘브로큰 에로(Broken Arrow)’, 즉 핵무기를 분실했거나 심각한 사고가 발생했다는 긴급 상황이 발령된 그날 밤의 전말은 인류가 얼마나 아슬아슬한 운명의 줄타기를 하고 있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당시 추락하던 B-52G 스트라토포트리스 폭격기 내부에는 히로시마에 투하됐던 원자폭탄 파괴력의 무려 260배에 달하는 열핵폭탄 두 발이 실려 있었다. 만약 이 폭탄들이 지상에서 폭발했다면 미국 동부 해안의 상당 부분은 순식간에 지도에서 사라졌을 것이며, 수백만 명의 목숨이 한순간에 잿더미로 변했을 것이다.

3분 만에 쏟아진 17톤의 연료와 통제 불능의 하강
사건의 시작은 1961년 1월 23일 밤에서 24일로 넘어가던 자정 무렵이었다. 고요했던 야간 비행 임무는 공중급유를 시도하던 중 우측 날개에서 엄청난 양의 연료가 새는 것이 발견되면서 돌이킬 수 없는 악몽으로 변했다. 12시 3분경 상황은 완전히 통제 불능의 상태로 치달았고, 기장은 즉시 기지 복귀 지시를 받았다. 하지만 기체는 이미 살얼음을 걷는 듯한 피 말리는 상황을 넘어 파괴되고 있었다. 단 3분 만에 무려 1만 7천 킬로그램이 넘는 제트 연료가 허공으로 뿜어져 나갔고, 거대한 폭격기의 숨통은 끊어졌다.
12시 35분, 9천 피트 상공에서 기장은 전 승무원에게 비상탈출을 명령했다. 기체 구조가 갈기갈기 뜯겨 나가는 극한의 공포 속에서 8명의 승무원 중 5명은 극적으로 살아남았으나 3명은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다. 조종사를 잃은 폭격기는 밤하늘에서 무참하게 공중분해 됐고, 그 안에 잠들어 있던 두 발의 수소폭탄 ‘마크 39 모드2’가 지상을 향해 자유 낙하를 시작했다.
히로시마 원폭 260배 위력, 두 괴물이 그린 엇갈린 궤적
공중분해 된 기체에서 튕겨 나온 두 발의 괴물은 서로 전혀 다른 궤적을 그리며 추락했다. 1번 무기는 투하용 낙하산이 정상적으로 펼쳐지면서 나무에 걸려 비교적 온전한 상태로 지상에 안착했다. 반면 2번 무기는 낙하산이 펴지지 않은 채 엄청난 속도로 추락하여 늪지대와 같은 깊은 진흙 속에 그대로 내리꽂히며 산산조각이 났다.
마크 39 수소폭탄은 단순히 땅에 부딪힌다고 터지는 무기는 아니었지만, 사고 직후 샌디아 국립연구소의 정밀 분석 결과는 경악 그 자체였다. 나무에 걸려 있던 1번 무기 내부에서는 마치 누군가 폭격 버튼을 누른 것처럼 스스로 무장 시퀀스가 작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낙하산이 펼쳐지자 발전기가 전력을 공급하기 시작했고, 42초짜리 기폭 타이머가 끝까지 돌아갔으며, 땅에 닿는 순간 충격 스위치까지 닫히며 폭발을 위한 모든 준비가 끝난 상태였다.

단 하나의 MC772 스위치가 막아낸 대참사
폭탄을 통제해야 할 4개의 핵심 안전장치 중 무려 3개가 연쇄적으로 고장 나거나 풀려버린 상황에서, 기폭장치로 신호를 보내기 직전 오직 단 하나, 아주 작고 단순한 전기기계식 스위치인 ‘MC772’만이 간신히 안전 위치에 걸려 있었다. 다른 모든 장치가 폭발을 외치고 있을 때 이 스위치 하나가 고전압 전류를 끊어내며 수백만 명의 목숨을 구한 것이다.
당시 샌디아 연구소의 핵무기 안전관리자였던 파커 F. 존슨은 훗날 이 사고에 대해 단 하나의 단순한 저전압 스위치가 미국과 대참사 사이에 서 있었다고 회고했다. 전선 하나만 잘못 연결됐거나 아주 작은 합선만 일어났더라도 그 스위치는 즉각 무장 모드로 넘어갔을 것이고, 인류 역사는 그날 새벽 완전히 뒤바뀌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지하 180피트 아래 여전히 잠들어 있는 핵융합 코어
기적 같은 1번 무기의 회수와 달리, 진흙 속에 처박힌 2번 무기는 또 다른 비극의 씨앗을 남겼다. 폭탄이 산산조각 나면서 방사능 덩어리인 2차 핵융합 코어를 끝내 회수하지 못한 것이다. 사고 현장의 지하수위가 너무 높아 굴착 작업이 불가능했고, 결국 이 무시무시한 코어는 여전히 노스캐롤라이나주 파로의 한적한 농장지대 지하 180피트 깊은 곳에 묻혀 있다.
미국 정부는 해당 부지의 영구 사용권을 사들여 일반인의 접근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다. 1963년 로버트 맥나마라 당시 국방장관은 1급 비밀회의에서 두 개의 전선이 교차하지 않은 아주 근소한 차이로 핵폭발을 피했다고 엄중히 경고했다. 인간이 만든 시스템은 결코 완벽할 수 없으며, 단 하나의 작은 스위치가 우리와 종말 사이의 유일한 장벽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오늘날까지도 묵직한 시사점을 던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