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7년도 의원 수가 결정 과정에서 드러난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의 일방통행과 의료계의 거센 반발
우리나 의료 체계의 근간을 지탱하는 건강보험 수가 제도가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25일, 보건복지부는 이형훈 제2차관 주재로 제12차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를 열고 내년도 의원급 의료기관의 요양급여비용, 즉 수가 인상률을 1.6%로 최종 확정했다. 이는 지난 5월 국민건강보험공단과 대한의사협회 간의 협상이 결렬된 이후 정부가 내린 결론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1조 2058억 원이라는 거대 재정이 추가 투입되는 인상안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일차의료의 숨통을 조이는 정교한 통제 기전과 의료계의 절규가 뒤섞인 혼돈의 현장이 드러난다.
수가란 의료기관이 제공하는 의료 서비스의 대가로, 정부가 건강보험 재정에서 지급하는 비용을 의미한다. 이 비용은 개별 의료 행위의 가치를 나타내는 상대가치점수에 매년 협상을 통해 정해지는 환산지수를 곱하여 산출된다. 따라서 환산지수 인상률은 곧 의사들의 수입과 직결되는 동시에 환자들이 부담해야 할 진료비의 기준이 된다.

1.6% 인상률의 허구성과 물가 상승률조차 반영하지 못한 현실
이번 건정심에서 결정된 의원급 수가 인상률 1.6%는 최근의 가파른 물가 상승률과 인건비 상승폭을 고려할 때 사실상 실질적인 수가 삭감이나 다름없다는 비판이 지배적이다. 특히 이번 인상안의 구조를 살펴보면 더욱 그렇다. 전체 1.6% 인상분 중 순수하게 환산지수를 올리는 데 사용된 재정은 0.9%에 불과하며, 나머지 0.7%는 진찰료 등 특정 행위의 상대가치점수를 인상하는 데 배정됐다. 정부는 이를 필수의료 및 저평가 항목에 대한 보상 강화라고 포장하고 있지만, 의료계는 이를 환산지수 쪼개기라는 해괴한 논리로 규정하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의원급 의료기관은 대형 병원과 달리 고정비 지출 비중이 높고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를 지닌다. 간호사 및 행정 인력의 임금 인상, 임대료 상승, 각종 의료 소모품 가격의 폭등 속에서 0.9%의 환산지수 인상은 동네 의원들의 경영난을 가속화할 것이 자명하다. 정부가 제시한 평균 인상률 1.65%에도 미치지 못하는 이번 결정은 일차의료를 고사시키겠다는 선전포고와 다름없다는 것이 현장 의사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필수의료 강화 방안의 모순
정부는 이번 건정심을 통해 지역 및 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해 연간 3.6조 원 규모의 건강보험 재정을 투입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 재정의 출처를 살펴보면 충격적이다. 검체검사와 CT, MRI 등 영상 검사 분야를 과보상 영역으로 규정하고, 여기서 2.6조 원의 수가를 조정하여 필수의료 재원으로 전용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는 전형적인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 식의 정책으로, 특정 진료 과목이나 검사 분야의 희생을 강요하여 생색을 내는 구조다. 특히 검체검사 위수탁 제도의 개편은 의료계에 엄청난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수십 년간 시장 논리에 의해 유지되어 온 검사료 정산 체계를 무너뜨리고, 위탁과 수탁 수가를 인위적으로 구분하여 배분 비율을 강제하겠다는 것이다. 진단검사를 의뢰하는 의원 및 병원급 의료기관은 급격한 수가 하락으로 인해 경영상 막대한 타격을 입게 될 전망이다. 정부는 임상결과 분석 관리료 신설 등의 보완책을 내놓았으나, 이는 근본적인 손실을 메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결국 이러한 과격한 수가 조정은 의료 서비스의 질 저하로 이어지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희귀질환 치료제 신속등재와 일차의료 혁신의 빛과 그림자
이번 회의에서는 수가 결정 외에도 희귀질환 치료제 신속등재 시범사업과 지역사회 일차의료 혁신 시범사업 변경안이 논의됐다. 희귀질환 치료제의 건강보험 적용 기간을 현행 240일에서 100일로 대폭 단축하겠다는 계획은 환자들에게는 분명 희소식이다. 하지만 이 역시 비용효과성 평가 절차를 간소화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재정적 부담과 약제의 안전성 검증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은 부족해 보인다.
또한 지역사회 일차의료 혁신 시범사업은 동네 의원이 환자의 예방과 건강관리를 전담하는 한국형 일차의료 모델을 지향하지만, 도입되는 통합수가 체계가 오히려 의료기관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행정적 부담만 가중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환자의 건강 상태에 따른 위험도를 평가하여 수가를 차등 지급하는 방식은 자칫 의료진이 중증 환자를 기피하게 만들거나, 복잡한 평가 지표에 매몰되어 실제 진료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드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정부는 인센티브 제공을 약속하고 있지만, 의료계는 이를 비급여 통제와 관리급여 도입을 위한 사전 포석으로 의심하며 경계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깜깜이 협상과 불공정 구조가 낳은 의료계의 분노와 궐기
매년 반복되는 수가 협상 과정은 늘 불공정 논란에 휩싸여 왔다. 정부와 건보공단이 미리 정해놓은 재정 범위(밴딩) 안에서 의료계가 파이를 나눠 가져야 하는 구조 자체가 협상이 아닌 통보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의원 유형은 정부의 최종 제시안을 받아들일 수 없어 협상 결렬을 선언했으나, 건정심은 기다렸다는 듯이 공단 제시안인 1.6%를 원안대로 의결했다. 이에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한 의료계는 강력한 투쟁을 예고했다. 오는 2026년 6월 28일 오후 4시, 서울 대한문 앞에서는 국민의 치료권과 의사의 진료권을 침해하는 관리급여 반대 궐기대회가 열릴 예정이다.
의사들은 정부가 필수의료 살리기라는 명분으로 의료 현장의 목소리를 묵살하고, 일방적인 수가 구조 개편과 비급여 통제를 강행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특히 환산지수 쪼개기를 통해 일차의료의 근간을 흔드는 행태는 대한민국 의료 시스템의 붕괴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이번 궐기대회는 단순히 수가 인상률에 대한 불만을 넘어, 정부의 고압적인 의료 정책 전반에 대한 거부권 행사로 번질 기세다.
지속 가능한 건강보험 체계를 위한 근본적 구조 개혁의 절실함
결국 이번 내년도 의원 수가 결정 사태는 대한민국 건강보험 제도가 직면한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저부담-저수가-저급여라는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한정된 재원을 가지고 의료계 내부의 갈등을 유발하며 땜질식 처방만 반복하고 있는 꼴이다. 필수의료를 살리겠다고 특정 분야의 수가를 깎아 다른 곳에 붙이는 방식은 결국 의료 생태계 전체의 하향 평준화를 불러올 뿐이다. 진정한 의료 혁신은 의료진의 헌신에 걸맞은 정당한 보상과 환자의 선택권이 조화를 이룰 때 가능하다.
정부는 숫자에만 매몰된 재정 관리에서 벗어나, 의료 현장의 전문가들과 진정성 있는 대화에 나서야 한다. 1.6%라는 수치가 담고 있는 의미는 단순한 인상률이 아니라, 무너져가는 일차의료의 마지막 경고음일지도 모른다. 앞으로 진행될 시범사업들과 수가 조정 과정에서 정부가 얼마나 전향적인 자세로 의료계의 의견을 수용할지가 대한민국 의료의 미래를 결정짓는 분수령이 될 것이다. 갈등과 대립이 아닌, 상생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의료 거버넌스의 구축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