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대면 진료 이대로 괜찮나? 의료계 깊은 우려
정부와 산업계가 편의성을 앞세워 비대면 진료의 전면적인 제도화를 추진하는 가운데, 의료계의 깊은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오늘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이 주최한 ‘비대면 진료 제도화의 문제점’ 정책 포럼은 이러한 갈등의 정점을 예고했다. 의료계는 환자의 상태를 직접 보지 못하는 진료 방식이 의료의 본질을 훼손하고 국민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며 강력한 제동을 걸고 나섰다.
실제로 가톨릭의대 김헌성 교수가 공개한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수행 실적 평가 연구’에 따르면, 비대면 진료를 경험한 환자의 91.7%, 의사의 84.7%가 향후에도 이용할 의향이 있다고 답해 높은 만족도를 보였다. 특히 고혈압, 당뇨병 등 만성질환 관리에서 반복적인 처방을 받는 데는 효율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환자들은 ‘시간 절약과 편리함(65.0%)’을 가장 큰 장점으로 꼽았다.
하지만 이 편리함의 이면에는 치명적인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 김진숙 전문연구원의 발표 자료는 해외의 충격적인 사례들을 통해 안전장치 없는 비대면 진료의 위험성을 적나라하게 고발했다.
전화 상담만으로 패혈증을 놓쳐 사망한 16세 청소년, 심각한 선천성 심장 이상을 발견하지 못한 3세 이전 영아, 난소암을 불안증으로 오진받은 63세 여성 등 비극적인 사례는 비대면 진료가 단순한 편의의 문제가 아님을 보여준다. 편의성과 안전성,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까, 아니면 우리는 편리함의 대가로 생명을 저당 잡히고 있는 것일까?

전화기 너머의 진단, ‘시진·청진’ 빠진 반쪽짜리 진료
의료계가 비대면 진료에 대해 가장 근본적으로 우려하는 지점은 진단의 부정확성이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에 따르면, 현대 의학의 진단은 환자의 표정과 걸음걸이, 냄새까지 살피는 ‘추정 및 진단’에서 시작해, 눈으로 보고(시진), 청진기로 듣고(청진), 손으로 만져보고(촉진), 두드려보는(타진) ‘대면 진료’ 과정을 거친다. 이후 혈액검사나 영상검사 등 ‘추가 검사’를 통해 최종 확진에 이른다.
하지만 현재 비대면 진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전화 상담 방식으로는 이 과정 중 오직 환자의 설명에만 의존하는 ‘문진’만이 가능하다. 이는 전체 진단 과정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며, 의사가 얻을 수 있는 객관적인 정보가 절대적으로 부족해 오진의 위험을 기하급수적으로 높인다. 특히 스스로 증상을 정확히 표현하기 어려운 소아 환자나 복합적인 증상을 가진 노인 환자에게는 이러한 ‘반쪽짜리’ 진료가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비대면 진료 과연 환자에게 이로울까? ‘초진 허용’ 논란 속 안전성 확보 방안은?
소아·임산부·노인 해외선 ‘사망·오진’ 속출…한국은 안전한가
비대면 진료의 위험성은 특정 환자군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김진숙 연구원의 자료에 따르면, 미국, 영국 등 해외에서는 소아, 임산부, 노인을 대상으로 한 비대면 진료에서 사망 및 오진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5일간의 무기력증을 호소한 16세 청소년은 전화 진료 후 패혈증으로 사망했고, 제왕절개 후 호흡곤란을 호소한 40세 산모는 코로나 검사만 권고받은 뒤 다음 날 폐색전증으로 숨졌다.
미국 내과 분야 학술지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전화 관련 의료과실 소송의 68%가 ‘진단 실패’에서 비롯되었으며, 평균 배상액은 51만 달러(약 7억 원)를 넘어섰다. 특히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와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소아 환자의 경우 발열, 복통 등 비특이적 증상이 뇌수막염과 같은 심각한 질환의 초기 신호일 수 있어 비대면 초진은 절대 불가하다는 입장을 수차례 밝혔다.

고혈압·당뇨 관리에 효과?…데이터가 말하는 ‘기회와 위험’
물론 비대면 진료의 긍정적인 측면도 존재한다. 가톨릭의대 김헌성 교수가 발표한 국민건강보험공단 데이터 분석 결과는 비대면 진료가 특정 영역에서 기회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2023년 6월부터 12월까지의 시범사업 기간 동안 비대면 진료의 99.8%는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이뤄졌으며 , 주된 상병은 본태성 고혈압(34.7%)과 2형 당뇨병(15.8%)으로, 만성질환 관리에 집중적으로 활용되는 양상을 보였다.
정책 효과 분석(DID) 결과, 고혈압과 당뇨병 환자군에서 비대면 진료는 대면 진료에 비해 외래 방문 건수 감소 폭이 적어 의료 이용을 유지하는 데 긍정적 효과를 보였다. 하지만 이러한 효과는 70세 이상 고령층에서는 뚜렷하지 않았고 , 동일 의료기관에서 지속적으로 진료받는 ‘의료 지속성’은 대면 진료군보다 다소 낮게 나타나는 한계도 보였다. 안전성 측면에서는 입원이나 응급실 이용 비율에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가 발견되지 않았다.
환자 92%·의사 85% ‘계속 쓰겠다’…편의성 뒤에 숨은 ‘플랫폼의 그늘’
이처럼 특정 조건 하에서 비대면 진료의 유용성이 나타나고, 이용자 만족도가 높게 나오자 비대면 진료 플랫폼 기업들은 시장을 빠르게 장악하고 있다.
김헌성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환자의 55.8%가 플랫폼을 통해 비대면 진료를 이용한 경험이 있으며 , 이들은 ‘편의성(66.4%)’을 주된 이용 이유로 꼽았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플랫폼이 ‘약 배송비 0원’ , ‘후기 작성 시 5만원’ 등의 미끼로 환자를 유인하고, 불필요한 의료 수요를 창출하는 등 의료 상업화를 부추긴다는 비판이 거세다.
또한 서울 소재 의료기관에서 비대면 진료를 받은 환자의 37.2%가 타 지역 거주자로 나타나, 의료 전달체계를 왜곡하고 수도권으로의 환자 쏠림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의료계 “‘초진 불가·법적 책임 명확화’ 선결돼야”
이러한 문제들로 인해 의료계는 안전한 비대면 진료를 위한 명확한 ‘선결조건’이 법제화되어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강조한다.
의료정책연구원이 제시한 조건은 ▲대면 진료를 원칙으로 하고 비대면은 보조 수단으로 활용 ▲환자를 한 번 이상 진료한 경험이 있는 재진 환자를 원칙으로 하되, 섬·벽지 거주자 등 예외적인 경우에만 초진 허용 ▲의원급 의료기관 중심으로 시행하고 비대면 진료만 전담하는 기관은 금지 ▲화상 진료를 원칙으로 하고 전화는 예외적으로만 허용 ▲플랫폼의 불법적인 환자 유인 행위를 엄격히 단속하고, 의사의 진료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규제 등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의료사고 발생 시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는 것이다. 의료계는 환자가 의사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거나, 통신 오류 등 불가항력적인 상황에 대해서는 의사의 책임을 면제하고, 국가가 피해보상을 지원하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비대면 진료는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 되었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과 편의성 추구가 환자의 생명과 안전이라는 의료의 최우선 가치를 앞설 수는 없다. 섣부른 제도화가 불러올 혼란과 위험을 막기 위해서는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통해 안전장치를 겹겹이 쌓아 올리는 신중한 접근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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