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통증 없어도 심장병? 혈관 내벽이 찢어지는 치명적 질환의 비전형적 증상 분석
흔히 심장 질환의 전조 증상이라고 하면 가슴을 쥐어짜는 듯한 강한 흉통을 떠올린다. 그러나 심장에서 뻗어 나오는 가장 큰 혈관인 대동맥이 찢어지는 ‘대동맥 박리’는 가슴이 아닌 등 부위의 극심한 통증으로 나타나는 사례가 빈번하다. 이러한 비전형적인 증상은 환자가 단순한 근육통이나 디스크로 오인하게 만들어 진단 골든타임을 놓치게 하는 주된 원인이 된다.
2022년 11월 2일 미국심장학회(ACC)와 미국심장협회(AHA)가 공동 발표한 [2022 ACC/AHA Guideline for the Diagnosis and Management of Aortic Disease]에 따르면, 흉통이 없더라도 견갑골(날개뼈) 사이나 등 줄기를 따라 뻗치는 칼로 베는 듯한 통증이 발생할 경우 즉시 대동맥 질환을 의심하고 정밀 검사를 시행해야 한다고 강력히 권고하고 있다.

혈관 내벽이 찢어지는 대동맥 박리의 치명적인 발병 기전
대동맥은 심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혈액을 전신으로 전달하는 우리 몸의 가장 굵은 혈관이다. 이 혈관은 강한 압력을 견디기 위해 내막, 중막, 외막의 세 겹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동맥 박리는 어떤 원인에 의해 가장 안쪽의 내막이 찢어지면서 혈액이 중막 사이로 파고들어 혈관벽이 층층이 갈라지는 현상을 말한다. 혈류가 원래 흘러야 할 통로가 아닌 새롭게 만들어진 ‘가짜 통로’로 유입되면서 대동맥이 부풀어 오르거나 파열될 위험이 급격히 높아진다.
2021.05.01. 대한내과학회지(The Korean Journal of Internal Medicine)에 게재된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강남세브란스병원 심장혈관외과 송석원 교수팀의 연구(논문명: [Clinical Outcomes of Acute Aortic Dissection: A Single-Center Experience]) 결과에 따르면, 고혈압은 대동맥 박리 발생의 가장 강력한 위험 인자로 작용하며 전체 환자의 73.4%에서 기저 질환으로 확인됐다.
혈관벽이 찢어지는 순간 환자는 평생 경험해 보지 못한 수준의 극심한 통증을 느낀다. 대동맥은 상행 대동맥에서 시작해 복부로 내려가는 구조를 가지기 때문에, 박리가 일어나는 부위에 따라 통증의 위치가 달라진다. 상행 대동맥에 문제가 생기면 앞가슴 쪽에 통증이 집중되지만, 하행 대동맥이나 흉부 대동맥 부위에서 박리가 시작되면 날개뼈 사이의 등 부위나 허리 쪽으로 통증이 뻗어나가는 특징을 보인다. 이러한 해부학적 구조 차이로 인해 많은 환자가 심장 질환임을 자각하지 못하고 병원 방문을 주저하게 된다.
전형적인 흉통 대신 등 부위 통증이 발생하는 의학적 기제
대동맥 박리 환자 중 상당수가 등을 쥐어짜는 듯하거나 무언가에 찔리는 듯한 통증을 호소한다. 이는 박리가 일어나는 지점이 척추와 가까운 후방 대동맥일 경우 신경을 직접 자극하기 때문이다. 또한 혈액이 혈관벽 사이를 비집고 내려가면서 통증 부위가 위에서 아래로 이동하는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현재 의료 현장에서는 이러한 통증의 이동 경로를 대동맥 박리를 진단하는 중요한 임상적 단서로 활용하고 있다. 서울 민병원 김혁문 외과진료원장은 “대동맥 박리는 발생 직후 1시간이 지날 때마다 사망률이 약 1%씩 증가하는 매우 위중한 질환이다”라고 강조하며 “가슴이 아닌 등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느껴진다면 지체 없이 응급실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일반적인 근육통은 특정 자세를 취할 때 통증이 심해지거나 완화되는 경향이 있지만, 대동맥 박리로 인한 통증은 자세 변화와 상관없이 지속적이며 강도가 매우 높다. 또한 통증과 함께 식은땀이 흐르거나 안색이 창백해지는 등 전신적인 쇼크 증상이 동반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송석원 교수팀의 임상 분석에 따르면, 하행 대동맥 박리가 심해져 복부 기관으로 가는 혈류가 차단될 경우에는 갑작스러운 복통이나 다리 저림, 마비 증상까지 나타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이러한 다양한 증상 발현은 대동맥이 우리 몸의 중추적인 혈관임을 방증한다.

고혈압 환자와 고령층이 반드시 경계해야 할 비전형적 징후
대동맥 박리의 최대 위험 요인은 단연 고혈압이다. 조절되지 않는 높은 혈압은 지속적으로 대동맥 내벽에 충격을 가해 미세한 균열을 만들고, 결국 벽이 찢어지는 사고로 이어진다. 특히 현재처럼 일교차가 큰 환경에서는 혈관이 수축하면서 혈압이 급격히 상승해 박리 위험이 가중된다. 2012.03.20. 국제학술지 Circulation에 발표된 국제 대동맥 박리 등록소(IRAD) 연구팀의 논문(논문명: [Clinical Characteristics and Outcomes of Aortic Dissection Presenting Without Chest Pain]) 결과, 전체 대동맥 박리 환자의 약 6.3%가 전형적인 가슴 통증 없이 내원하며, 이 경우 가슴 통증이 있는 환자보다 진단 지연으로 인한 원내 사망 위험이 더 높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노화 역시 혈관의 탄력을 떨어뜨려 박리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이다. 60대 이상의 고령층은 혈관벽의 석회화가 진행되어 작은 압력 변화에도 취약해진다. 또한 마르판 증후군과 같은 유전적 요인이나 이첨판 대동맥 판막 등 선천적인 혈관 이상이 있는 경우 젊은 층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 IRAD의 후속 데이터에 따르면 평소 고혈압을 앓고 있거나 가족 중 대동맥 질환자가 있는 고위험군이라면 평소와 다른 강한 등 통증을 단순한 근육통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정기적인 혈압 체크와 더불어 건강검진을 통한 대동맥 상태 확인이 필수적이다.
골든타임 확보를 위한 신속한 응급 진단과 치료 체계
대동맥 박리가 의심되어 병원을 찾으면 가장 먼저 흉부 X선 검사와 심전도를 시행하지만, 확진을 위해서는 컴퓨터 단층촬영(CT)이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혈관 조영제를 투여하는 CT 검사를 통해 대동맥의 어느 부위가 얼마나 찢어졌는지, 가짜 통로의 범위는 어디까지인지 정밀하게 파악한다. 진단 결과 상행 대동맥에 박리가 발생한 ‘스탠퍼드 A형’은 파열로 인한 급사 위험이 매우 커 즉각적인 응급 수술이 요구된다. 반면 하행 대동맥에 국한된 ‘스탠퍼드 B형’은 합병증이 없는 경우 혈압 조절과 같은 약물 치료를 우선 고려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가슴을 크게 절개하지 않고 혈관 내에 스텐트를 삽입하는 ‘스텐트 그라프트 삽입술’이 활발히 시행되고 있다. 이는 수술 부담이 큰 고령 환자나 기저 질환자에게 효과적인 대안이 된다. 우리나라 응급 의료 체계는 대동맥 박리 환자를 신속히 수술 가능한 센터로 이송하는 ‘대동맥 핫라인’ 시스템을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환자 본인이 증상을 자각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단계가 늦어지면 현대 의학으로도 손을 쓰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일상생활에서의 혈압 관리와 대동맥 질환 예방 수칙
대동맥 박리를 예방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철저한 혈압 관리다. 혈압약 복용을 임의로 중단하거나 거르는 행위는 혈압 변동성을 높여 혈관에 치명적인 타격을 준다. 식습관 개선을 통해 나트륨 섭취를 줄이고 규칙적인 유산소 운동을 병행하여 혈관 건강을 유지해야 한다. 다만, 이미 혈압이 높거나 대동맥 확장 소견이 있는 환자라면 무거운 물건을 들거나 숨을 참으며 힘을 주는 고강도 근력 운동은 대동맥 압력을 급격히 높일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금연 또한 필수적이다. 담배의 유해 성분은 혈관 내피세포를 손상시키고 염증을 유발해 혈관을 딱딱하게 만든다. 술 역시 일시적인 혈압 상승과 맥박수 증가를 일으켜 대동맥에 무리를 줄 수 있으므로 절제가 필요하다. 평소 스트레스 관리와 충분한 휴식을 통해 심혈관계의 안정을 꾀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등 통증은 우리 몸이 보내는 마지막 경고일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비전형적인 증상에 대해 항상 경각심을 유지하는 것이 생명을 지키는 최선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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