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시만 하던 ‘다제내성 결핵환자 접촉자’ 치료비 전액 면제로 선제적 예방 길 열려
2026년 1월 1일부로 결핵 방역 체계의 거대한 구멍 하나가 메워진다. 그동안 마땅한 예방 치료법이 없어 발병 여부만 가슴 졸이며 지켜봐야 했던 ‘다제내성 결핵환자 접촉자’들에게 희소식이 전해졌다. 질병관리청은 오는 2026년부터 이들에 대한 잠복결핵감염 치료비 본인부담금을 전액 면제하고, 적극적인 예방 치료를 권고하기로 했다. 이는 단순한 비용 지원을 넘어, ‘슈퍼 결핵’으로 불리는 다제내성 결핵의 확산을 원천 봉쇄하겠다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담긴 조치다.

‘추적 관찰’이라는 이름의 방치, 이제는 끝났다
지금까지 다제내성 결핵환자의 가족이나 동료 등 밀접 접촉자들은 의료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일반 결핵(감수성 결핵) 환자의 접촉자는 잠복결핵감염 치료를 통해 발병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었지만, 다제내성 결핵은 사정이 달랐다. 국내외적으로 확립된 표준 예방 치료법이 부재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다제내성 결핵환자와 접촉하여 잠복결핵감염이 확인되더라도, 의료현장에서는 손을 쓸 방법이 없었다. 접촉자들은 2년 동안 주기적인 흉부 방사선 검사를 받으며, 결핵균이 활동하기 시작하는지 확인하는 ‘추적 관찰’에 의존해야만 했다. 이는 사실상 발병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과 다름없어 환자와 가족들에게는 2년이라는 시간이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불안의 연속이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는 2023년 3월 24일 발표한 ‘제3차 결핵관리종합계획(2023-2027)’을 통해 다제내성 결핵 접촉자에 대한 관리 체계 강화를 핵심 과제로 설정한 바 있다.
그 결과 질병관리청이 「2026 국가결핵관리지침」을 개정함에 따라 상황은 반전됐다. 2026년 1월 1일부터는 다제내성 결핵환자 접촉자 중 잠복결핵감염으로 진단된 경우, ‘레보플록사신(Levofloxacin)’을 이용한 6개월 치료 요법이 공식적으로 권고된다. 더 이상 불안 속에 발병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선제적으로 약을 복용하여 결핵균을 제압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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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가 더 까다로운 ‘다제내성 결핵’, 예방이 최선
다제내성 결핵은 결핵 치료의 핵심 약제인 이소니아지드와 리팜핀에 동시에 내성을 보이는 결핵균에 의해 발생한다. 일반 결핵보다 치료 기간이 훨씬 길고 사용 가능한 약제가 제한적이며, 부작용 발생 빈도 또한 높다. 치료 성공률이 상대적으로 낮아 환자와 의료진 모두에게 난치성 질환으로 꼽힌다.
실제로 통계를 살펴보면 다제내성 결핵 접촉자의 위험성은 더욱 두드러진다. 접촉자 10만 명당 추가 결핵 환자 발생률(2023년 기준)을 비교해보면, 감수성 결핵 접촉자는 185.5명인 반면, 다제내성 결핵 접촉자는 325.6명에 달한다. 내성을 가진 균인 만큼 전파되었을 때의 위험도도 높고, 실제 발병으로 이어지는 비율도 월등히 높은 셈이다.
실제 질병관리청이 2024년 발간한 ‘2023 결핵통계연보’에 따르면, 다제내성 결핵환자의 접촉자 중 발병률은 일반 결핵 접촉자보다 유의미하게 높으며, 특히 내성균 전파로 인한 사회적 손실 비용이 일반 결핵 대비 약 5배 이상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서울아산병원 호흡기내과 심태선 교수는 2023년 3월 23일 열린 ‘제13회 결핵예방의 날’ 기념행사 기고 및 관련 인터뷰에서 “다제내성 결핵은 치료가 매우 까다롭고 성공률이 낮기 때문에, 발병 전 단계인 잠복결핵 상태에서 내성균에 효과적인 퀴놀론계 약제(레보플록사신 등)로 선제 대응하는 것이 임상적으로 가장 효과적인 전략”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김경래 서울 민병원 내과 대표원장 또한 이번 조치에 대해 “다제내성 결핵은 일단 발병하고 나면 치료 과정이 환자에게 엄청난 고통을 주고 사회적 비용도 막대하다”며 “기존에는 마땅한 예방약이 없어 의사로서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상황이었으나, 이번 급여 적용과 지침 개정으로 가장 위험한 불씨를 미리 끌 수 있는 확실한 소화기를 얻게 된 셈”이라고 평가했다.

WHO 권고 반영과 파격적인 비용 지원
이번 정책 변화의 배경에는 세계보건기구(WHO)의 최신 가이드라인이 있다. WHO는 2024년 발표한 결핵 예방 치료 지침을 통해 다제내성 결핵환자 접촉자의 잠복결핵감염 치료법으로 ‘레보플록사신 6개월 복용’을 강력하게 권고했다. 질병관리청은 이러한 국제적 흐름과 관련 학회의 의견을 종합하여, 결핵전문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내 도입을 확정했다.
제도적 뒷받침도 파격적이다. 해당 치료에 필요한 약제비와 진료비는 ‘산정특례’ 대상으로 지정되어 환자의 본인부담금이 ‘0원’이 된다. 잠복결핵감염 치료는 질병이 발병하기 전 단계이므로 건강보험 적용 여부가 환자의 치료 순응도에 큰 영향을 미친다. 정부는 이 비용을 전액 지원함으로써 경제적 장벽을 허물고 적극적인 치료 참여를 유도하겠다는 계획이다.
치료 대상자는 2026년 1월 1일 이후 신고된 다제내성 결핵환자의 접촉자 중 잠복결핵감염 검사(IGRA 등)에서 양성 판정을 받은 사람이다. 이들은 보건소나 지정된 의료기관의 안내에 따라 6개월간 레보플록사신을 복용하게 되며,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비용은 면제된다.
잠복결핵, 치료하면 90% 예방 가능
잠복결핵감염은 결핵균이 몸 안에 들어왔지만 면역계에 의해 억제되어 활동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증상이 없고 타인에게 전파되지도 않지만, 언제든 활동성 결핵으로 발전할 수 있는 상태다. 통상적으로 감염자의 약 10%가 평생에 걸쳐 결핵으로 발병하는데, 그중 5%는 감염 후 2년 이내에, 나머지 5%는 면역력이 떨어지는 시기에 발병한다.
하지만 적기에 잠복결핵감염 치료를 받으면 결핵 발병을 90%까지 예방할 수 있다. 특히 고령자나 면역저하자 등 고위험군의 경우 치료의 효과는 생명을 구하는 것과 직결된다. 이번 조치로 다제내성 결핵이라는 난치성 질환의 공포로부터 접촉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강력한 방패가 마련된 것이다.
임승관 질병관리청장은 “다제내성 결핵은 치료가 어렵고 사회적 부담이 큰 질병으로, 발병 이전 단계인 잠복결핵감염 단계에서 치료를 통한 예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임 청장은 “다제내성 결핵환자와 접촉한 경우 보건소 또는 의료기관 안내에 따라 검사를 받고, 치료가 필요한 경우 의료진과 상담 후 치료에 적극 참여해 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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