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는 O형 피를 좋아한다? 과학이 밝힌 피 흡혈의 비밀
여름밤, 귀에 윙윙거리는 모기 소리에 잠 못 이루는 순간, 우리는 흔히 “나는 O형이라서 모기가 유난히 나만 좋아한다”고 푸념한다. 수십 년간 미신처럼 퍼져온 이 ‘O형 피 선호설’은 수많은 사람에게 여름철 자기 위안이자 방역 실패의 핑계가 됐다. 과연 모기는 헌혈하듯 혈액형을 골라 무는 고차원적인 능력을 갖춘 것일까?
과학자들은 모기가 인간의 혈액형을 선별적으로 인식하는지에 대해 오랫동안 의문을 던져왔다. 만약 혈액형이 모기 유인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지 않는다면, 유독 특정인에게만 모기가 끈질기게 달려드는 그 실체는 무엇일까?

O형 선호설, 과학적 지지 기반은 취약했다
일부 초기 연구에서 O형 혈액형이 다른 혈액형보다 모기에게 더 매력적일 수 있다는 결과가 도출된 적은 있다. 이는 O형 적혈구 표면에 발현되는 항원 구조의 차이 때문으로 추정됐다. 그러나 이후 발표된 여러 심층적인 연구들은 이 가설을 뒷받침할 만한 강력한 증거를 제공하지 못했다.
오히려 최근의 연구 결과는 모기가 인간을 선택하는 메커니즘이 단순히 혈액형 항원 반응 수준에 그치지 않고, 훨씬 더 복잡하고 정교한 화학적 신호에 기반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즉, 모기에게 흡혈 대상의 혈액형은 부차적인 요소일 뿐, 그들의 생존과 번식에 직결된 핵심적인 요소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 통념은 대중적인 오해로 굳어졌을 뿐, 과학계에서는 이미 파기 단계에 접어들었다.
인류 최악의 킬러 모기가 매년 수십만 명을 죽이는 이유
1순위 타깃 시그널: 이산화탄소와 호흡량
모기가 인간을 찾는 데 사용하는 가장 중요한 지표는 다름 아닌 이산화탄소(CO₂)다. 모기는 최대 30m 거리에서도 사람이 내뿜는 이산화탄소 plume(기둥 또는 구름)을 감지할 수 있는 놀라운 후각 수용체를 가졌다. 이산화탄소는 모든 포유류의 호흡 과정에서 발생하며, 모기에게 ‘여기에 따뜻한 피를 가진 숙주가 있다’는 가장 명확한 신호로 작용한다.
2020년 7월 6일 YTN ‘슬기로운 라디오생활’과의 인터뷰에서 고신대학교 보건환경학부 이동규 교수는 “모기는 20m 밖에서도 이산화탄소 농도가 짙은 쪽을 향해 거슬러 올라가는 습성이 있다”며 “대사량이 많은 비만인이나 임신부, 술을 마신 사람이 모기에 더 잘 물리는 것은 그들이 배출하는 이산화탄소 양이 일반인보다 월등히 많기 때문”이라고 과학적 근거를 제시했다.
특히 성인에 비해 대사율이 높거나 호흡이 가쁜 사람, 혹은 임신한 여성은 일반인보다 더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이들은 혈액형과 무관하게 모기의 1순위 타깃이 됐다. 모기가 밤에 자는 사람의 얼굴 주변에 모이는 것도,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가장 많은 곳이 바로 얼굴과 머리 부근이기 때문이다. 이산화탄소 농도의 미묘한 차이는 모기가 수많은 사람 중 특정 한 명을 정확히 짚어내는 초기 관문에 해당한다.

피부 미생물과 체취, 모기의 섬세한 후각을 자극하다
모기가 이산화탄소를 통해 숙주의 존재를 확인했다면, 가까이 접근했을 때 최종적으로 흡혈 대상을 결정하는 요소는 ‘체취’다. 이 체취는 단순히 땀 냄새에 그치지 않고, 피부 표면에 서식하는 미생물들이 땀 속의 유기물을 분해하며 만들어내는 수백 가지 화학물질의 복합체다. 그중에서도 특히 ‘카르복실산(Carboxylic acids)’이 핵심이다.
2022년 10월 18일 세계적 권위지 ‘셀(Cell)’에 게재된 미국 록펠러 대학교 레슬리 보설(Leslie Vosshall) 교수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피부에서 카르복실산을 많이 생성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모기를 유인하는 정도가 최대 100배까지 높게 나타났다. 젖산(Lactic acid)이나 암모니아 역시 모기를 강력하게 유인하는 보조 성분으로 알려졌다.
젖산은 운동 후 땀을 흘리거나 체온이 상승할 때 다량 배출된다. 사람마다 피부 미생물의 종류와 분포가 다르기 때문에, 분해 산물의 구성도 모두 달라진다. 어떤 사람은 모기가 선호하는 특정 냄새 분자를 유난히 많이 생성하며, 이것이 바로 혈액형과 무관하게 ‘모기에 잘 물리는 사람’으로 인식되는 진짜 이유다.
모기 유인 복합 신호: 체온과 움직임
이산화탄소와 체취 외에도 체온과 움직임 또한 모기에게 중요한 신호로 작용한다. 모기는 열을 감지하는 감각기관을 통해 따뜻한 피가 흐르는 곳, 즉 체온이 높은 곳을 정확히 찾아낸다. 발열량이 높은 사람이나, 격렬한 운동 후 체온이 오른 상태의 사람은 모기의 열 감지 능력을 자극하기 쉽다. 또한 모기는 움직이는 물체에 반응하는 시각적 감각도 활용한다. 어두운색 옷을 입거나 움직임이 많은 상태는 모기의 시야에 잘 포착되어 공격 대상이 될 확률을 높인다.
결국 모기의 흡혈 결정은 혈액형이라는 단일 요소가 아닌, 이산화탄소 배출량, 땀의 화학 성분, 피부 미생물 생태계, 체온 등 수많은 요소가 결합된 복합적인 신호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 과학자들의 일관된 분석이다.
2023년 6월 24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도 이동규 교수는 “땀 속에 섞인 젖산이나 아미노산 냄새는 모기가 아주 좋아하는 유인제”라며 “여름철 모기를 피하는 최선의 방법은 혈액형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운동 후 즉시 땀을 씻어내고 대사량을 낮추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과학적 이해를 통한 모기 퇴치 전략의 전환
모기가 혈액형이 아닌 체취와 이산화탄소에 반응한다는 사실은 우리가 모기 퇴치 전략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함을 의미한다. 단순한 방충망 설치나 살충제 사용 뿐만 아니라, 개인의 체질과 환경을 고려한 맞춤형 방역이 필요하다. 땀을 흘린 후에는 즉시 깨끗하게 씻어 피부 미생물이 분해할 유기물과 젖산을 제거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또한, 술을 마시거나 격렬한 활동을 통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일시적으로 증가하는 상황을 피하거나, 이러한 상황에서는 더욱 강력한 방어 조치를 취해야 한다.
향후 모기 연구는 모기가 선호하는 특정 냄새 수용체를 차단하는 개인화된 방충제 개발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통념을 깨고 모기의 과학적 실체를 이해함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여름밤의 평화를 되찾을 수 있는 실질적인 해법을 찾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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