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돈 주고 고친 차”…자기차량손해보험 자기부담금 청구권, 제3자 과실분 청구 길 열렸다
고속도로에서 차선 변경 중 발생한 경미한 접촉사고. 운전자 A씨는 자신의 차량 수리비 200만 원 중 30만 원을 자기부담금으로 먼저 지불하고 자차보험 처리를 했다. 이후 상대방 운전자의 과실이 70%로 확정되자 A씨는 상대방 보험사에 “내가 낸 30만 원 중 70%인 21만 원을 돌려달라”고 청구했지만, 상대방 보험사는 난색을 표했다. 보험금 전액을 지급한 자차 보험사만이 상대방에게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이처럼 쌍방과실 교통사고에서 자기차량손해보험(자차보험)에 가입한 운전자가 자신이 부담한 자기부담금 상당액을 상대방(제3자)에게 청구할 수 있는지 여부를 두고 보험사와 피보험자 간의 오랜 법적 다툼이 이어져 왔다.
대법원이 1월 29일, 이 딜레마에 종지부를 찍는 중요한 판결을 내놓으며 보험자대위권과 피보험자의 손해배상청구권 범위를 명확히 규정해 주목받고 있다.

쌍방과실 사고 속 ‘자기부담금’의 딜레마
사건의 원고들은 자기차량손해보험 계약을 체결한 피보험자로서 상대차량 운전자와 과실이 경합하는 교통사고를 겪었다. 원고들은 자차보험사로부터 전체 손해액에서 약관상 자기부담금을 공제한 금액을 보험금으로 지급받았다. 문제는 이 자기부담금 상당액이었다. 원고들은 이 금액이 ‘보험금으로 전보되지 않고 남은 손해’라고 주장하며, 상대차량 운전자의 보험자(피고들)에게 자기부담금 전부 또는 과실비율에 따라 안분한 금액의 배상을 요구하며 소를 제기했다. 원심 법원은 원고들이 스스로 자기부담금 약정을 체결했으므로, 이 금액은 약정에 따라 피보험자가 부담해야 하는 금액일 뿐 ‘전보되지 않고 남은 손해’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해 원고들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보험사가 피보험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할 때 자기부담금을 먼저 공제하는 ‘선처리 방식’을 택했을 경우, 피보험자가 제3자를 상대로 공제된 자기부담금 상당액의 지급을 구할 수 있는지 여부였다. 만약 피보험자의 청구권이 인정되지 않는다면, 제3자는 자신의 과실비율에 해당하는 손해배상 책임 중 일부를 면탈하는 결과가 발생할 수 있었다.
대법원의 새로운 판단: 피보험자의 손해배상청구권 범위
대법원 제1부(주심 신숙희 대법관)는 원심의 판단을 파기하며 상법 제682조 제1항의 보험자대위 규정 취지와 자기부담금 약정의 성격을 종합적으로 분석했다. 대법원은 보험자대위는 피보험자의 이중 이득을 방지하고 위험을 분배하려는 목적에서 인정되지만, 이는 보험자가 지급한 보험금의 한도 내에서만 적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험자가 지급하지 않은 자기부담금 상당액까지 포함하여 보험금을 지급한 것으로 의제하여 대위권을 행사할 수는 없다는 해석이다.
판결은 자기부담금 약정을 ‘피보험자와 보험자 사이에 일정 금액을 보험자가 부담하지 않고 피보험자가 부담하기로 한 약정’으로 해석했다. 따라서 자기차량손해보험 약정상 자기부담금 중 피보험자 본인의 책임비율에 상응하는 금액 부분은 피보험자가 최종적으로 부담하는 것이 맞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제3자에게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명확히 선을 그었다. 이는 피보험자가 보험계약에서 약정한 것 이상의 이익을 누리게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이재권 유니온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는 “이번 대법원 판결은 보험자대위권이 보험자가 지급한 보험금의 한도 내에서만 적용된다는 상법 제682조의 취지를 명확히 했다”며, “피보험자가 자기부담금 중 제3자 과실분을 돌려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려 소비자 권익 보호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보험자 대위권과 자기부담금의 안분 해석
그러나 대법원은 자기부담금 중 제3자의 책임비율에 상응하는 금액 부분은 사정이 다르다고 봤다. 이 부분까지 피보험자가 최종적으로 부담해야 할 이유가 없으며, 이 손해에 대해 피보험자의 청구권을 인정하더라도 보험자에게 부당하게 부담이 전가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결과적으로 대법원은 과실상계 후 확정된 제3자의 손해배상책임액에 대하여, 보험자와 피보험자가 각각 부담한 보험금과 자기부담금의 비율에 비례하여 안분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결론지었다.
구체적으로, 보험자는 지급한 보험금에 대하여 제3자의 책임비율에 상응하는 금액의 범위 내에서만 피보험자의 권리를 대위할 수 있게 됐다. 반면 피보험자는 자신이 부담한 자기부담금에 대하여 제3자의 책임비율에 상응하는 금액 상당의 손해 배상을 제3자에게 별도로 청구할 수 있게 됐다. 이는 피보험자의 전체 손해액 중 보험금으로 전보되지 않고 남은 손해액을 제3자의 손해배상책임액과 비교하여 권리를 판단하도록 한 기존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2014다46211)과는 사안을 달리하지만, 전보되지 않은 손해에 대한 피보험자의 권리를 보호한다는 점에서 맥을 같이 한다.
자동차보험 업계와 소비자에게 미치는 영향
이번 판결은 쌍방과실 교통사고에서 자차보험 처리 후 발생하는 자기부담금 정산 문제에 대한 법적 기준을 명확히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보험사가 선처리 방식으로 보험금을 지급한 경우, 피보험자의 권리가 명확히 보장됨으로써 제3자의 배상 책임 회피를 막을 수 있게 됐다. 피보험자가 제3자로부터 자신의 과실이 아닌 부분에 대한 자기부담금을 돌려받을 수 있게 됨에 따라 소비자 권익이 크게 향상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선처리 방식의 경우 피보험자가 부담한 자기부담금에 관하여 피보험자와 보험자 사이의 정산 등에 관한 내용을 보험약관에 미리 명확하게 기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는 보험자에게 명시·설명의무의 대상임을 상기시킨 것으로, 향후 보험사들이 약관을 개선하고 관련 정산 시스템을 구축해야 할 과제를 안겨준다. 보험사는 지급하지 않은 자기부담금 부분에 대한 피보험자의 제3자 청구권을 인정하면서도, 보험자대위권 행사를 효율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하는 이중 과제를 안게 됐다.
결론: 자기부담금 정산의 명확화와 소비자 권익 보호
2026년 1월 29일 선고된 대법원 판결(2022다287284)은 복잡했던 자동차보험 정산 문제를 단순한 ‘계약상의 부담’이 아닌 ‘전보되지 않은 손해’의 관점에서 재해석했다. 이를 통해 자기차량손해보험 자기부담금 청구권을 둘러싼 법적 분쟁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피보험자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호하고, 제3자가 자신의 책임 범위를 회피하는 불합리를 해소했다. 향후 보험 업계는 대법원의 취지에 따라 약관을 정비하고 정산 절차를 투명하게 운영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조치는 자동차 사고를 겪은 소비자가 불필요한 법적 다툼 없이 신속하게 손해를 전보받고, 보험 계약의 신뢰도를 높이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진환 법무법인 지금 변호사는 “대법원이 선처리 방식의 경우 보험약관에 자기부담금 정산 내용을 명확히 기재해야 한다고 지적한 만큼, 보험업계는 즉각적인 약관 개선 작업이 필요하다”며, “보험사는 피보험자의 제3자 청구권 인정과 동시에 효율적인 보험자대위권 행사를 위한 정산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