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손 당연직 이사’ 규정에도 종손 지위는 양도 불가… 대법원, “가족 합의로 종손 지위 승계 안 돼” 법리 재확인
16일 대법원 제1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사건번호 2025마8934 가처분이의 사건에 대해 원심결정을 파기하고 채권자의 가처분 신청을 기각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번 판결은 종중 내에서 수십 년간 이어온 ‘종손 지위의 사적 승계’ 관행에 제동을 걸고, 종손이라는 신분이 개인의 합의로 사고팔거나 넘겨줄 수 없는 ‘일신전속적’ 권리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32년 만에 무너진 ‘약속된 종손’의 지위
사건의 발단은 1992년 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씨 △△△파 종회의 종손이었던 망인이 사망하자, 그의 장남의 아들(장손)인 신청외 3과 차남인 채권자 사이에 종손 지위 승계에 관한 합의가 이루어졌다. 1992년 4월 3일 작성된 공정증서에는 “민법 제1008조의3에 의거하여 분묘 수호와 제사 주재 등 종손으로서의 모든 책무를 차남인 채권자가 인수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후 채권자는 약 32년 동안 종중의 종손이자 제사 주재자로 활동해 왔다. 종회 규약상 ‘종손은 당연직 이사’라는 규정에 따라 이사직을 수행했으며, 2022년 정기총회에서도 이사 인준을 받는 등 종중 내부에서 그의 지위는 공고해 보였다. 그러나 2024년 4월 종중이 족보 기준에 따라 새로운 종손을 정하기로 결의하면서 갈등이 표출됐다. 채권자는 자신이 적법한 종손이라며 이사 지위 보전 가처분을 신청했고, 서울고등법원은 과거의 승계 합의가 유효하다며 채권자의 손을 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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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신전속적 신분, 사적 합의의 대상 아님을 명시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종손이란 장자계의 남자 손으로서 적장자손을 의미하며, 이는 일정한 친족 관계의 존재에 의해 당연히 인정되는 신분적 지위”라고 정의했다. 이어 “종손의 지위는 제사 주재자와 달리 양도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일신전속적 성격을 갖는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특히 종중이 장기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거나 별도의 인준 결의를 거쳤다 하더라도, 법적 종손이 아닌 사람이 종손의 지위를 취득할 수는 없다고 못 박았다. 법무법인 지금 김진환 변호사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판결은 종중의 자율권보다 법질서가 정한 신분 관계의 엄격성을 우선시한 것”이라며, “사적 합의가 객관적인 혈연 기반의 종손 지위를 대체할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고 분석했다.

관행보다 법질서 우선… 종중 분쟁의 새로운 가이드라인
이번 판결은 점차 늘어나는 종중 관련 소송에 중요한 기준이 될 전망이다. 2025년 9월 23일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발간한 ‘2025 사법연감’에 따르면, 2024년 한 해 동안 접수된 가사 사건 제1심은 총 3만 9,966건에 달하며, 이 중 상당수가 상속 및 종중 재산과 연계된 분쟁인 것으로 나타났다. 종전까지는 제사 주재자의 경우 공동상속인 간 합의를 존중해 왔으나, ‘종손’이라는 고유 신분에 대해서는 합의보다 ‘적통’이라는 객관적 사실이 우선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확고한 입장이다.
재판부는 “채권자가 비록 장기간 종손 역할을 수행했더라도 규약상 당연직 이사가 될 수 있는 ‘종손’의 지위 자체를 적법하게 승계했다고 볼 수 없다”며, 이 사건 가처분 신청의 피보전권리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결국 30여 년을 이어온 채권자의 종손 행세는 법적 근거가 없는 것으로 결론 났다.
현대 사회에서 종중의 권리 보호와 평등 가치
한편, 이번 판결에 앞서 대법원은 2024년 12월 24일 선고된 2024다274398 판결에서 종중 회장을 종손으로만 제한하는 규약이 무효라고 판결하며 종원의 평등권을 강조한 바 있다. 이번 결정 역시 종손이라는 지위가 갖는 특수성을 인정하면서도, 그 지위의 발생과 승계는 철저히 법리와 혈연의 원칙에 따라야 함을 재확인한 것이다.
김진환 변호사는 “전통적인 종중 관행이 현대 법체계의 일신전속성 원칙과 충돌할 때 어떤 기준을 적용해야 하는지 보여준 사례”라며 “앞으로 종중은 규약 정비 시 종손의 지위와 이사 선임 절차를 법적 원칙에 맞게 구체화해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이번 대법원의 파기자판 결정으로 인해 해당 종중은 족보에 따른 적통 종손을 중심으로 지도부를 재편할 것으로 보인다. 32년 전 작성된 한 장의 공정증서로 바뀐 ‘종가(宗家)의 질서’가 결국 대법원에 의해 제자리로 돌아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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