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찰하지 않은 환자 사망진단서 발급 의사, 유학 중인 손녀의 요청으로 영문 사망진단서 발급한 대학병원 의사, 의료법 위반 혐의 벗어
대전의 한 대학병원 의사가 직접 진찰하지 않은 환자의 영문 사망진단서를 발급해 의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으나,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무죄 판결을 받았다. 특히 이번 판결은 2024년 2월부터 시작된 전공의 이탈 등 의료계 집단행동 장기화로 인해 ‘당직 의사’의 업무 범위와 책임 소재에 대한 현장의 불안감이 고조된 시점이라 더욱 주목된다.
21일 대전 뉴스1은 대전지법 제2-2형사부(재판장 강주리)는 의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대전 소재 대학병원 의사 A씨(46)에 대한 검찰의 항소를 기각하고 원심과 마찬가지로 무죄를 선고했다고 보도했다.

손녀의 급박한 사정에 기존 의료기록 토대로 사망진단서 작성
2019년 6월 29일, A씨는 대전 소재 대학병원에서 사망한 환자 B씨를 직접 진찰하거나 검안하지 않은 상태에서 B씨의 손녀에게 영문판 사망진단서를 작성해 발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B씨의 손녀는 해외 유학 중인 학교에 조부모의 사망진단서를 제출해야 한다며 주말 당직 의사였던 A씨에게 영문 버전으로 발급을 요청했다.
A씨는 처음에는 주치의가 휴진 중이라는 이유로 발급이 불가능하다고 거절했으나, 손녀가 다음 주에 바로 출국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하자 기존 진료기록과 검사 결과를 종합해 사망진단서를 작성해주었다.
의료법상 ‘부득이한 사유’ 해석 쟁점으로 부각
구 의료법에 따르면 환자를 직접 진찰한 의사가 아닐 경우에는 진단서나 검안서 등을 작성해 환자나 환자 가족에게 교부할 수 없다. 다만, 직접 진찰한 의사가 ‘부득이한 사유’로 진단서 등을 발급할 수 없을 때는 같은 의료기관에 종사하는 다른 의사가 작성할 수 있다는 예외 조항이 있다.
검찰은 주치의가 휴무로 출근하지 않은 상황은 의료법상 예외 조항인 ‘부득이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러한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대한의사협회가 2022년 12월 발간한 ‘진단서 작성 지침(개정증보판)’에 따르면, 의료법상 ‘부득이한 사유’에는 주치의의 사망·질병 등뿐만 아니라 휴가나 휴진 등 물리적으로 발급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환자 측의 긴급한 필요가 있는 경우까지 포함된다고 해석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역시 과거 유권해석을 통해 “진료기록부에 의해 사망 사실이 확인된다면 다른 의사가 발급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

의료기록 종합해 작성한 진단서, 정확성과 신뢰성 인정받아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전문의로서 부득이하게 영문판 사망진단서를 작성·교부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사인을 허위로 기재할 사정이 보이지 않고, 진단서의 정확성과 신뢰성도 담보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 역시 “피고인이 망인의 의료기록 전부를 종합해 사인을 기재했으며, 진단서의 정확성과 신뢰성이 담보됐다”며 검사의 항소를 기각했다.
이에 대해 최청희 법무법인 C&E 대표변호사는 본지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사망진단서 발급 주체를 주치의로만 한정하려는 검찰의 시각은 현대 의료의 협진 체계와 24시간 당직 시스템의 현실을 간과한 것”이라며 “진료 기록이 데이터화되어 공유되는 대학병원 시스템에서 ‘부득이한 사유’는 환자 측의 절박한 사정까지 고려하여 유연하게 해석되어야 법의 본래 취지인 국민 편익에 부합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박형욱 단국대 의대 인문사회의학교실 교수(대한의학회 부회장)는 2024년 5월 10일 청년의사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의료 현장에서 사망진단서 발급은 유가족의 행정적 권리 보장을 위한 필수적인 절차”라며 “진료 기록이 완비된 상태에서 다른 의사가 이를 확인하고 발급하는 것을 법이 지나치게 엄격하게 규제할 경우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의사의 진단서 관련 법적 책임과 예외 규정
현행 의료법 제17조 또한 원칙적으로 직접 진찰하거나 검안한 의사가 아니면 진단서, 검안서, 증명서를 작성해 환자 또는 가족에게 교부할 수 없도록 명시하고 있다. 단, 예외적으로 진료 중이던 환자가 최종 진료 시부터 48시간 이내에 사망한 경우나, 직접 진찰한 의사가 부득이한 사유로 진단서를 발급할 수 없을 때는 같은 의료기관 소속 다른 의사가 진료기록을 바탕으로 진단서를 발급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대법원 역시 2024년 1월, 환자를 직접 진찰하지 않은 의사가 진단서를 발급한 유사 사건(2023도13161 등 참조)에서 “진단서의 기재 내용이 객관적 진실에 부합하고, 발급 절차에 합리적 사유가 있다면 의료법 위반의 고의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린 바 있어, 향후 하급심 판결의 가이드라인이 될 전망이다.
이번 판결은 의료 현장에서 부득이한 상황에서 이루어진 다른 의사의 사망진단서 발급이 적법할 수 있다는 법원의 판단을 보여주는 사례로, 의료법의 ‘부득이한 사유’ 해석에 대한 중요한 판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2025년 현재 전문의 중심 병원으로의 전환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교수와 전문의들의 행정 부담을 경감하고 법적 안정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현장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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