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5년 소아마비 백신 성공 발표 직후 발생한 커터 사건의 전말과 피해 규모
1955년 4월 12일, 미국 미시간 대학교의 토마스 프랜시스 주니어 박사는 조너스 소크 박사가 개발한 소아마비 백신의 대규모 임상 시험 결과를 공식 발표했다. 1955년 4월 12일 미시간 대학교 랙햄 강당에서 발표된 ‘소아마비 백신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해당 백신은 1형 바이러스에 60~70%, 2·3형 바이러스에 90% 이상의 유효성을 기록하여 평균 80~90%의 방어력을 입증하여 전 세계적인 관심을 받았다.
미국 보건당국은 발표 직후 커터 연구소(Cutter Laboratories)를 포함한 5개 제약사에 백신 제조 및 판매 승인을 내렸다. 그러나 백신 보급이 시작된 지 불과 2주 만에 접종자들 사이에서 마비 증상이 보고되기 시작하며 대규모 의료 사고로 기록된 ‘커터 사건’이 발생했다.

커터 연구소 제조 공정의 기술적 결함과 원인
조사 결과 커터 연구소가 생산한 백신 중 일부 배치에서 소아마비 바이러스가 완전히 사멸되지 않은 상태로 포함됐음이 확인됐다. 소크 백신은 포르말린을 이용해 바이러스를 불활성화하는 공정을 거친다. 하지만 커터 연구소의 생산 공정에서는 바이러스 입자가 서로 뭉치는 현상이 발생했고, 뭉쳐진 입자 내부의 바이러스는 포르말린과 충분히 접촉하지 않아 살아있는 상태로 유지됐다.
이는 제조 공정상의 여과 단계가 미흡했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당시 기술적 한계로 인해 불활성화 과정에서의 미세한 오류가 생바이러스의 잔존으로 이어졌고, 이는 접종자들에게 직접적으로 소아마비를 유발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20만 명 노출에 따른 인명 피해 및 역학 조사 결과
미국 공중보건국(USPHS)의 역학 조사에 따르면 커터 연구소의 백신을 접종받은 아동은 1955년 6월 10일 미국 공중보건국(USPHS)이 발표한 공식 역학 보고서에 따르면, 커터 백신에 노출된 아동은 총 204,517명이었으며, 이 중 40,000명이 불완전한 바이러스 불활성화로 인해 경증 소아마비 증상을 보였다. 200명은 영구적인 마비 증상을 보였다. 사망자는 총 10명으로 집계됐다. 특히 접종자뿐만 아니라 그들의 가족과 지역사회 접촉자들에게도 바이러스가 전파되어 2차 감염 사례가 발생했다.
이에 따라 1955년 4월 27일 커터 백신에 대한 회수 명령이 내려졌고, 5월 7일에는 미국 전역의 소아마비 백신 접종 프로그램이 일시 중단됐다. 피해 아동의 대부분은 백신을 접종받은 부위에서부터 마비가 시작되는 특징적인 증상을 보였다.

백신 안전 관리 체계의 제도적 변화와 규제 강화
이 사건은 미국 내 백신 규제 체계의 전면적인 개편을 불러왔다. 기존의 국립보건원(NIH) 산하 생물학적 통제실은 감독 권한의 한계를 드러냈으며, 이후 생물학적 기준국(DBS)이 신설되어 제조 공정에 대한 엄격한 감시가 시작됐다. 모든 백신 배치는 출하 전 국가의 검정을 거쳐야 하는 의무가 부여됐다.
또한 법적으로는 ‘갓스당커 대 커터 연구소’ 판결을 통해 제약사가 과실 여부와 상관없이 제품의 결함에 대해 책임을 지는 엄격 책임 원칙이 적용되는 계기가 됐다. 이는 향후 제약 산업 전반의 품질 관리 기준을 강화하는 결정적인 전환점이 됐다.
소아마비 백신 보급 재개와 후속 안전 조치
보건당국은 제조 공정을 보완하고 여과 과정을 강화한 뒤 1955년 가을부터 백신 접종을 재개했다. 커터 연구소를 제외한 나머지 제약사들은 강화된 안전 기준에 따라 생산을 지속했다. 당시 미국 보건교육복지부(HEW) 초대 장관이었던 오베타 컬프 하비(Oveta Culp Hobby)는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이후 미국 내 소아마비 발생률은 급격히 감소했으나, 커터 사건은 백신 제조 과정에서의 국가적 감시와 품질 관리의 중요성을 확인시킨 사례로 남았다.
현재까지도 이 사건은 대규모 백신 접종 사업에서 발생할 수 있는 공정 오류의 대표적 사례로 인용되고 있다. 정부는 이후 백신 부상 보상 프로그램(VICP) 등을 통해 백신 부작용에 대한 국가적 책임 체계를 구축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