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육부, 2026학년도 의대 모집인원 증원 철회, 전날 의총협 건의 수용해 내년도 의대 정원 3058명으로 확정
교육부가 17일 2026학년도 의대 모집인원을 증원 이전 수준인 3058명으로 확정하면서 사실상 의대생과 의료계의 실력 행사에 백기를 든 모양새가 됐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정부서울청사에서 “의대가 있는 대학 총장과 학장 의사를 존중해 2026학년도 의대 모집인원을 증원 전인 2024학년도 정원과 동일하게 변경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전날 전국 40대 의대 총장 모임인 ‘의과대학 선진화를 위한 총장협의회'(의총협)가 정부에 한 건의를 형식적으로 수용한 것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의대생들의 집단행동과 의료계 압박에 정부가 양보한 것으로 해석된다.

교육부 원칙 파기… 복귀율 25.9%에도 정원 동결 결정
지난달 7일 이 부총리와 의총협, 의대 학장 단체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는 의대생 ‘전원 복귀’를 조건으로 내년도 의대 모집 정원을 증원 이전 수준으로 동결하기로 했다. 그러나 17일 현재 총 7개 학년의 평균 수업 참여율은 25.9%에 불과한 상황이다.
본과생은 29%, 예과는 22.2%로 학교별 수업 참여율은 한 자릿수에서 67%까지 편차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증원되지 않은 서울 지역 대학의 의대생 복귀율은 40%인 반면, 증원이 많이 된 지방대학은 평균 22%에 그쳤다.
결국 교육부는 스스로 세운 원칙을 뒤집으며 대학입시 정책의 안정성을 훼손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정부를 믿고 복귀한 학생에 대한 신뢰를 지키기 위한 선택”이라며 “강경파는 20~30%고 40%는 눈치를 보고 있다. 이번 발표가 명분이 돼 돌아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락가락 정책 행보… 의대 학사 운영 관련 입장 번복 반복
교육부는 그동안 의대 학사 운영과 관련해 여러 차례 입장을 번복했다. 의대 증원에 반발한 의대생들이 휴학계를 제출하자 초기에는 동맹 휴학을 승인하지 말라고 대학들을 압박했으나, 의대생들이 계속 수업을 거부하자 학칙을 개정해 F 학점을 받아도 유급되지 않게 했다.
또한 지난해 10월에는 2025학년도 복귀를 약속하면 휴학을 승인해 주겠다는 ‘조건부 휴학 승인’ 방침을 발표했다가 반발이 이어지자 의대생 휴학계 승인 여부를 대학 자율에 맡기겠다고 입장을 바꿨다. 이러한 정부의 일관성 없는 행보가 의대생들의 수업 거부를 더욱 강화시켰다는 평가가 나온다.
의대생 수업 거부 장기화 우려… “새 정부 들어설 때까지” 분위기 지배적
정부의 내년도 의대 증원 철회 확정에도 의대생의 집단 수업 거부는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의대생 사이에서는 “새 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버텨 보자”는 분위기가 우세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경우 이달 말부터 의대 32곳에서 본과 4학년의 유급이 결정되는 것을 시작으로 1학기 말까지 출석일수가 부족한 전체 학년의 유급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내년도 예과 1학년은 24·25·26학번 3개 학년이 동시에 수업을 듣는 ‘트리플링’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대학들 우려 증폭… “1년 만에 증원 백지화” 가능성
각 대학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 부총리는 “2027학년도 이후 정원은 의사인력 수급추계위원회에서 정하기로 했다”고 밝혔지만, 내년도 모집인원이 조정된 상황에서 2027학년도 이후에 다시 확대된 정원만큼 선발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 대학 관계자는 “국민 대다수가 증원에 호의적이라 하더라도 새 정부가 정치적 부담을 갖고 의정 갈등을 돌파하려고 하겠느냐”고 우려를 표했다.
특히 증원을 전제로 새로운 의대 건물을 짓고 임상실습 공간 마련 및 교수 충원을 위해 투자를 시작한 대학들은 계획이 모두 무산될까 봐 불안해하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이미 설계가 들어간 국립대가 많은데 최대한 예산을 확보하겠지만 매년 2000명 증원된다는 전제 하에 세웠던 계획대로 투자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 지원을 받는 국립대도 사정이 이런 상황에서 대출로 기반 시설 등을 투자한 사립대는 더욱 심각한 난관에 직면했다. 이러한 우려를 인식한 듯 의총협은 교육부에 “선진화된 의학교육을 위해 국립, 사립대를 막론하고 정부의 지속적인 행정·재정적 지원을 요청한다”고 건의했다.
복지부 “안타깝다” 반응… 부처 간 이견 표면화
복지부는 교육부의 증원 철회 결정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복지부는 “의대 학사일정이 완전히 정상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교육여건을 감안한 조치라고 생각되나 3월 초 발표한 2026년 의대 모집인원 결정 원칙을 바꾸게 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교육부와 복지부가 의대 정원을 두고 의견 차이를 보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월 이 부총리는 전국 의대 학장단과 만나 의대생이 복귀한다면 3058명을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비쳤으나, 복지부는 이에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지난달 6일에도 이 부총리가 의대 모집인원 축소 필요성을 언급하자 조규홍 복지부 장관과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은 의료개혁 후퇴 등을 이유로 우려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의협 “만시지탄” 평가… 20일 전국의사궐기대회 강행
대한의사협회(의협)는 교육부의 결정에 대해 “만시지탄이나 이제라도 정상으로 돌아가는 한 걸음을 내디딘 것으로 평가한다”고 밝혔다. 의협은 “교육 여건을 고려하지 않은 무리한 증원정책은 잘못된 것이었다. 그 잘못을 고쳐 다시 이야기하자고 1년을 넘게 이야기했는데, 여기까지 오는 것이 왜 이리 힘들었는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의협은 20일 서울 중구 숭례문 일대에서 ‘의료정상화를 위한 전국의사궐기대회’를 강행할 계획이며,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의개특위) 운영 중단 등 의료개혁 추진을 전면 철회할 것을 촉구했다.
의협은 “현재 정부는 이러한 사업을 지속할 동력이 부족하다. 지금은 의료개혁 과제를 추진하는 것을 멈추고 추후 의료계와 지속가능한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성근 의협 대변인은 “다음 정부가 들어서면 의료개혁은 언제든지 뒤집힐 수 있다”며 “당장 의개특위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복지부와 의개특위는 전날 공청회를 열고 ‘포괄 2차 종합병원’에 관한 구체적인 지원안을 발표하며 개혁 의지를 지속하고 있다. 의협은 “새 정부가 들어서기 전에 지금의 문제를 해결하고 정상으로 돌아가는 발판이 마련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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