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 만에 위탁 관리료 폐지, 중소병원 숨통 더 조인다.
환자의 혈액이나 조직을 채취하여 질병을 진단하는 검체검사는 현대 의료의 핵심적인 축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위탁과 수탁의 관계는 오랜 시간 동안 불투명한 할인 관행과 과도한 보상 체계라는 구조적 모순 속에서 작동해 왔다. 의료기관이 직접 검사를 수행하지 않고 외부 전문 기관에 의뢰하는 위·수탁 제도는 효율성을 목적으로 도입되었으나, 실제 현장에서는 검사료 할인을 통한 부당한 이윤 추구와 질 관리 저하라는 부작용을 낳았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현재 의료계는 1999년 이후 27년 만에 단행되는 제도 개편이라는 거대한 변곡점에 직면해 있다.
정부는 현재 과보상된 검체검사 수가를 단계적으로 조정하고, 위·수탁 기관 간의 보상 수준을 명확히 구분하는 로드맵을 발표했다. 이는 그간 의료 현장에서 공공연하게 이루어지던 검사료 할인 행위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불필요한 검사 유인을 축소하여 건강보험 재정의 건전성을 확보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로 풀이된다. 그러나 특히 중소병원이 처한 경영난과 맞물려 이번 개편이 의료 생태계에 미칠 파장은 실로 막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27년 만의 대수술과 위·수탁 보상 비율의 강제 획정
정부가 발표한 개편안의 핵심은 검사료 보상을 위탁 기관 35%, 수탁 기관 65% 수준으로 명확히 구분하여 지급하는 것. 기존에는 위탁 기관이 수탁 기관으로부터 검사료의 상당 부분을 할인받는 방식으로 이득을 취해왔으나, 앞으로는 이러한 관행이 원천적으로 봉쇄된다. 현재 진단검사의 경우 평균 150% 이상 과보상된 수가를 낮추는 1단계 조정이 시행되며, 이 과정에서 병원이 고정적으로 받아왔던 10%의 위탁검사관리료는 폐지된다.
대신 도입되는 ‘조건부 보상’ 체계는 의료 질 제고와 연계된다. 위탁 기관에는 검사료의 25%를 ‘위탁검사 의뢰·관리료’로 고정 지급하고, 수탁 기관에는 45%를 ‘수탁 검사료’로 배정하되 나머지 비율은 질 관리 수준에 따라 차등 보상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숫자의 조정의 차원이 아니라 의료 현장의 권력 구조를 재편할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 대형 수탁 기관에 검사 물량을 몰아주며 리베이트(?) 성격의 할인을 받아왔던 의료기관들은 당장 수익성 악화라는 직격탄을 맞게 됐다. 특히 자체적인 검사 역량이 부족해 외부 의뢰에 전적으로 의존해온 중소병원들은 생존을 위한 대안 마련에 비상이 걸린 상태다.
조건부 보상 도입과 질 관리 체계의 공적 통제 강화
새롭게 도입되는 조건부 보상은 위탁 10%, 수탁 20% 이내로 설정되어 향후 2년간 한시적으로 적용된 후 재평가를 받게 된다. 이는 의료기관이 단순히 검사를 외부에 맡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임상 결과의 분석과 환자 안전 관리에 얼마나 기여하는지를 수치화하여 보상하겠다는 전략이다. 특히 병리검사의 경우 과보상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아 위탁검사관리료만 폐지하고 위탁 10%, 수탁 80%의 비율을 설정하는 등 검사 종별 특성을 고려한 세분화된 접근이 이루어졌다.
정부는 현행 민간 학회 중심의 수탁기관 인증과 제재 시스템을 공적 관리 체계로 편입시키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이는 지난해 발생한 검체 변경 사고와 같은 치명적인 안전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다. 수탁검사의 전 주기 관리뿐만 아니라 환자 안전,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인증 기준을 강화하고, 재수탁에 대한 관리 및 제재 규정을 명확히 하여 검사의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공적 개입의 강화는 그동안 자율성이라는 명목 아래 방치되었던 수탁 검사 시장의 무질서를 바로잡으려는 시도로 읽힌다.

2028년 2단계 수가 조정이 예고하는 중소병원의 몰락 위기
이번 개편은 시작에 불과하다. 정부는 2028년 하반기로 예정된 2단계 수가 조정을 통해 과보상된 수가를 현재의 150% 수준에서 110% 수준까지 추가로 인하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위·수탁 기관에 대한 전면적인 비용 분석이 진행될 예정이며, 그 결과에 따라 보상 수준은 더욱 타이트하게 조정될 것으로 보인다.
대한병원장협의회 이성민 정책이사는 “중소병원이 대형 수탁 기관과의 가격 협상력에서 밀리는 현재의 상황에서 수가까지 인하될 경우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폐업하는 병원이 속출할 것”이라며 “정부의 세밀한 지원책이 병행되지 않는다면 의료 전달 체계의 붕괴가 우려된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중소병원계에서는 이번 제도 개편이 대형 수탁 전문 수탁기관과 상급종합병원 위주의 정책이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위탁검사관리료의 폐지는 중소병원의 주요 수익원 중 하나를 제거하는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조건부 보상 역시 평가 기준을 충족하기 위한 추가적인 인력과 장비 투자가 어려운 중소병원 입장에서는 그림의 떡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결국 검체검사 위·수탁 제도의 전면 개편은 의료 질 향상과 재정 건전성 확보라는 명분 뒤에, 한계 상황에 다다른 중소병원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구조적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 정부는 위탁 기관인 의원급에 대해 임상 결과 분석과 관리 강화를 위한 보상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으나, 이것이 실제 경영 현장에서 얼마나 실효성 있게 작동할지는 미지수다. 현재 의료 현장은 27년 만에 찾아온 이 거대한 파도가 의료의 질을 높이는 혁신이 될지, 아니면 중소병원의 몰락을 가속화하는 단초가 될지 숨을 죽이며 지켜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