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탈모 치료 지원의 함정, 국민의 생명줄인 건강보험 재정이 위태롭다
국민건강보험은 대한민국 의료 체계를 지탱하는 최후의 보루이자, 모든 국민이 질병의 공포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도록 설계된 사회적 안전망이다. 이 시스템의 핵심은 한정된 재원을 가장 시급하고 중대한 질환에 집중하여 국민의 생명권을 보장하는 데 있다.
그러나 최근 정치권을 중심으로 논의되는 특정 정책들이 이 근간을 흔들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특히 청년층의 표심을 겨냥한 선심성 공약이 건강보험의 본질적 가치를 훼손하고 재정 건전성을 위협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개혁신당 천하람 의원은 25일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정부가 검토 중인 청년 탈모 치료 건강보험 지원책에 대해 ‘국민 건강보험 재정부터 탈모될 판’이라며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천 의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해당 정책은 최소한의 예산 추계조차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추진되고 있음이 드러났다. 이는 국가 재정을 책임지는 정부가 구체적인 견적서도 없이 철거부터 시작하는 무면허 공사를 강행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지적이다.
청년들의 탈모 고민이 가볍다는 뜻은 아니나, 국가 재정의 우선순위라는 관점에서 볼 때 이는 심각한 자원 배분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정치적 수사로 포장된 포퓰리즘과 텅 빈 재정 견적서
천 의원은 이번 정책이 이재명 정부가 지난 대선 당시 활용했던 공약을 다시 꺼내 든 것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특히 2030세대의 지지율 정체를 타개하기 위해 건강보험 재정을 정치적 쌈짓돈처럼 활용하려 한다는 비판이다. 의원실에서 확인 결과, 정책 추진을 위한 기초적인 데이터 분석이나 향후 발생할 재정 소요 규모에 대한 시뮬레이션조차 전무했다. 이는 정책의 타당성보다는 정치적 이득을 우선시한 결과로 보인다.
현재 시중에는 탈모 치료제의 복제약(카피약)이 널리 보급되어 있어, 월 1~2만 원 수준이면 개인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비용으로 치료가 가능하다. 이를 ‘재정적 재앙’으로 규정하고 국가가 개입하겠다는 논리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오히려 이러한 소액 지원이 수백만 명에게 적용될 경우, 그 총합은 건강보험 재정에 막대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생존을 위협하는 비만, 탈모보다 앞서야 할 의료적 우선순위
의료계에서는 탈모보다 비만 치료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이 훨씬 시급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비만은 단순히 외견상의 문제 차원이 아니라 당뇨병, 고혈압, 심혈관 질환, 그리고 각종 암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명백한 질병이기 때문이다.
대한비만학회는 고위험군 환자를 중심으로 비만치료제의 급여화를 촉구하는 의견서를 정부에 제출했다. 특히 최근 전 세계적으로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GLP-1 계열의 비만치료제인 ‘위고비’나 ‘마운자로’의 경우, 한 달 처방 비용이 30만 원에서 40만 원에 달해 경제적 여건이 어려운 환자들은 치료를 포기하는 실정이다. 초고도비만 환자가 수면무호흡증으로 사망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상황에서, 생명과 직결된 비만 치료는 외면한 채 탈모 치료비 지원을 논의하는 것은 국가 보건 정책의 직무유기라는 비판이다.

글로벌 선진국의 선택, 비만 치료를 공공 의료의 영역으로
해외 주요 선진국들은 이미 비만을 국가가 관리해야 할 중대 질환으로 규정하고 공적 보험 혜택을 확대하는 추세다. 미국은 오는 7월부터 공공의료보험인 메디케어 파트D 수혜자를 대상으로 비만치료제 지원 시범사업을 시작한다. 이를 통해 월 1,000달러가 넘던 약값을 50달러 수준으로 낮춰 환자들의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높였다. 프랑스 역시 지난 15일부터 중증 비만 환자를 대상으로 위고비와 마운자로에 대해 65%의 보험 적용률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동반 질환이 있는 경우 사실상 전액 지원에 가까운 혜택을 받게 된다.
이는 비만 치료가 장기적으로 합병증 발생을 줄여 전체 의료비를 절감하는 데 효과적이라는 경제적 판단이 깔려 있다. 반면 한국은 이러한 과학적 근거보다는 정치적 표심에 따라 건강보험 우선순위가 뒤바뀌고 있다는 것이 의료계의 우려다.
비만대사수술의 경제성과 적응증 확대의 필요성
전문가들은 비만치료제 뿐만 아니라 비만대사수술의 적응증 확대가 경제적으로 더 유리하다고 강조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고가의 비만약을 평생 복용하는 것보다, 수술을 통해 체중을 감량하고 합병증을 예방하는 것이 건강보험 재정 측면에서 훨씬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현재 국내에서는 비만대사수술만이 유일하게 급여권에 들어와 있지만, 그 기준이 지나치게 엄격하여 혜택을 받는 환자가 한정적이다.
의료계는 비만이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심화시키는 질병이라고 지적한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이들은 고가의 약물로 건강을 관리하지만, 서민들은 비만으로 인한 질병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진정한 공정과 상식을 추구한다면, 국가 재정은 이처럼 생존의 기로에 선 이들을 위해 먼저 쓰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합리적 자원 배분
건강보험 재정은 무한하지 않다.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의료 수요는 폭증하고 있으며, 희귀 질환 신약과 고가 항암제 등 생명과 직결된 분야에 투입되어야 할 재원은 늘 부족한 상황이다. 천 의원의 주장처럼 누군가에게는 한 달 만 원 아끼는 약값일 수 있지만, 중증 환자에게는 그 돈이 생명줄 그 자체일 수 있다.
정부와 정치권은 청년들의 성숙한 시민의식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청년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눈앞의 작은 현금성 지원이 아니라, 내가 정말 아플 때 국가가 나를 지켜줄 것이라는 신뢰와 공정한 시스템의 작동이다. 보건복지부는 정치적 압력에 굴복하는 ‘예스맨’이 되기보다, 국민 건강의 파수꾼으로서 과학적 근거와 형평성에 기반한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탈모약 급여화 논의는 건강보험의 근본 원칙을 재확인하고, 진정으로 시급한 의료적 과제가 무엇인지 재검토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