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질인 줄 알았는데 치루라면… 항문 주위 농양 만성화에 따른 복잡치루 실체 및 대장항문외과 전문의의 경고
흔히 항문에 통증이나 불편함이 느껴지면 대다수의 사람은 이를 치핵, 즉 일반적인 치질로 오인하는 경향이 크다. 그러나 단순한 조직의 돌출이나 일시적인 부종이 아닌, 항문 내부의 염증이 통로를 만들어 외부로 터져 나오는 치루라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현재 의료계에서는 치루를 단순한 염증성 질환을 넘어, 방치할 경우 항문 기능을 영구적으로 손상시키거나 드물게 암으로까지 진행될 수 있는 위험한 질환으로 분류하고 있다. 특히 현대인들은 장시간 의자에 앉아 업무를 보는 생활 습관과 서구화된 식습관으로 인해 항문 건강에 위협을 받고 있으며, 초기 증상을 부끄러움 때문에 숨기다가 병을 키우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치루의 시작은 대개 항문 주위 농양이다. 항문 내부에는 배변 시 윤활유 역할을 하는 점액을 분비하는 항문선이 존재하는데, 이곳에 세균이 침투하여 감염을 일으키면 고름 주머니가 형성된다. 이를 항문 주위 농양이라 부른다. 초기에는 항문 주위가 뻐근하거나 미열이 발생하는 등 감기 몸살과 유사한 증상을 보여 환자들이 단순 과로나 몸살로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증상이 진행됨에 따라 항문 주위가 벌겋게 부어오르고 극심한 통증을 유발하며, 고름이 터져 나오면 통증은 일시적으로 사라지지만 염증이 지나간 자리에 구멍이 뚫리면서 치루로 발전하게 된다.

단순 치핵과 오인하기 쉬운 항문 주위 농양의 초기 신호
항문 질환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치핵은 혈관 조직이 부풀어 오르는 질환인 반면, 치루는 감염에 의한 ‘길’이 형성되는 질환이다. 치루가 형성되면 항문 주변으로 진물이나 고름이 지속적으로 흘러나오며 속옷을 더럽히고 불쾌한 냄새를 유발한다. 현재 임상에서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많은 환자가 고름이 터지면 병이 나았다고 착각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고름이 빠져나간 뒤에도 항문 내부와 연결된 통로는 그대로 남아 있으며, 이곳을 통해 끊임없이 세균이 유입되어 염증이 재발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러한 반복적인 염증 반응은 치루관을 더욱 깊고 복잡하게 만든다. 초기에는 항문 주변에 하나의 통로만 생기는 단순 치루 형태를 띠지만, 염증이 괄약근을 뚫고 여러 갈래로 뻗어 나가면 이른바 ‘복잡치루’로 진행된다. 복잡치루는 수술 난도가 비약적으로 상승할 뿐만 아니라, 수술 과정에서 괄약근 손상을 피하기 어려워 변실금 등의 후유증을 남길 위험이 크다. 따라서 항문 주위에 종기가 만져지거나 열감이 느껴진다면 즉시 전문의의 진단을 받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염증성 터널이 괄약근을 관통하는 복잡치루의 형성 기전
복잡치루의 실체는 생각보다 더 위협적이다. 치루관이 항문 괄약근의 깊은 곳까지 침범하거나, 항문 거근 위쪽까지 연장되는 경우를 말하는데, 이는 마치 나무뿌리가 땅속 깊숙이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것과 같다. 2014.10.31. 대한대장항문학회지(Annals of Coloproctology)에 발표된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오성택 교수팀의 ‘치루 수술 후 재발에 영향을 미치는 인자(Factors Associated with Recurrence After Surgery for Anal Fistula)’ 연구 결과에 따르면, 복잡치루는 단순 치루에 비해 높은 재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특히 치루관의 주행 경로가 괄약근을 깊게 관통할수록 정밀한 괄약근 보존술의 시행 여부가 치료 성패를 결정짓는 결정적 요인임이 확인됐다.
의료계에서는 복잡치루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조기 치료를 강조한다. 서울 민병원 성종제 외과 진료원장(대장항문외과 전문의)는 “치루는 약물치료나 자연 치유가 절대 불가능하며, 시간이 지체될수록 치루관이 괄약근 사이로 복잡하게 가지를 쳐 수술 범위가 넓어진다”며 “항문 주변의 고름을 단순한 종기로 여겨 방치하다가 괄약근을 관통하는 복잡치루로 악화된 뒤에야 내원하는 경우가 많아 수술 후 항문 기능 보존에 어려움을 겪는 환자들이 상당수”라고 지적했다. 성종제 원장은 또한 현재 초음파나 MRI 등 정밀 영상 진단을 통해 치루관의 주행을 완벽히 파악한 뒤 수술을 시행하는 것이 괄약근 보존의 핵심 표준이라고 덧붙였다.

장기간 방치된 만성 염증이 유발하는 항문암 발생 가능성
치루를 방치했을 때 나타나는 가장 충격적인 반전은 바로 암으로의 변성이다. 10년 혹은 20년 이상 장기간 방치된 치루관에서는 지속적인 염증 자극으로 인해 세포 변형이 일어날 수 있다. 2019.06.01. 국제 학술지 Techniques in Coloproctology에 게재된 W. K. Thomas 연구팀의 논문 ‘항문 치루암: 체계적 문헌고찰(Anal fistula cancer: a systematic review)’에 따르면, 10년 이상 치루를 방치한 만성 환자군에서 치루관을 따라 점액성 선암(Mucinous Adenocarcinoma)이 발생할 위험이 실증적으로 보고되었다. 이는 치루가 단순한 염증 질환을 넘어 생명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악성 종양의 원인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치루암은 일반적인 직장암이나 결장암보다 진단이 어렵고 예후가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암세포가 치루관을 따라 항문 주변 조직으로 넓게 퍼지기 때문인데, 이 경우 항문을 완전히 제거하고 인공 항문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앞선 Thomas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치루암은 증상이 모호해 발견 시 이미 3기 이상 진행된 경우가 많으므로, 10년 이상 된 만성 치루 환자는 반드시 조직 검사를 통해 암 변성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치루는 결코 저절로 낫지 않는 질환임을 명심해야 한다.
정밀 진단과 괄약근 보존을 위한 최신 근본 수술법의 중요성
치루 치료의 유일한 해법은 수술이다. 수술의 핵심은 치루관을 완전히 제거하면서도 배변 조절에 필수적인 항문 괄약근을 최대한 보존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치루관을 절개하여 개방하는 방식이 주를 이루었으나, 현재는 복잡치루 환자를 위해 괄약근 사이 누관 결찰술(LIFT)이나 시톤(Seton)법 등 괄약근 기능을 보존하는 다양한 최신 기법이 동원된다. 시톤법은 실이나 배액관을 치루관에 통과시켜 염증을 배출시키고 서서히 치루관을 조여 근육 손상을 최소화하며 치유를 유도하는 방식이다.
항문 주위 농양이나 치루는 빠른 진단이 완치의 지름길이다. 특히 당뇨병이 있거나 면역력이 저하된 환자의 경우 염증이 급속도로 퍼져 괴사성 근막염과 같은 치명적인 합병증으로 이어질 수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항문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충분한 섬유질 섭취와 좌욕을 생활화하고, 이상 증상이 발견될 시 즉시 대장항문외과를 방문하여 정확한 상태를 확인해야 한다. 현재 의료 기술의 발달로 조기에 발견된 치루는 높은 완치율을 보이며 일상생활로의 빠른 복귀가 가능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