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 나리분지는 왜 비가 와도 물이 안 고일까? 화산 지형 특유의 투수성 지질이 만들어낸 자연의 신비
울릉도 북쪽에 위치한 나리분지는 성인봉 북쪽 칼데라 화구가 함몰되어 형성된 화산 분지이다. 이곳은 동해안에서도 손꼽히는 다설지이자 다우지이지만, 폭우나 폭설이 내려도 지표면에 물이 고이는 현상이 드물다. 일반적인 분지 지형이 하천을 통해 물을 배출하거나 저지대에 습지를 형성하는 것과 대조적인 현상이다.
지질학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러한 배수 능력은 나리분지 바닥을 구성하는 화산재와 다공질 현무암층의 높은 투수성, 그리고 ‘구멍 바위’라 불리는 천연 배수구의 존재에서 기인한다.

화산 지형이 형성한 다공질 투수성 지질 구조
나리분지의 지하 구조는 화산 활동의 산물인 부석(Pumice)과 화산재, 그리고 ‘송이(Scoria)’라고 불리는 다공질 지질로 이루어져 있다. 화산이 폭발할 때 분출된 마그마가 급격히 식으면서 내부에 가스가 빠져나가 형성된 수많은 구멍은 스펀지와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 비가 내리면 지표면의 물은 이 틈새를 통해 빠르게 지하로 침투한다. 현재 나리분지의 지표면을 덮고 있는 토양은 입자가 굵은 화산회토로 구성되어 있어 물을 머금기보다 아래로 흘려보내는 성질이 강하다.
일반적인 내륙 분지의 경우 점토질 성분이 많아 배수가 불량하면 늪지나 호수가 형성되기 쉽다. 그러나 나리분지는 지하 깊숙한 곳까지 투수율이 높은 암석층이 발달해 있다. 강우량이 시간당 수십 밀리미터에 달하는 집중호우 상황에서도 지표면에서 흐르는 물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이유는 이러한 지질적 특성 때문이다. 지하로 스며든 물은 암반 하부의 불투수층을 따라 이동하다가 섬의 가장자리인 해안가 인근에서 용천수로 솟아오르는 순환 구조를 가진다.
천연 배수구 구멍 바위의 지질학적 정체
나리분지 외곽에는 ‘구멍 바위’라고 불리는 거대한 바위가 존재한다. 이 바위는 이름 그대로 커다란 구멍이 뚫린 형태를 띠고 있으며, 분지 내로 유입된 다량의 빗물을 지하 통로로 연결하는 배수구 역할을 수행한다. 과거 주민들 사이에서는 이 바위가 분지의 물을 받아 바다로 직접 보낸다는 구전이 전해져 왔으나, 과학적 조사 결과 이는 화산암 내부의 거대한 공동(Cavity)이나 주상절리 사이의 틈새가 확장된 지형으로 확인되었다.
구멍 바위 인근 지형은 분지 내에서 상대적으로 고도가 낮은 지점에 위치하여 자연스러운 수로 역할을 한다. 지표면을 따라 흐르던 빗물은 구멍 바위 아래의 공동으로 모여든 뒤, 지하에 형성된 화산 쇄설물 층으로 빠르게 분산된다. 이러한 천연 배수 시스템 덕분에 나리분지는 대규모 침수 피해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이는 인위적인 배수 시설이 없었던 과거부터 현재까지 나리분지가 경작지로 활용될 수 있었던 핵심적인 이유로 꼽힌다.

나리분지 배수 체계가 주민 생활에 미치는 영향
나리분지의 독특한 배수 체계는 지역 주민들의 주거 방식과 농업 활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울릉도 전역이 가파른 경사지로 이루어진 데 반해 나리분지는 평탄한 지형을 유지하고 있어 예로부터 주요 거주지로 활용되었다. 물이 고이지 않는 지질 특성 덕분에 주민들은 침수 걱정 없이 나리분지 내에 ‘투막집’이라 불리는 전통 가옥을 짓고 정착할 수 있었다. 투막집은 눈이 많이 내리는 기후에 적응한 형태이지만, 습기가 잘 빠지는 지반 덕분에 건물 부식을 방지하는 이점도 있었다.
농업 측면에서도 나리분지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물이 빠르게 지하로 빠져나가는 특성으로 인해 벼농사보다는 밭농사가 발달했다. 현재 나리분지에서는 명이나물(산마늘), 부지깽이(섬쑥부쟁이) 등 울릉도 특산 나물들이 대규모로 재배되고 있다. 이러한 작물들은 배수가 잘되는 토양에서 생육 상태가 좋기 때문에 나리분지의 지질 조건은 최적의 재배 환경을 제공한다. 지표면에는 물이 고이지 않지만, 지하로 스며든 풍부한 수분은 식물의 뿌리에 지속적으로 공급되어 가뭄에도 비교적 강한 면모를 보인다.
나리분지의 ‘구멍 바위’와 투수성 지형은 자연이 설계한 정교한 배수 시스템이다. 칼데라 분지라는 폐쇄적 지형 구조임에도 불구하고 물 고임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 것은 화산 활동이 남긴 다공질 암석층이 지표면의 물을 끊임없이 지하로 순환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질학적 메커니즘은 현재까지도 나리분지의 생태계와 주민들의 삶을 지탱하는 근간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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