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스웨스턴대 연구진, 항간질제 레비티라세탐의 알츠하이머 초기 플라크 예방 치료 기전 규명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교 과학자들이 주도하는 국제 연구팀이 알츠하이머병(AD)을 유발하는 독성 아밀로이드-베타(Aβ) 펩타이드가 뇌에서 축적되는 정확한 시점과 위치를 밝혀냈다. 특히 연구팀은 수십 년 동안 간질 치료에 사용돼 온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 항간질제인 레비티라세탐(Levetiracetam, Lev)이 이 독성 단백질의 축적 과정을 시작 단계에서부터 막을 수 있음을 발견했다. 이 연구 결과는 알츠하이머 치료 패러다임을 기존의 플라크 제거에서 ‘생산 억제’로 전환할 가능성을 제시하며 주목받고 있다.
12일(현지시각) ‘GEN(Genetic Engineering and Biotechnology News)’ 보도에 따르면, 제프리 사바스(Jeffrey Savas) 박사가 이끈 연구팀은 동물 모델, 인간 뉴런, 그리고 고위험군 환자의 뇌 조직을 분석했다. 그 결과, 특히 독성이 강한 단백질 조각인 아밀로이드-베타 42(Aβ42)가 뉴런이 신호를 전달하는 데 사용하는 작은 주머니인 시냅스 소포(Synaptic Vesicles, SVs) 내부에 축적된다는 사실을 규명했다. 또한 아밀로이드 전구 단백질(APP)이 이동하고 처리되는 경로가 Aβ42 생성 여부를 결정하는 핵심 요소임을 확인했다.

독성 Aβ42 생성 경로 차단: 레비티라세탐의 작용 기전
연구팀은 항간질제 레비티라세탐(Lev)을 동물 모델과 인간 뉴런에 투여했을 때, 뉴런이 Aβ42를 형성하는 것을 효과적으로 막았다고 밝혔다. 사바스 박사는 “현재 레카네맙(lecanemab)이나 도나네맙(donanemab)처럼 시장에 출시된 많은 알츠하이머 치료제들이 이미 형성된 아밀로이드 플라크를 제거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반면, 우리는 Aβ42 펩타이드와 아밀로이드 플라크의 ‘생산’ 자체를 막는 메커니즘을 확인했다”고 강조했다.
이 연구 결과는 학술지 ‘사이언스 중개의학(Science Translational Medicine)’에 ‘Levetiracetam prevents Aβ production through SV2a-dependent modulation of APP processing in Alzheimer’s disease models’라는 제목으로 게재됐다. 논문에 따르면, 레비티라세탐은 비정형 항간질제(AED)로, 시냅스 소포 순환 과정에서 SV 당단백질 2A(SV2A)라는 단백질에 결합한다. 이 결합은 뉴런이 세포 표면에서 시냅스 소포 구성 요소를 재활용하는 단계를 늦추는 역할을 한다.
연구진은 레비티라세탐과 SV2A의 상호작용이 재활용 과정을 일시적으로 멈추게 함으로써, APP가 세포 표면에 더 오래 머물도록 유도한다고 설명했다. 이로 인해 APP는 독성 Aβ42 단백질을 생성하는 경로를 회피하게 되며, 결과적으로 아밀로이드 생성 경로가 억제된다. 논문 저자들은 “레비티라세탐이 SV 순환을 감소시켜 아밀로이드 생성 APP 처리를 줄이고, 이는 APP 세포 표면 발현 증가로 이어진다는 것을 발견했다”며 “Aβ42 생산을 막고 SV 단백질 수준을 교정하기 위해서는 SV2A가 필수적이다”라고 결론지었다.
임상 데이터 분석: 인지 저하 진단 후 사망까지의 기간 지연 효과 확인
연구팀은 기존의 인체 임상 데이터를 분석하여 레비티라세탐 복용이 알츠하이머 환자의 인지 저하 속도를 늦추는지 조사했다. 국립 알츠하이머 조정 센터(National Alzheimer’s Coordinating Center)의 임상 데이터를 활용한 상관 분석 결과, 레비티라세탐을 복용한 알츠하이머 환자들은 로라제팜이나 다른 항간질제를 복용한 환자들에 비해 인지 저하 진단 시점부터 사망까지의 기간이 유의미하게 지연되는 연관성이 관찰됐다.
사바스 박사는 “변화의 크기는 작았지만(수년 정도의 규모), 이 분석은 레비티라세탐이 알츠하이머 병리 진행을 늦추는 긍정적인 효과를 뒷받침한다”고 말했다. 이는 레비티라세탐이 단순히 시냅스 활동을 완화하는 것을 넘어, 실제로 아밀로이드 병리 자체를 줄이는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김기주 선한빛요양병원 병원장 (신경과 전문의)은 “항간질제 레비티라세탐이 독성 아밀로이드-베타 42의 ‘생산’ 자체를 막는다는 기전은 기존의 플라크 ‘제거’ 중심 치료 패러다임을 전환할 잠재력을 가진다”며, “이 약물이 시냅스 소포 단백질 SV2A와 결합하여 APP 처리 경로를 조절하는 분자 메커니즘을 규명한 것이 초기 병변 예방 연구에 중요한 돌파구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운증후군 환자 등 고위험군 대상 ‘매우 이른 시기’ 예방적 개입 가능성
연구팀은 알츠하이머 증상을 효과적으로 예방하기 위해서는 고위험군 개인이 레비티라세탐 복용을 ‘매우 이른 시기’에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FDA가 승인한 새로운 알츠하이머 진단 검사에서 Aβ42 수치가 미미하게 상승하기 최대 20년 전일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사바스 박사는 “이미 치매가 진행된 상태에서는 뇌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변화와 많은 세포 사멸을 겪었기 때문에 이 약을 복용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이유로 연구팀은 다운증후군 환자처럼 유전적 형태의 알츠하이머를 가진 환자 집단을 식별하는 데 초점을 맞출 계획이다. 다운증후군 환자의 95% 이상은 약 40세경에 조기 발병하는 공격적인 형태의 알츠하이머를 앓게 되는데, 이는 APP 유전자가 이들의 게놈에서 세 배로 복제된 염색체와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교통사고 등으로 20~30대에 사망한 다운증후군 환자의 뇌 조직을 연구하여, 이들이 결국 알츠하이머를 앓게 됐을 초기 변화를 연구할 기회를 얻었다.
연구 결과, 이들 뇌 조직에서 시냅스가 손실되고 치매가 발생하기 전에 나타나는 ‘역설적인 단계’인 시냅스 전 단백질의 축적이 발견됐다. 사바스 박사는 “이러한 환자들에게 10대 시절부터 레비티라세탐을 투여하기 시작한다면, 실제로 예방적 치료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논문은 다운증후군 환자들이 높은 아밀로이드 생성과 유사한 시냅스 전 교란을 보이기 때문에, 레비티라세탐이 이 집단의 아밀로이드 병리 발병을 지연시키는 데 활용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향후 과제: 체내 지속 시간 늘린 개량형 약물 개발 전망
사바스 박사는 레비티라세탐이 체내에서 매우 빠르게 분해된다는 한계를 인정하며, 현재 더 오랫동안 지속되고 플라크 생성을 막는 메커니즘을 더 잘 표적으로 삼을 수 있는 개량형 레비티라세탐 버전을 개발하는 과정에 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최종적으로 “우리의 발견은 아밀로이드 병리 초기 단계에서 손상된 시냅스 전 단백질 분해를 기록하며, Aβ 생산과 그에 따른 하류의 비가역적 손상을 예방하는 레비티라세탐의 치료 작용 메커니즘을 밝혀냈다”고 결론지었다.
이번 연구는 알츠하이머 치료의 초점을 이미 발생한 병변의 제거가 아닌, 질병의 근본적인 시작점인 독성 단백질 생산 자체를 막는 예방적 개입으로 옮겨야 한다는 강력한 통찰을 제공한다. 특히 고위험군을 대상으로 한 조기 개입 전략의 실현 가능성을 높였다는 점에서 의학계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김기주 선한빛요양병원 병원장 (신경과 전문의)은 “이미 치매가 진행된 상태가 아닌, 인지 저하 진단 수년 전의 ‘매우 이른 시기’에 예방적 개입이 필요하다는 연구진의 지적에 주목해야 한다”며, “특히 다운증후군 환자와 같이 알츠하이머 발병 위험이 명확한 고위험군을 대상으로 10대 시절부터 선제적으로 레비티라세탐을 투여하는 방식이 알츠하이머 예방의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