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데이터가 증명한 의약분업의 민낯, 항생제 오남용 막겠다던 의약분업 정책의 허구와 실상
2000년 7월 1일, 대한민국 보건의료 체계의 거대한 전환점이었던 의약분업이 전격 도입됐다. 의사의 진단과 처방에 따라 약사가 조제 및 판매를 담당하게 함으로써 전문 직능을 분리하고, 당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됐던 의약품 오남용을 예방하겠다는 것이 정책의 핵심 목표였다. 그러나 제도 시행 25주년을 맞이한 2026년 현재, 그동안 쌓인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는 ‘정책적 실패’라는 차가운 결론을 가리키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의약분업 재평가 연구: 정책 효과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의약분업은 도입 당시 약속했던 항생제 사용량 감소라는 목표를 달성하는 데 완전히 실패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연구는 정책 효과 평가 모형인 ‘목표달성 평가모형’을 적용해, 지난 4반세기 동안의 정책 목표 달성 여부와 실질적인 정책 영향을 실증적으로 분석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연구팀은 의약분업의 핵심 성패를 가를 지표로 ‘항생제 처방 감소’를 설정하고, OECD 통계와 건강보험통계연보 등 2000년부터 2023년까지의 방대한 시계열 자료를 정밀 검토했다. 그 결과, 의약분업은 시행 전부터 관련 단체와 정부 간의 극심한 갈등을 초래하며 강행됐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국민 건강 증진이라는 실질적 열매는 맺지 못한 것으로 분석됐다.

25년 전으로 회귀한 항생제 사용량, OECD 평균의 벽 넘지 못했다
연구 보고서가 제시한 구체적인 데이터는 의약분업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기에 충분하다. 정책 목표 달성 측면에서 한국의 전체 상병 항생제 사용량(DID)은 OECD 국가 평균보다 매년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1996년과 비교했을 때, 2000년 의약분업 도입 직후에는 항생제 사용량이 일시적으로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으나, 이는 오래가지 못했다. 이후 사용량은 다시 꾸준히 증가하여 2016년에는 이미 의약분업 이전인 1996년 수준을 넘어섰으며, 2023년에는 의약분업 시행 이전 수준으로 완전히 회귀하는 양상을 보였다.
정부가 절대평가 기준으로 삼았던 ’20 DID 이하’ 달성 여부도 처참하다. 지난 25년간 한국의 항생제 사용량이 20 DID 이하로 내려간 것은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이 컸던 2021년이 유일했다. 이를 제외하면 정책 시행 기간 내내 단 한 번도 목표치에 도달하지 못한 것이다. 연구진은 이를 근거로 항생제 처방 감소라는 의약분업의 일차적 정책 목표가 사실상 달성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이는 정책 도입 당시 정부가 내세웠던 논리가 실제 현장에서는 작동하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대형병원부터 의원급까지, 의료계 전반에 걸친 정책 효과 ‘제로’
의료기관 종별로 세분화하여 분석한 결과는 더욱 충격적이다. 연구팀이 종별 전체 상병 항생제 처방률을 분석한 결과, 상급종합병원과 의원급 의료기관 모두에서 의약분업은 ‘정책의 완전한 실패’라는 판정을 받았다. 상급종합병원의 경우, 정책 도입에 따른 즉시 효과와 단기 효과, 장기 효과 모두에서 항생제 처방률이 오히려 소폭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동네 의원급의 사정은 더욱 심각했다. 의원급 기관은 정책 도입 직후 항생제 처방률이 의미 있게 증가했으며, 단기적으로도 큰 폭의 증가세를 나타냈다. 종합병원과 일반 병원급에서 단기적으로 소폭 감소하는 모습이 관찰되기도 했으나, 장기적으로는 다시 증가세로 돌아서며 ‘장기적 지속 가능성 실패’로 분류됐다. 특히 급성 상기도 감염 항생제 처방률 분석에서도 상급종합병원과 의원급은 즉시·단기·장기 효과 모두에서 증가세를 보이며 정책의 영향력이 부정적인 방향으로 작용했음이 드러났다.

통계적 분석으로 드러난 ‘의약분업’의 허상과 실질적 영향력 부재
이번 연구의 신뢰성을 뒷받침하는 것은 고도의 통계 기법인 ARIMA 간섭 분석과 SARIMAX 모형의 활용이다. 연구진은 단순히 사용량 추이를 보는 것을 넘어, 의약분업이라는 정책 개입이 실제 데이터의 흐름에 어떤 변화를 주었는지 추적했다. 분석 결과, 이미 감소 추세에 있던 항생제 처방률 시계열 데이터에 대해 의약분업이라는 정책적 개입은 유의미한 영향을 주지 못한 것으로 밝혀졌다.
즉, 의약분업이 시행되지 않았더라도 자연적으로 발생했을 변화 이상의 정책적 효과는 관찰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정책 목표도 달성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정책 자체가 변수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지도 못했다는 종합적인 평가는 의약분업이 명분뿐인 제도로 전락했음을 보여준다. 연구 보고서는 이를 바탕으로 의약분업을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실패한 정책’으로 규정했다.
공급자 중심에서 소비자 중심으로, ‘환자 선택권’ 회복이 관건
연구진은 이러한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획기적인 정책 전환을 제언했다. 가장 먼저 강조된 것은 ‘환자의 의약품 조제자 선택권’의 회복이다. 현재의 강제적이고 일률적인 분업 체계에서 벗어나 환자가 조제 장소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헌법적 권리로 인식하고, 이를 제도 설계의 중심에 두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한, 강제·완전분업이라는 단일한 틀을 깨고 ‘국민선택분업’과 ‘직능선택분업’을 병행하는 유연한 선택형 분업 체계로의 전환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직능 간의 역할 재정립도 과제로 제시됐다. 의사의 처방에 대한 임상적 책임과 약사의 복약지도 및 안전관리 역할을 명확히 하여, 소모적인 갈등보다는 협업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항생제 적정 사용이 담보되지 않은 현 단계에서의 대체조제 확대는 신중해야 하며, 환자 안전과 책임 구조를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아울러 지역 의료 연계 프로그램을 강화하여 지역 공공의료기관과의 협업 기회를 확대하고 실질적인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할 필요성도 언급됐다.
명분뿐인 하향식 행정 탈피하고 실질적인 환류 시스템 구축해야
보고서는 의약분업이 도입 당시 명분만을 내세운 여론화 과정과 ‘선 시행 후 보완’이라는 무책임한 하향식 방식으로 진행됐음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정책 시행 이후 지속적으로 수용성과 효율성, 사회적 파급 효과를 평가하고 그 결과에 따라 제도를 조정하는 환류 활동(Feedback)이 전무했다는 지적이다.
이제는 25년간의 처참한 성적표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실증적인 데이터에 기반한 제도 수술에 나서야 할 때다. 정부와 의료계, 그리고 시민사회가 머리를 맞대고 국민 건강이라는 본질적인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새로운 보건의료 패러다임을 설계해야 한다. 의약분업이 남긴 뼈아픈 교훈은, 아무리 좋은 명분을 가진 정책이라도 실효성 없는 강제성은 결국 정책적 실패와 막대한 사회적 비용으로 귀결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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