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례와 비교해보니 “선형 맞춤에 집착한 정부 의사인력 추계”, 방향성 잃고 기계적 수치 대입만 반복
13일, 대한의사협회 지하 1층 대강당에서 열린 ‘정부 의사인력수급추계의 문제점과 대안 공동기획세미나’는 정부가 추진해 온 의대 정원 증원 정책의 근간이 되는 ‘수급 추계’ 방식에 대한 성토의 장이 됐다.
의료정책연구원, 대한예방의학회, 한국정책학회 보건의료융합정책특별위원회가 공동 주관한 이날 세미나에서는 정부의 추계 방식이 현실과 동떨어진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며, 통계적 기법에만 매몰된 채 정작 중요한 의료 현장의 목소리는 배제했다는 날 선 비판이 쏟아졌다. 특히 일본의 정교한 데이터 수집 방식과 대비되는 한국의 ‘기계적 추계’ 관행이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장 데이터 없이 ‘선 긋기’에만 몰두한 한국형 추계
이날 주제 발표를 맡은 장부승 관서외국어대 교수는 한국과 일본의 의사인력 추계 방식을 비교하며 한국 정부의 ‘방향성 부재’를 꼬집었다. 장 교수는 일본의 경우 ‘지역의료구상’이라는 명확한 정책 방향 아래, 의료 현장의 구체적인 데이터를 기반으로 추계가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일본은 2018년부터 의료인력 현황, 병상 기능 보고, 의사 노동 시간 등 방대한 현장 조사를 실시하고 이를 근거로 시나리오를 설계한다. 반면 한국은 이러한 현장 데이터 확보에 대한 의지 없이, 단순히 과거의 추세를 미래로 연장하는 ‘선형 맞춤(Fitting)’에만 집착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2024년 4월 17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장 교수는 “일본은 의사 수뿐만 아니라 병상 수, 고령화 진척도에 따른 지역별 필요 의사 수를 세밀하게 계산하지만, 한국은 총량 숫자에만 매몰되어 있다”고 지적하며 한국식 추계의 맹점을 경고한 바 있다.
장 교수는 “현실은 선형으로 변하지 않고 기하급수적이거나 단층(Fault)이 존재하는데, 이를 무시한 채 선형 모델에 현실을 끼워 맞추는 것은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그는 한국의 추계가 막연한 추정이나 외삽(Extrapolation)에 의존하고 있으며, 이는 결국 모델이 현실을 왜곡하는 결과를 낳는다고 지적했다. 일본이 AI 기술 발달이나 의사 노동 시간 변화 등을 구체적인 시나리오로 나누어 접근하는 것과 달리, 한국은 정책 방향성이 추계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채 기계적인 계산만 반복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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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데이터의 맹신, 과장된 미래 수요
박정훈 의료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정부 추계위가 사용한 데이터와 모형의 구조적 결함을 구체적인 수치로 증명했다. 박 연구원은 정부가 사용한 2000년부터 2024년까지의 장기 시계열 자료가 최근의 의료 이용 행태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통계적 검증(Chow test) 결과, 2010년을 전후로 의료 이용 데이터의 구조적 변화가 확인됐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과거의 가파른 증가 추세를 그대로 미래에 적용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도출된 결과는 비현실적이다. 정부의 ARIMA 모형에 따르면 60~64세 남성의 1인당 입원 일수는 2024년 약 5일에서 2050년 약 9일로, 외래 일수는 16일에서 34일로 두 배 이상 폭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 연구원은 “이미 시작된 인구 자연 감소와 의료 기술 발전에 따른 재원 일수 단축 추세를 반영하지 못한 채, 의료 이용량이 무제한으로 증가할 것이라는 잘못된 가정에 기초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한 시나리오 구성에서도 논리적 모순이 발견됐다. 추계위는 AI 도입으로 의사 생산성이 향상된다고 가정하면서도, 동시에 근무 일수 감소를 혼합하여 적용했다. 이는 생산성 향상 효과를 상쇄시키거나 왜곡할 수 있는 비과학적인 접근이라는 지적이다.

FTE 기준 적용 시 ‘의사 부족’ 아닌 ‘과잉’ 우려
의료계는 단순 머릿수(Head count)가 아닌 ‘전일제 환산(FTE, Full Time Equivalent)’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박 연구원이 제시한 대한의사협회의 추계 결과에 따르면, 의사 노동 시간을 반영한 FTE 기준으로 볼 때 2035년에는 약 1만 1천 명에서 1만 3천 명, 2040년에는 약 1만 4천 명에서 1만 7천 명의 의사가 오히려 과잉 공급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정부가 주장하는 ‘의사 부족’ 프레임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결과다. 박 연구원은 “의사 국가시험 합격률, 임상 활동 비율, 은퇴 및 사망률 등 구체적인 변수를 반영한 공급 모델과, 건강보험 진료비 가중치를 적용한 수요 모델을 종합할 때, 정부의 무리한 증원 정책은 향후 심각한 의사 인력 과잉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러한 의료계의 지적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객관적인 미래 수요’를 근거로 맞서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2024년 2월 6일 브리핑을 통해 “KDI(권정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신영석), 서울대학교(홍윤철) 등 3개 전문기관의 연구 결과, 2035년에는 현재보다 약 1만 5,000명의 의사가 부족할 것이라는 공통된 결론이 도출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특히 복지부는 의료계가 주장하는 FTE 방식에 대해서도, 고령화로 인한 의료 수요 증가 속도가 의사 생산성 향상 속도를 압도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증원의 불가피성을 역설하고 있다.
총량보다 중요한 것은 ‘분포’와 ‘미시적 접근’
세 번째 발표자로 나선 김석일 가톨릭의대 교수는 ‘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오픈런’ 등 현재 대두되는 의료 문제는 전체 의사 수 부족이 아닌 ‘분포’의 문제임을 강조했다. 김 교수는 “정부는 총량 중심의 거시적 추계에만 매달리고 있지만, 정작 필요한 것은 전문과목별, 지역별 미시적(Micro) 접근”이라고 역설했다.
김 교수는 순환기내과 분과 전문의 사례를 들며, 특정 분과의 유입과 유출, 그리고 진료 행위량(상대가치점수)을 분석해 구체적인 필요 인력을 산출하는 방식을 제시했다. 그는 “단순히 의대 정원을 늘린다고 해서 기피과나 지방 의료 공백이 메워지지 않는다”며 “정부가 특정 분야의 의사가 부족하다면 그 분야의 전문의를 어떻게 양성하고 배치할 것인지에 대한 미시 시뮬레이션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정부는 이러한 분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사인력 수급추계위원회’를 통해 보다 정교한 대안을 마련 중이라는 입장이다. 2025년 9월 30일 보건복지부 발표에 따르면, 새로 출범한 추계위원회는 위원 13명 중 7명을 전문가 단체로부터 추천받아 구성함으로써 의료계의 목소리를 제도적으로 수용했다. 복지부는 “분포의 문제 역시 정확한 수급 추계가 선행되어야 해결할 수 있으며, 정부는 필수의료 패키지를 통해 지역과 과목별 인력 배치를 유도할 실질적 보상 체계를 병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세미나는 정부의 의사 인력 수급 추계가 데이터 확보의 불성실함, 통계 모델의 오용, 그리고 정책 방향성의 부재라는 총체적 난국에 빠져 있음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참석자들은 한목소리로 “정부가 ‘답정너’ 식의 증원 결론을 정해놓고 데이터를 끼워 맞추는 행태를 멈추고, 지금이라도 의료계와 함께 과학적이고 정교한 추계 시스템(거버넌스)을 구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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