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독일 의사가 정한 37℃ 기준, 현대 과학으로 ‘인간의 정상 체온 정의’ 재설정 필요성 대두
1851년, 독일의 저명한 의사 칼 라인홀트 아우구스트 분더리히(Carl Reinhold August Wunderlich)는 수천 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체온을 측정한 뒤, 인간의 평균 체온을 37℃로 정의했다. 이후 160여 년간 이 수치는 전 세계 의학 교과서와 가정 상식의 불변의 진리로 자리 잡았다. 한국에서는 보통 36.5℃를 정상 체온의 기준으로 삼았으나, 37℃를 넘으면 미열, 38℃를 넘으면 고열로 판단하는 기준의 근간은 분더리히의 연구에 있었다.
하지만 최근 수십 년간 전 세계에서 발표된 대규모 연구 결과들은 이 오랜 기준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현대인의 평균 체온이 19세기 사람들보다 현저히 낮아졌다는 과학적 증거가 잇따라 나오면서, 인류의 건강 지표인 ‘정상 체온’ 자체가 환경 변화와 생활 습관의 변화에 따라 진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60년간의 하향세: 현대인의 평균 체온은 36.4℃ 이하
정상 체온에 대한 가장 충격적인 분석은 미국 한 의과대학 연구팀이 발표한 연구에서 나왔다. 이 연구는 남북전쟁 참전 용사 기록부터 현대의료 기록까지 약 150년에 걸친 수십만 건의 체온 데이터를 분석했다. 연구 결과, 미국 성인 남성의 평균 체온은 10년마다 0.03℃씩, 여성은 10년마다 0.029℃씩 꾸준히 하락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에 따라 현대 미국 성인의 평균 체온은 분더리히가 제시한 37℃보다 약 0.4℃ 낮은 36.6℃(97.9°F) 수준으로 측정됐다. 다른 국가들에서도 비슷한 경향이 관찰됐다. 영국, 독일 등 유럽 국가의 연구에서도 현대인의 평균 체온은 36.1℃에서 36.4℃ 사이로 측정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오랫동안 우리가 정상으로 여겼던 36.5℃가 이미 과거의 기준이 됐음을 나타낸다.
체온 하락의 원인: 만성 염증 감소와 대사율 변화
인류의 체온이 하락한 이유에 대해 과학자들은 두 가지 주요 요인을 꼽는다. 첫째는 공중 보건 및 의료 환경의 혁신적인 발전이다. 19세기에는 결핵, 매독, 치주 질환 등 만성적인 감염과 염증성 질환이 일반적이었다. 체온 상승은 인체가 감염과 싸우는 자연스러운 반응인데, 항생제의 발명과 위생 개선으로 인해 만성적인 염증 상태에 놓이는 인구가 급격히 줄었다.
즉, 과거 사람들은 미세한 염증 반응 때문에 지속적으로 체온이 높게 유지됐다면, 현대인은 깨끗한 환경과 예방 접종 덕분에 염증 수준이 낮아져 기초 체온 자체가 낮아졌다는 해석이다. 둘째는 환경 변화에 따른 기초 대사율의 변화다. 현대인은 냉난방 시설이 잘 갖춰진 환경에서 생활하며 외부 온도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에너지를 소모할 필요가 줄었다. 이는 인체의 대사율을 낮추고, 결과적으로 체온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가 감소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이광원 서울 민병원 내과 진료원장은 “현대인의 체온 하락은 항생제와 위생 환경 개선 덕분에 만성적인 염증 상태가 줄어든 결과물이다”며, “이는 인류의 기초 대사율이 전반적으로 낮아졌다는 생리학적 변화를 보여주는 명확한 증거”라고 설명했다.

의료 현장의 혼란 가중: 발열 기준의 재설정 과제
정상 체온의 하향 변화는 의료 현장에서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만약 현대인의 평균 체온이 36.4℃인데도 여전히 37.5℃를 발열 기준으로 삼는다면, 실제로는 위험한 수준의 발열 상태에 있는 환자를 미열로 오인할 가능성이 커진다. 특히 노년층이나 면역력이 약한 환자의 경우, 체온이 조금만 상승해도 심각한 감염의 신호일 수 있다.
의사들은 이제 환자의 체온을 측정할 때 과거의 고정된 기준보다는 환자 개인의 평소 체온(Baseline Temperature)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예를 들어, 평소 체온이 36.0℃인 사람이 37.0℃를 기록했다면, 이는 이미 1℃의 상승을 의미하므로 즉각적인 조치가 필요할 수 있다. 반면, 평소 체온이 36.8℃인 사람에게 37.0℃는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
개인 맞춤형 의료 시대, 체온 측정의 새로운 패러다임
인간의 정상 체온 정의가 고정된 수치가 아닌, 시대와 환경에 따라 변하는 유동적인 지표임이 확인되면서 의학계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직면했다. 단순히 36.5℃라는 상식에 의존하기보다는, 환자의 연령, 성별, 측정 부위, 심지어 측정 시간까지 고려한 정밀한 기준 설정이 필요해졌다.
이러한 변화는 웨어러블 기기를 통한 지속적인 체온 모니터링 기술의 발전과 맞물려 개인 맞춤형 의료의 중요성을 더욱 부각하고 있다. 이제 의료 기관과 공중 보건 당국은 시대에 뒤떨어진 19세기의 기준을 버리고, 현대인의 생리학적 변화를 반영한 새로운 ‘정상 체온’ 가이드라인을 시급히 마련해야 할 과제를 안게 됐다.
이혁 힘내라내과의원 원장은 “19세기 기준 37.5℃를 고수하는 것은 평균 체온이 36.4℃인 환자에게 심각한 진단 지연을 초래할 수 있다”며, “이제는 환자 개개인의 평소 체온(Baseline)을 파악하여 발열 유무를 판단하는 개인 맞춤형 의료 시스템을 시급히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